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db.history.go.kr/item/pdfViewer.do?levelId=hn_019_0070 (문서파일)
* "발해 城址의 조사와 연구 - 송기호" 중 "Ⅳ. 지방도시성 - 
1. 府城 3) 蘇密城" 만 가져왔습니다.

소밀성(蘇密城)
 
중국 길림성 樺甸縣 縣城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輝發河 南岸에 위치한다.75) 북벽은 강가에 연해 있어 반 이상이 물에 씻겨 내려가버렸다. 외성과 내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그림 10), 외성은 둘레가 2,60m, 내성은 1,40m 이다. 의성은 동, 서, 남벽에 3개의 문이 있지만 북문은 이미 물에 씻겨 내려가버려 남, 서문만 남아 있는데 여기에는 甕城이 시설되어 있다. 내성은 가운데에 있고, 동, 서 두 개의 문이 있다. 또 이 성에는 角樓가 있지만 馬面(雉)은 없고, 해자는 외성 밖에 두 겹으로 돌렸다. 내성 서문 남쪽에서 돌로 쌓은 성벽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0) 소밀성
 
성 안에서는 붉은색과 회색의 布目무늬가 있는 암키와 조각들과 회색의 점토제 도기 조각들이 지표에 많이 널려 있다. 그리고 내성 북벽의 단면과 외성 서쪽 끝 단면에도 붉은색과 회색의 점토제 도기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이 외에 외성 동벽 안쪽의 내성 동벽 가까이에서 “木人’이라는 글자가 양각된 흑회색 점토제 陶豆柱 1개가 발견되었다.

소밀성은 발해사 연구에서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는데, 초창기에는 발해 중경(中京)의 소재지를 찾기 위해서였다.76) 그러나 중경의 소재지가 대체로 화룡현에 있는 서고성으로 비정됨에 따라 이제는 장령부(長嶺府)의 소재지로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장령부의 소재에 대해서는 영액성설(英額城說), 북산성자설(北山城子說), 영액문(英額門) 이북설, 해룡(海龍) 부근설 등도 있어 아직 고정되지는 않은 상태이다.77) 이 성 부근에는 많은 성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이 중 북산성자(北山城子)와 북토성자(北土城子)가 발해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주석

75) 이하 소밀성의 구조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였다.
李健才, 〈樺甸蘇密城考〉《黑龍江文物叢刊》1983―2, 1983
소밀성에 관한 글은 이밖에 다음이 있으나 아직 보지 못하였다.
鳥山喜一, 〈蘇密城に就いて〉《池內博士還曆記念東洋史論叢》座右寶刊行會, 東京, 1940 

76) 鳥山喜一, 〈蘇密城に就いて〉《池內博士還曆記念東洋史論叢》座右寶刊行會, 東京, 1940  pp. 132∼136
駒井和愛, 〈渤海の舊國·顯州·中京顯德府について〉《中國都城·渤海研究》雄山閣, 197
 
77) 장령부의 소재지로 소밀성을 꼽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이건재이다.
李健才·陳相偉, 〈渤海的中京和朝貢道〉《北方論叢》1982―1, pp. 75∼76
李健才, 〈樺甸蘇密城考〉《黑龍江文物叢刊》1983―2, 1983
丹化沙, 〈渤海歴史地理研究情況述略〉 《黑龍江文物叢刊》 1983―1, 1983 p. 19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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