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316.22016201542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8> 왕릉의 수수께끼 ①
수로왕릉은 가짜?후대에 개축됐을 가능성 높아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3-15 20:22:07/ 본지 16면

김해 수로왕릉 '가숲 3호 목관묘'

왕릉의 수수께끼

수로왕릉에는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두 가지의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하나는 왕릉이 진짜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문과 비석에 있는 신어(神魚)와 태양의 그림입니다. 오늘부터 두 차례에 걸쳐 이 수수께끼에 도전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왕릉은 가짜인가

이미 부산·경남지역에서는 적지 않은 가야고분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만, 수로왕이 돌아가셨다는 서기 199년경에 지금의 수로왕릉과 같이 높고 커다란 봉토(封土)-마운드를 가진 고분은 발견된 적이 없었습니다. 가야지역에서 현재의 수로왕릉과 같이 큰 봉토의 고분이 출현하는 것은 5세기 이후에나 가능합니다. 수로왕이 돌아가셨을 당시에 지금 같은 규모의 무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김해김 씨 분들께 혼이 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그렇다면 지금의 수로왕릉은 가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웅변적인 지역전승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2세기 말에 수로왕릉 같은 큰 고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가야고고학의 상식이라 해도, 지금의 왕릉을 가짜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는 전승이 어떤 역사기록이나 고고학 자료보다 더 웅변적이고 더 사실적인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스 헤일리 원작 '뿌리(Roots)'의 첫 대목은 주인공 쿤타킨테에 이르는 15대 이상 되는 계보와 역사를 며칠이고 외우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러한 구전(口傳)의 전승자는 다른 날에 외우게 해도 거의 한 자도 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가 다른 원시부족에서도 흔히 찾아질 수 있음이 문화인류학의 현지조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구전이라고 무조건 버릴 것은 아닙니다.

왕릉은 개축되었다

그렇다면 고고학적 상식과 현재 왕릉과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우선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금의 수로왕릉이 언제인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개축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661년에 신라의 문무왕은 수로왕릉을 대대적으로 정비시켰습니다. 왜 정복국인 신라의 문무왕이 피정복국인 가야의 시조묘를 정비하게 되었을까요? 문무왕은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문명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공을 차던 김유신이 고의로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동생에게 꿰매게 했던 인연으로 혼인했다는 얘기,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으실 겁니다. 김유신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해왕의 손자였고, 김유신의 누이동생도 같은 손녀였습니다.

외가 돌보기

결국 문무왕의 어머니가 가야계 여인이었기 때문에 가락국은 문무왕의 외가가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문무왕은 외가 원조 할아버지의 수로왕릉이 황폐해져 있음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문무왕이 수로왕릉의 정비를 명할 때, 친가 쪽 조상들의 묘와 같은, 즉 지금 우리가 경주에서 보는 큰 봉토의 고분으로 개축하고 정비하게 되었으며, 가장 좋은 전답을 30정보나 부쳐 왕위전(王位田)이라하고, 왕릉을 돌보는 경비로 충당케 하였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고고학적 상식과 김해지역 또는 김해김 씨의 전승 모두를 정합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도 있는 겁니다.

수로왕시대의 목관묘

발굴 최근에 발굴된 봉황토성과 가야의 숲 조성부지(전 공설운동장)에서 새로운 방증자료가 확보되었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199년에 수로왕이 돌아가시자 궁궐 동북쪽 평지에 한 길되는 빈궁(殯宮)을 지어 장사지낸 뒤, 사방 300보를 수로왕묘(首露王廟)로 정했다고 전합니다. 지금까지는 수로왕의 궁궐이 어디에 있었는지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궁궐 동북쪽의 평지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03년에 봉황대 동북쪽을 돌아가는 토성의 일부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수로왕의 궁궐이 봉황대 부근이었음이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수로왕릉은 봉황대 동북 쪽 평지에 해당합니다.

또 2004년에는 수로왕릉 바로 옆에 있는 가야의 숲 조성부지(수릉원)에서 수로왕 시대의 목관묘가 조사되었습니다. 1~2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제3호 목관묘에서는 칠기자루 부채 2점, 청동창, 청동거울, 칠기칼집철검, 원통형 칠기 2개 등이 출토되어, 서북한 계통의 색채를 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수로왕 시대 가락국 지배층의 계통과 문화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수로왕시대의 가야무덤이 현재의 수로왕릉 바로 옆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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