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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 [武王]

백제 제30대 국왕.  장(璋), 무강(武康), 헌병(獻丙), 일기사덕(一耆篩德)
생몰 : 미상 ~ 641년(무왕 42)
재위 : 600년 ∼ 641년
가계
    부왕 : 법왕
    모후 : 왕후 해씨(王后 解氏)
            장남 : 의자왕(義慈王)
            딸 : 부여씨(扶餘氏)
        왕후 : 사택왕후(沙宅王后) -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6]
            차남 : 부여교기(扶餘翹岐)[7]
        동생 : 부여씨(扶餘氏)
            조카 : 부여복신(扶餘福信)
 

600년5월(음) 법왕 죽음, 무왕 즉위함.
601년3월5일(음) 고구려·백제에 사신 파견, 임나를 구하라고 함.
602년10월(음) 백제승 관륵(觀勒)이 와서 역서(曆書)
605년2월(음) 각산성(角山城) 쌓음.
605년8월(음) 백제의 동쪽 국경 침범함.
607년3월(음) 한솔 연문진을 수나라에 보내어 조공
607년5월(음) 백제의 송산성(松山城)·석두성(石頭城)을 공격함
608년3월(음) 수나라에 사신 보냄.
611년2월(음) 국지모(國智牟)를 수나라에 사신
611년8월(음) 적암성(赤嵓城) 축조함.
611년10월(음) 신라의 가잠성(椵岑城)을 포위함
612년4월(음) 궁 남문에 지진 발생함.
612년(음) 수나라 군대가 고구려를 침공함에 준비
612년(음) 미마지(味摩之), 일본에 귀화
614년(음) 수나라에 사신 보냄.
616년10월(음) 신라의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함.
618년(음) 북한산성(北漢山城) 군주(軍主) 변품(邊品) 등, 백제 침공함.
621년10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내 과하마를 바침.
623년(음) 신라의 늑노현(勒弩衒)을 침.
624년1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냄.
624년2월(음) 신라의 속함(速含) 등 6성(城) 점령함.
624년3월(음) 당나라가 신라, 고구려, 백제 왕들에게 관작 보내옴.
624년4월17일(음) 백제승 관륵(觀勒)을 승정(僧正)에 임명함.
624년7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냄.
625년11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냄.
626년12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냄.
626년(음) 당나라에 사신 보내어 명광개(明光鎧) 바침.
627년7월(음) 신라 서쪽지방의 2성 점령함.
627년8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냄. 신라와 화해할 것을 종용함
628년2월(음) 신라의 가잠성(椵岑城) 공격함.
629년9월(음) 신라, 고구려, 백제 당나라에 사신 보냄.
630년2월(음) 사비(泗沘)의 궁성 중수함.
630년3월1일(음) 고구려가 대사(大使) 연자발(宴子拔)과 소사(小使) 약덕(若德)을 일본에 보냄.
630년3월(음) 백제가 대사(大使) 은솔(恩率) 소자(小子) 소사(小使) 덕솔(德率) 무덕(武德)을 일본에 보냄.
631년3월1일(음) 왕자 풍(豊)을 일본에 보냄.
631년9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냄.
632년1월(음) 의자를 태자로 책봉함.
632년2월(음) 마천성(馬川城) 개축함.
632년7월(음) 신라를 공격함.
632년12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냄.
633년(음) 백제 달솔(達率) 유(柔)를 파견하여 조공함.
634년2월(음) 왕흥사(王興寺) 준공함.
634년3월(음) 왕궁 남쪽에 못
636년2월(음) 당나라에 사신을 보냄.
636년3월(음) 사비하의 북쪽 포구에서 연회를 베품.
636년5월(음) 신라의 독산성(獨山城) 공격함.
637년12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냄.
638년3월(음) 왕은 왕비와 함께 큰 못에 배를 띄우고 놂.
639년10월(음) 당나라에 사신 보냄.
639년11월(음) 무왕이 건립한 지모밀지정사(枳募蜜地精舍)를 파괴
641년3월(음) 무왕 죽음, 의자왕 즉위.
 

