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706.22016194639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23> 대성동고분군-하
가야의 여전사는 가공된 인물 아닐까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7-05 19:48:31/ 본지 16면

김해 대성동고분 57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인골을 토대로 복원한 가야 여인.

▲역사스페셜의 위력

2005년 8월, 대성동고분군은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됩니다. KBS HD역사스페셜 '가야에 여전사(女戰士)가 있었다'라는 역사다큐멘터리 덕분이었습니다. '아마조네스'라도 연상시킬 제목처럼 그 반응도 제법 선풍적이어서, 2007년 4월에는 비슷한 주제의 '거미'라는 역사소설도 출간되었고, 김해시 공무원의 필독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본의 아니게 이 다큐에 얼굴을 내밀었기에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원래 기획 자문과 출연 인터뷰에 응할 때까지의 방송 주제는 '해상왕국, 가야'였습니다. 마침 '불멸의 이순신'이 안방극장을 독차지하고 있어, 남해안 최초의 해전이었던 '포상팔국의 난'과 고대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주체를 재조명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취지로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발굴단인 경성대박물관의 인터뷰에서 같은 얘기가 나왔고, 급기야 방송 주제는 '가야의 여전사'로 변경되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해상왕국에 대한 인터뷰를 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가야의 여전사'에 얘기를 보탠 꼴이 되었던 겁니다. 물론 학술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도 목적하지 않은 새 사실이 발견되면 주제를 바꾸기도 합니다만, 그에 따른 별도의 고민과 숙성 과정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방영이 임박한 시점에서 전혀 다른 주제로의 전환은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내용을 역사적 사실처럼 전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여전사'는 '신비의 가야'나 '수수께끼 왕국'과 비슷한 어감의 수식어로, 일반의 흥미를 끌기 좋을지는 몰라도,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저급한 것으로 인식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역사스페셜의 위력은 실로 막강해 외부 강연을 나가면 아직도 '여전사'의 질문이 심심치 않고, 심지어는 우리 학생들까지도 사실 여부를 묻습니다.

▲57호분의 여성인골

물론 발굴조사보고서도 '여성 중무장의 가능성과 여전사의 존재도 상정할 수 있다'고 서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사로 추정되는 대성동 57호분의 인골과 매장 상태를 보면 그렇게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57호분 주인공의 발치 쪽에는 20~30대의 여성 3명이 가로 방향으로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주인공을 따라 죽었던 순장자인데, 머리맡에서 5개의 철제 투구와 갑옷 조각, 안쪽 좌측에서 판갑조각이 각각 발견되어 추정은 시작되었고, 넓적다리뼈와 정강이뼈의 가자미근선에서 다리 근육의 발달이 확인됨으로써 여전사의 추정에 날개가 달렸습니다. 벽쪽의 A가 152.6㎝, 가운데의 B가 148.7㎝, 안쪽의 C가 147.7㎝의 신장으로 '얼마간의 노동'이 인정되기는 합니다만, 1~2회의 출산 흔적도 아울러 확인되고 있답니다. 57호분은 4세기 후반의 무덤이기 때문에,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과의 전쟁에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인데도, 소설에서는 같은 전쟁에서의 활약을 얘기하는 모양입니다.

▲여전사 추정의 걸림돌

그러나 이들을 '가야의 여전사'로 추정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은 투구와 갑옷은 있었지만 착용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일 겁니다. 순장자는 생전에 주인공을 모시던 모습으로 매장되는 것으로, 진시황릉의 병마용이 유명합니다. 비록 순장을 대신하는 도용(陶俑)이긴 하지만 갑옷을 차려 입고 무기를 든 군단들이 생전의 진시황을 모시던 모습으로 늘어서 있지 않습니까? 키가 큰 A는 투구 위에 머리를 놓아 목이 앞으로 꺾여 있었고, 가운데의 B는 머리맡에 세워있던 투구가 넘어져 머리를 덮쳤습니다. 더구나 투구는 5개인데, 순장 여성은 3인입니다. 도굴로 인골이 없어졌을 수도 있지만, 머리맡과 C좌측 유물의 남은 상태를 보면 일단 발치 쪽에 순장자가 더 있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결국 투구와 갑옷은 주인공의 것이지, 순장 여성들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인골 분석에 따르면 다리 근육도 역사스페셜이나 소설의 '훨씬'이 아닌 '다소'의 발달이었고, 군사훈련이 아닌 '얼마간의 노동'과 1~2회의 출산을 경험했던 여성들이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는 영양 장애도 경험했던 이들은 여전사보다는 가락국 왕실에 봉사하면서 아이도 낳았던 첩과 같은 사람들은 아니었을까요?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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