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db.history.go.kr/item/pdfViewer.do?levelId=hn_019_0070 (문서파일)
* "발해 城址의 조사와 연구 - 송기호" 중 "Ⅳ. 지방도시성 - 
1. 府城 4) 大城子古城" 만 가져왔습니다.

대성자고성(大城子古城)
1989년 송기호

이 성은 중국 흑룡강성 동녕현(東寧縣) 북쪽으로 흐르는 수분하 남안(綏芬河 南岸)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수분하는 대성자 동쪽으로 흘러 중소 국경을 이루고 있는 호포도하(湖布圖河 -대오사구하:大烏蛇溝河)와 만난 뒤 소련 연해주의 쌍성자(雙城子:우수리스크)를 지나 블라디보스톡 근처의 아무르(Amur)만으로 들어간다. 대성자로부터 동남쪽 약 65km 거리에 쌍성자(雙城子:우수리스크)가 있는데 이곳에도 발해시기의 성이 있다. 대성자고성에 대해서는 1972년 張太(泰)湘등이 두 차례에 걸쳐 조사하여 알려지게 되었다.78) 

성지는 과거 만주국 시절에 보수되어 현재는 성벽 높이가 2∼5m가 된다. 성의 평면은 장방형으로 동서로 길쭉하고, 북벽 중간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그림 1). 둘레는 3,750m 이고 장축의 방향은 동쪽에서 남쪽으로 30° 기울어져 있다. 성벽에는 몇 개의 절단된 부분이 있지만 성문지인지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만 서벽 북쪽 부분에서 옹성(甕城) 하나가 발견되었고, 성벽 모서리에서는 각루(角樓) 흔적이 보였다. 성벽 밖에는 해자(호성하:護城河)를 돌렸는데 깊이는 2∼3m가 된다.

(그림 11) 대성자고성

이 성도 정식 발굴되지는 않았다. 다만 지표조사시 채집하거나 현지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수습한 것으로는 동제품으로 문고리(동포수:銅鋪首), 허리띠(대과:帶銙), 경첩(교련:鉸鏈), 자물쇠(쇄:鎖), 그릇뚜껑, 거울, 합(盒), 사리함, 불상 등이 있는데 이 중 상당수는 도금을 한 것이다. 그 외에 철제 문추(門樞), 암키와, 와당 등도 발견되었다.
 
성의 평면이 장방형으로 북벽 가운데가 돌출한 것은 당의 장안성이나 발해의 동경성과 비슷한 것이고, 고성 안에서 출토한 유물들의 다수가 동경성에서 발견된 것들과 같은 유형의 것인 점으로 보아, 이 성이 발해의 성임이 분명하며, 수분하(綏芬河) 79) 연안에서 최대의 고성지로서 팔련성이나 서고성보다도 더 큰 점을 감안하면 이곳이 발해 솔빈부(率賓府) 소재지로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이 보고되기 전에는 솔빈부의 소재지를 주로 소련 연해주의 쌍성자(우수리스크)에 있는 니콜리스크 성지(南우수리스크 성지)로 비정하는 것이 거의 정론이었으므로 아직은 단정하기 어렵다.

대성자고성 부근에서도 발해시기의 유적들이 다수 발견되었으니,80) 대성자고분군과 동녕 단결(東寧 團結)의 발해 평민 촌락 유적지가 있고, 대성자고성 동북쪽
의 포자연둔(泡子沿屯) 부근과 서쪽의 동녕진(東寧鎭)에서 발해시기 적석묘군(積石墓群)이 발견되었다.

 
주석

78) 張太湘, 앞논문
張泰湘, 東寧考古拾零 《黑龍江文物叢刊》1983―1

79) 이 강 이름과 발해 솔빈부(率賓府)는 서로 연관이 있다고 한다.
오클라드니코프(A. P. Okladnikov) 저·加藤九祚, 加藤晋平 역, 《シベリアの古代文化》講談社, 1974 p. 196
샤프쿠노프(E. V. Shavkunov) 저·송기호 역, 〈연해주의 발해 문화유적〉《백산학보》 30·31 합, 1985 p. 470

80) 黑龍江省博物館·黑龍江省文物考古工作隊, 〈黑龍江文物考古三十年主要收穫〉《文物考古工作三十年(1949∼1979)》文物出版社, 1979 p. 17
張泰湘, 東寧考古拾零 《黑龍江文物叢刊》1983―1 1981 p. 23
黑龍江省文物考古工作隊·吉林大學歷史系考古専業, 〈黑龍江東寧縣大城子渤海墓發掘簡報〉 《考古》1982―3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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