이름은 장(璋) 또는 무강(武康)·헌병(獻丙)·일기사덕(一耆篩德)이다. 제29대 법왕(法王)의 아들이며, 제31대 의자왕(義慈王)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무왕(武王) 즉위 직전의 혜왕(惠王)과 법왕은 모두 재위 1년 만에 죽었다. 위덕왕(威德王)은 45년 동안 집권하다가 598년 12월에 죽었고, 70여세가 넘은 위덕왕의 동생 혜왕이 598년 12월에 즉위했다. 혜왕은 이듬해 599년에 죽고 이어 혜왕의 아들인 법왕이 즉위했는데 법왕도 이듬해인 600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 백제는 내외 정세가 악화되고 귀족 간에 내분이 일어났으며 왕실 권위가 약화되었는데, 거듭되는 왕의 단명은 그러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이 무왕의 즉위로 어느 정도 완화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마(麻)를 캐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서동(薯童)이 지략을 발휘하여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백제 백성들로부터 인심을 얻어 왕위에 즉위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무왕의 즉위에도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41년간에 달하는 무왕의 재위 기간에 왕권이 안정되었는데, 이는 무왕 재위 기간 동안 집요하게 추진해 온 신라 침공과 같은 정복 전쟁에서의 승리에 힘입은 것이다.

무왕은 소백산맥을 넘는 통로의 확보에 치중했다. 602년과 603년에는 신라와의 아막산성(阿莫山城) 전투가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좌평(佐平) 해수(解讎)는 4만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였다. 아막산성은 소백산맥으로 통과하는 중요한 통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백제-신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백제로서는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 전투였으나 해수는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아막산성 전투에서 좌평 해수의 참패는 무왕의 권력을 회복시키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좌평 해수가 4만 병력을 손실한 것은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 전투에서 3만 병력을 잃은 것보다 더 컸다. 이로 인해 무왕은 귀족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으며, 이때부터 무왕은 차츰 왕권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624년 백제는 소백산맥을 넘어 함양으로 진출하였다. 백제가 함양으로 진출했다는 것은 소백산맥을 넘어 신라의 배후를 공격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무왕은 636년 독산성(禿山城: 경북 성주군 가천면으로 비정)을 기습하여 함양을 점령한 후 동남쪽으로 진출하여 진주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던 듯하다. 함양의 동북쪽으로는 낙동강 영역으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함양의 동남쪽으로는 낙동강 하류 영역으로의 진출을 시도하였다.

무왕은 신라 서쪽 변방을 빈번하게 침공함으로써 백제군이 낙동강 방면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백제는 신라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한층 가중시켰다. 무왕의 영역 확대는 결과적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군사적인 유착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나, 국내의 정치적 안정과 정복 전쟁의 승리에 힘입어 무왕 대의 백제는 국제 문제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양대 세력인 고구려와 수나라가 각축전을 벌일 때, 무왕은 어느 한쪽에 가담하기보다는 양쪽의 대결을 이용해 어부지리를 취하려고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강화된 왕권의 표징으로, 또 왕권의 존엄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대규모 역사(役事)를 단행하였다. 630년사비궁(泗沘宮)을 중수했으며, 634년 왕궁의 남쪽에 인공 호수와 그 안에 인공 섬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신선이 산다는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같은 해 그 무렵 백제의 중심적인 사원으로서 웅장하고 화려했다는 왕흥사(王興寺)도 완성되었다. 이 절은 600년법왕이 착공한 뒤에 죽자, 아들인 무왕이 30여 년 만에 완성시킨 것이다. 왕흥사는 절 이름에서 암시하듯이, 왕이 건립을 주도했고 몸소 불공을 드린 곳으로서 왕실의 원찰(願刹) 또는 왕과 특별히 밀착된 사원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역사는 왕권의 안정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므로 귀족 내부의 분쟁 요인 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은 어느 정도 억제되었음을 뜻한다. 대왕포(大王浦: 충청남도 부여 백마강에 지금도 그 지명이 전함)라는 지명과 함께, “무왕과 신하들이 그 곳에서 흥겹게 어우러져 즐겼다”는 고사는 표면적으로 태평한 백제 지배층의 정황을 잘 보여준다.

