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914.22015200539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33> 가야금 12곡에 얽힌 사연-상
대가야 가실왕, 제국 통합 방편으로 우륵에 작곡시켜
12곡의 배열·신화 정치적 의미 밝혀내야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9-13 20:07:15/ 본지 15면

고령 우륵기념탑

귀 달린 가야금

고령읍내로 들어서다 보면 오른 쪽 낮은 언덕 위에 하얀 색의 제법 높은 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통 3·1운동이나 6·25참전의 기념탑쯤으로 생각하실 분도 계실 테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아주 독특한 모양입니다. 양 옆에 구름·새·꽃잎 같은 문양들을 뚫어새긴 검은 판이 있고, 가운데에 흰색의 가야금을 세로로 세워 나전칠기의 가야금을 보는듯한 느낌입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현대의 조형물에 불과하지만, 12줄이 있고 우륵기념탑이라고도 쓰여 있어, 가야금과 우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 가야금은 우리가 흔히 보는 가야금과는 사뭇 다르게 생겼습니다. 가장 위쪽에 보이는 부분이 다르게 생겼는데, 현의 장력 조절을 위해 줄을 묶고 푸는 곳으로 양(羊)의 귀와 같이 생겼다 해서 양이두(羊耳頭)라고 부릅니다. 머리라지만 조선시대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 연주할 때는 오히려 아래쪽으로 가는 부분입니다. 같은 모양의 가야금은 '악학궤범'에도 보이고, 6세기께 신라의 토우 장식 장경호(국보 195호)에도 보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실 수 있는 이 장경호의 '가야금 타는 토우'도 신윤복의 그림처럼 양이두가 연주자의 왼편에 묘사되고 있습니다. 다만 12줄이 아니라 6줄로 묘사되고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야금12곡은 정치적 장치

'삼국사기'는 대가야의 가실왕이 중국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 전하지만, 가실왕 이전 기원전 1세기의 광주 신창동유적과 1~4세기의 경산 임당동유적에서는 10줄 추정의 현금(玄琴)이 출토되었고, 6~7세기의 대전 월평동유적에서는 양이두가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있었던 삼한의 현금을 가실왕이 개량했던 것으로, 중국 편향의 '삼국사기'가 그렇게 기록했던 것으로 생각함이 옳을 겁니다. 가실왕은 다시 우륵에게 가야금 12곡을 작곡시켰습니다. 12곡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 곡명들만은 '삼국사기' 악지(樂志)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가야사 공부를 시작할 때만해도, 가야에 대해서는 가야금밖에 아는 게 없었고, 가야금 12곡은 그저 낭만적인 음악으로만 생각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위서(僞書)'라고 생각했던 '일본서기'에 대한 비판적 활용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가야금12곡이 대가야 왕의 대외적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는 고도의 정치적 장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6세기께 신라의 토우 장식 장경호(국보 195호).
가야금 12곡명=가야 12국명

'일본서기'는 우리 역사서에 없는 12개 정도의 가야 국명들을 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국명들 중에는 가야금 12곡명과 일치하는 게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1곡 하가라도(下加羅都)는 남가라(南加羅, 김해), 제2곡 상가라도(上加羅都)는 가라국(加羅國, 고령), 제4곡 다사(達巳)는 다사(多沙·滯沙, 하동), 제7곡 하기물(下奇物)은 하기문(下奇汶, 남원), 제10곡 사팔혜(沙八兮)는 산반해(散半奚, 의령 신반), 제12곡 상기물(上奇物)은 상기문(上奇汶, 임실)과 같습니다. 더구나, 제5곡 사물(思勿)은 사물(史勿, 사천), 제9곡 거열(居烈)은 거열(居烈, 거창)과 같이,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확인되는 국명도 있습니다. 결국 우륵이 작곡했던 가야금 12곡명은 서부경남과 전북의 약간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던 가야 여러 나라의 국명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대가야의 가실왕은 어째서 가야 1국에 가야금 1곡씩을 부쳐 작곡시켰던 것일까요? 가실왕은 가야금 12곡의 제작 동기에 대해 "여러 나라의 방언(方言)이 각기 다르니, 어떻게 하면 통일할 수 있을까"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12곡명으로 표현된 가야 여러 나라를 통합할 수 있는 방편의 하나로 가야금 12곡은 작곡되었고, 가실왕은 이들 지역을 아우르는 영역적 팽창을 위해 우륵에게 작곡시켰던 겁니다. 물론 이것으로 가야금 12곡이 가지는 고도의 정치적 의미가 다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가야금 12곡의 배열과 대가야의 건국신화, 우륵의 출신지와 정치노선 등을 통해 좀 더 추구해 볼 생각입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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