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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 심장부를 가다 - 제3부 고조선인의 ‘마사다 요새’인 성자산성" 중 "삼좌점 석성" 부분만 가져와 내용에 따라 제목을 달았습니다.

삼좌점 석성의 치

[250매 초대형 프로젝트] 고조선 심장부를 가다
단군 어머니 웅녀(熊女)의 자취, 우하량 곰뼈를 찾아라
▼ 제3부 고조선인의 ‘마사다 요새’인 성자산성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com  2008.04.01 통권 583호(p328~368)
 

삼좌점 주거지를 둘러싼 석성은 일정하게 튀어나온 치를 갖고 있었다. 삼좌점 언덕에 둥글게 돌을 쌓아 만든 고대인의 주거지. 중국 요녕성 등탑현에 있는 고구려 백암성의 치와 수원 화성의 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좌점 주거지를 둘러싼 석성은 일정하게 튀어나온 치를 갖고 있었다. 삼좌점 언덕에 둥글게 돌을 쌓아 만든 고대인의 주거지. 중국 요녕성 등탑현에 있는 고구려 백암성의 치와 수원 화성의 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성스러운 땅 우하량을 둘러봤으니 다음으로는 사람이 살던 곳을 살펴보아야 한다. 노노아호산 북쪽의 내몽고자치구는 해발 500m쯤 되는 고원 평야다. 이곳의 중심지는 앞에서 언급한 적봉시인데 적봉시 중심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리면 삼좌점(三座店)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그곳에서는 영금하의 지류인 음하(陰河)를 막는 음하 다목적댐 공사가 마무리돼가고 있었다. 댐 아래(하류) 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댐과 맞닿은 오른쪽 언덕에 고대인들이 살았던 신비로운 거주지가 있다. 답사단은 해가 기울기 직전 그곳에 올랐다가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했다. 제일 먼저 답사단을 맞은 것은 여행 가방만한 크기의 돌에 새겨진 암각화였다.

두 눈을 가진 사람 얼굴을 새긴 것 같은이 암각화 주위로는 돌을 둥글게 쌓아올린 주거지가 수십 군데 있었다. 둥글게 쌓은 돌은 집 안과 집 밖을 구분하는 벽이었으리라. 고대인들은 이 돌담 위에 짐승 가죽을 씌워 지붕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주거지와 주거지 사이는 사람들이 다니는 고샅길이다. 고샅길에는 돌을 둥글게 쌓아 만든 얕은 우물 같은 것이 있었다. 음식물을 저장하는 창고였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동네를 둘러싼 돌성이었다. 돌성을 둘러 본 답사단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나왔다.

요하지역
 
조선과 일본에까지 전해진 석성의 치

이곳은 고비사막에서 일어난 모래가 바람에 날려온다. 한반도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황사(黃砂) 바람이 불어온다. 수천년에 걸쳐 모래가 쌓이면 사람이 떠난 주거지는 고스란히 모래흙에 묻히게 된다.

삼좌점에 고대 유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떠돌았다고 한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은 음하를 막는 댐 공사를 벌이면서 이곳을 발굴했다. 요녕대학이 펼친 이 조사는 2007년에 완료됐는데 그 결과 서기전 2000년의 삼좌점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좌점 주거지를 둘러싼 돌성에는 놀랍게도 ‘치’가 있었다. 치는 톱니바퀴의 톱니처럼 밖으로 툭 튀어나간 성 구조물이다. 치가 있으면 성 안의 군사는 공격해오는 적을 쉽게 막아낼 수 있다.

석성은 한반도와 일본에서 많이 발견된다. 중국의 중원지역에는 돌이 적기 때문인지 흙을 빚어서 만든 벽돌 성이 많고 치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고구려 성은 100%라고 할 정도로 치가 있다.

삼좌점의 주거지를 둘러싼 석성에서는 7~8m 거리로 일정하게 툭 튀어나온 치가 있었다. 서기전 2000년 당시의 고대인들이 치가 있는 돌성을 쌓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우하량에서 여신상과 사라진 곰뼈 자리를 보았을 때 이상으로 흥분됐다.

돌성은 높지 않았다. 1~2m쯤 될까. 그러나 신석기인의 키는 150cm 이하였으니 결코 낮은 것은 아니다. 고대인들은 이긴 흙으로 돌을 쌓아 올렸기에 성의 단면은 매우 거칠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튀어나온 돌을 잡고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실제로 답사단원들도 이 성을 가볍게 오르내렸다. 치도 매우 작아서 한두 사람밖에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허술한 성이 과연 유사시 방어기능을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이 돌성이 청동기 초기인 서기전 2000여 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 시기 인류는 금속기를 개발했으나 여전히 돌과 나무가 주무기였다. 손자병법 같은 병서(兵書)가 나오기 훨씬 전이었므로 전술과 전략도 없었다. 몇몇 사람의 꾀와 용기 그리고 힘으로 결판이 나는 싸움을 하던 시절이다. 그렇다면 돌성과 치는 충분히 방어벽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삼좌점 유적은 홍산 문화 다음에 일어난 청동기 문화인 하가점 하층 문화의 일부다. 석성에 치를 만드는 전통은 고구려를 거쳐 조선까지 이어졌고, 일본으로도 건너갔다.



출처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4/07/200804070500005/200804070500005_11.html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4/07/200804070500005/200804070500005_12.html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4/07/200804070500005/200804070500005_5.html 
(지도)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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