무왕은 강화된 왕권에 힘입어 재위 후반기에는 익산 지역을 중시해 이 곳에 별도(別都)를 경영하고, 장차 천도(遷都)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궁성이 될 왕궁평성(王宮坪城)을 익산에 축조하는 동시에, 흔히 궁성 안에 있어서 내불당(內佛堂)의 성격을 띠는 제석사(帝釋寺)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9년 1월 14일에 미륵사지 서탑 해체 중 발견된 금동사리함 명문에 의하면, 정실 왕후 사택씨(沙宅氏) 세력의 보시로 막대한 경비와 시간을 들여 익산에 동방 최대 규모의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하였음이 밝혀졌다.

미륵사지는 거의 20여년에 걸쳐 발굴되었다. 그 결과 사찰구조가 3탑 3금당의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탑의 층수도 9층이었음이 밝혀졌다. 최근에는 신라의 황룡사 구층목탑(皇龍寺九層木塔) 건립이 신라의 삼국통일 의지를 상징해주듯이, 미륵사의 구층탑 건립도 이와 연결될 수 있으며 미륵사의 3원 건립도 백제를 중심으로 한 삼국의 공존과 세력균형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미륵사 창건설화에 의하면, “무왕와 왕비(후궁으로서 선화공주)가 사자사(師子寺)로 가는 도중 연못 속에서 솟아오른 미륵삼존상(彌勒三尊像)을 만나 이를 모시기 위하여 미륵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륵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백제 어느 지역의 연못에서 솟아 나왔다는 점이다. 백제는 미륵불국토(彌勒佛國土)를 이룰 수 있었던 인연이 깊은 땅이었는데, 이를 실현시켜준 인물로서 무왕이 추앙되었다. 미륵불국토의 실현은 오랜 전쟁으로 지친 백제민들에게 앞으로의 전생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미륵불국토의 실현을 위해서 희생된 자신이 다시 미륵에 의해서 구제받을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무왕은 익산 천도를 통한 귀족세력의 재편성을 기도했다. 비록 익산 천도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관산성 패배 이후 동요된 백제 왕권이 무왕 때 와서 급속히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아들인 의자왕이 즉위 초기에 정치적 개혁을 통해 전제 왕권을 구축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이처럼 무왕 때의 백제는 정복 전쟁의 승리와 더불어 사비궁의 중수나 왕흥사·미륵사의 창건 같은 대규모 역사가 시행될 정도로 전제 왕권이 강화되고, 대외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사비시대 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는 위치에 있는 무왕은 흔히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서동설화 속의 무강왕(武康王)과 관련 짓고 있다. 그런데 서동설화는 여러 시대의 전승들이 복합, 형성된 것일 가능성이 커서 단순한 일원적 해석은 위험하다. 예컨대 동성왕(東城王)과 관련된 혼인 설화와 무왕 대의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 외에 무령왕이 즉위 전 익산 지역의 담로장(擔魯長)으로서 이 지역을 다스린 데서 생겨난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라는 견해도 있기 때문이다.

무왕의 능은 익산시 팔봉면 신왕리에 있는 쌍릉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고려시대에 이미 도굴된 적이 있는 쌍릉은 1916년에 조사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사비시대 능산리 고분의 묘제와 일치함이 밝혀졌다. 무왕의 능을 통해 그가 익산 태생이며 그의 성장기반이었던 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익산을 중시했던 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대동지지(大東地志)』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일본서기(日本書紀)』
「백제고분과 익산 쌍릉」(이남석, 『익산 쌍릉과 백제고분의 제문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00)
「신라와 백제의 교섭과 교류」(노중국, 『신라문화』16·17집, 2000)
「백제 무왕과 지명법사」(노중국, 『한국사연구』107, 1999)
「사비시대 백제지배체제(泗沘時代 百濟支配體制)의 변천(變遷)」(노중국, 『한우근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韓佑劤博士停年紀念史學論叢)』, 1981)
「왕궁평성(王宮坪城)에 대한 연구(硏究)」(송상규, 『백제연구(百濟硏究)』7, 1976)
「서동설화(薯童說話)에 관한 신고찰(新考察)」(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博英社), 1976)
「扶餘陵山里傳百濟王陵·益山雙陵」(有光敎一, 『艮原考古學硏究所論集』4,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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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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