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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화사 - [가야] 가야 문화" 중 가야의 토기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가야의 토기

여러 가지 가야 토기

3세기 후엽에는 토기 생산 기술에 또 한번의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염(還元焰)으로 소성하여 만든 흡수성이 거의 없는 도질토기(陶質土器)의 출현이 그것이다. 삼한의 토기문화가 와질토기 중심이었다면, 가야의 토기문화는 바로 이 도질토기 중심의 토기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도질토기는 처음에는 둥근밑 항아리(圓底短頸壺), 귀달린 항아리(兩耳附短頸壺) 등의 호류만 제작되다가 4세기대 이후부터 점차 모든 기종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면서 세련된 곡선미를 특징으로 하는 가야 토기 문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5세기 이후 낙동강 동안(東岸)의 가야지역에는 특히 신라 세력의 영향이 여러 부분에서 눈에 띄는데 토기문화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상하 엇갈림의 2단투창 고배의 출현과 장경호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토기에 등장하는 직선적 요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신라적 요소는 신라 세력권의 확장과 병행하여 점차 가야의 전지역으로 확산해 가게 되는데, 6세기대가 되면 신라 토기 중심의 이른바 통일양식 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게 된다. 한편 가야토기의 제작 기술은 일본에 전해져 일본 고분시대 토기인 쓰에키(須惠器)의 발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의 여러 나라

가야는 통합된 결집체로서의 단일 국가가 아니라 여러 소국들의 연맹체였기 때문에 각 소국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문화적인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토기문화에 있어 이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에 각 지역권별 토기양식(樣式)의 규명은 해당지역 집단의 규모, 존속 기간, 영향력 뿐만 아니라 가야 연맹의 전반적인 성격과 규모를 가늠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대체로 부산,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金官)가야권, 함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라(阿羅)가야권, 고령 및 서부 경남의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권, 일찍부터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창녕 중심의 비화(非火)가야권, 경북 성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성산(星山)가야권 등 중추적인 대지역권과 여기서 다시 복잡하게 갈라지는 소지역권으로 구분된다. 이와 같은 지역색의 해명은 가야 지역 각 소국끼리의 개별적인 변천상은 물론 집단 상호간의 연관성 및 주변 고대 국가들과의 교섭 관계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연구 기반이 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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