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608.22015204119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20> 양동고분군-하
생전의 부정·죽음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무덤 불태워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6-07 20:46:44/ 본지 15면

불타는 목곽

지난 주에 양동고분군의 옥구슬 장식 목걸이를 소개하면서 양동리 가야마을 사람들의 여성적이고 종교적인 느낌에 대해 얘기했습니다만, 그러한 분위기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것의 하나가 불태워진 무덤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주에 사진으로 감상하셨던 화려한 목걸이는 235호분에서 출토된 것입니다만, 바로 그 235호분이 불태워진 무덤이었습니다. 발굴조사단에 의하면 유해가 든 널(木棺)을 안치하고, 여러 가지 껴묻거리(副葬品)를 배치한 뒤, 덧널(木槨) 즉 나무로 된 방에 불을 질렀던 것이라 합니다. 물론 무덤의 나무 벽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거나 재로 변할 때까지 태웠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부장되어있던 토기들 중에는 아주 센 불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거나 표면의 박락이 확인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강한 불로 무덤의 덧널-목곽이 태워졌던 것은 확실합니다. 양동고분군에서 이렇게 불태워졌던 무덤은 235·287·299·310·318·323호로 모두 6기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샤먼의 무덤



김해 양동리 235호 목곽묘의 불탄 흔적(위)과 불에 타 표면이 떨어져 나간 토기.
 
수백여 기에 달하는 양동고분군의 수효에 비하면 결코 많은 숫자도 아니고, 3세기 대라는 좁은 폭의 시대에 편중되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양동리 가야마을의 보편적인 장법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35호분의 부장품을 보면 우선 지도자급 인물의 매장의례로 거행되었던 점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2세기 말~3세기 초의 235호분에서는 동복(銅 )이라는 북방 유목민의 청동솥, 납작도끼 모양의 덩이쇠(板狀鐵斧) 30매, 6자루의 쇠창(鐵 ), 길이가 227㎝나 되는 우리나라 최대의 쇠창, 둥근 고리자루 큰 칼(環頭大刀), 화살촉 53개, 예의 화려한 목걸이 등은 같은 시기 최상급 무덤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종교적 색채가 아울러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덩이쇠 30매는 철의 왕국 가야의 면모를 대변하는 철소재이기도 하지만, 발굴조사단은 지신(地神)에게 지불된 묘지사용 대금이란 해석을 제시한 적도 있고, 쇠와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冶匠)의 주술적 성격은 유명합니다. 대장장이의 능력을 바탕으로 제4대 신라왕이 되었던 탈해(脫解)의 전승, 바이칼호 연안과 남부 시베리아에 거주하면서 우리 한민족과 깊은 근친 관계를 보이는 부리야트(Buryat)족은 쇠를 다루는 샤먼이 사회적 지도자가 될 정도로 쇠를 숭상하며, 아픈 사람 옆에 쇠를 놓아두면 병이 낫는다고 믿기도 합니다. 머리맡에 놓여진 30장의 덩이쇠에는 그런 의미도 있었을 겁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철기를 가지고, 가슴에 화려한 목걸이 장식을 걸친 샤먼의 나무 덧널에 불이 질러졌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최초의 화장?

시신을 태운 것도 아니고, 재를 뿌린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불교의 화장(火葬)은 아닙니다. 더구나 허왕후 전승에서 말하는 기원후 48년의 불교 전래를 인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양동리 가야마을에서 불교식 장법의 존재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나무 덧널을 태우거나 그을리는 것에는 의도적인 기능상실과 정화(淨火)의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여러 제사유적에서 발견되는 바닥이 뚫리고 깨뜨려지고 부러뜨려진 토기와 석기는 산자의 세계에서 죽은 자의 세계로의 이행에 맞춰 도구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하는 주술입니다. 봄의 첫날에 개울에 몸을 담궈 지난해의 부정을 씻어 보내는 계욕(禊浴)이나 제사에 바쳐지는 정화수(井華水)는 물에 부정을 씻어 주고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의례입니다. 물과 같은 능력이 불에도 있다고 믿었을 겁니다. 불에 태워진 목곽은 주인공 생전의 부정이나 죽음이라는 부정을 불에 태워 없애 깨끗이 하겠다는 가야인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울산의 하대고분군과 포항의 옥성리고분군에서도 목곽을 불태우는 비슷한 습속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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