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67960

5만 원에 사들인 광양군수, 이런 사연 있었네
[게릴라칼럼] 구한말 매관매직, 결국 국가를 뒤흔들었다
12.08.16 19:19 l 최종 업데이트 12.08.16 20:23 l 김종성(qqqkim2000)

▲  민영환의 순국을 기리는 기념물.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에 있다. ⓒ 김종성

서울 조계사에서 인사동 쪽으로 가는 인사동5길을 걷다 보면, 구한말의 애국자를 기리는 역사유적이 나온다. 1905년 을사늑약(소위 을사보호조약) 체결에 반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영환의 순국정신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이 민영환과 고종 임금이 얽힌 이야기가 구한말의 정치 비화록인 황현의 <매천야록>에 소개되어 있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민씨 외척세력의 일원인 민영환은 고종과 자주 만남을 가졌다. 민영환(1861년 생)은 고종(1852년 생)보다 9살 연하였다. 지위로 보나 나이로 보나 고종이 민영환보다 세상을 훨씬 더 잘 알았다. '고종이 세상을 훨씬 더 잘 알았다'는 표현을 기억해두자. 

민영환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고종에게 장인인 서상욱을 군수에 임명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고종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어느 날 한 번은 "장인이 아직도 군수가 되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을 뿐이다. 

하도 반응이 없자, 민영환은 기회를 보아 또다시 청탁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고종은 "내가 잊어버릴 뻔했군요. 곧 이름을 적어서 내리겠습니다"라며 전라도 광양군수 자리를 주겠노라고 대답했다. 이때가 1901년 5월 초순이었다. 민영환이 마흔한 살 때였다. 

민영환은 무척 기뻐했다. 임금이 자신을 믿고 인사 발령을 내려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집에 돌아온 민영환은 어머니에게 "오늘 황상께서 장인에게 군수 자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동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당시는 대한제국 시대였으므로 주상 대신 황상이란 표현이 쓰였다. 민영환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렇게 어리석으니, 어찌 황제의 외척이라 할 수 있겠느냐? 황상께서 어찌 자리를 제수하면서 너한테만 후하게 대했겠느냐? 내가 이미 5만 원을 상납했느니라."

민영환의 어머니가 이미 뇌물을 상납했는데도, 고종은 깜빡 잊고 인사발령을 내리지 않았던 셈이다. 당시 고종은 돈을 받고 관직을 파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일이 많았기 때문에, 돈을 받고도 깜빡하고 있었던 것.

"내가 이미 5만 원을 상납했느니라" 

구한말의 화폐 개혁으로 인해 1901~1905년에는 화폐 단위로 원·량·민 등이 혼용되었다. <매천야록>에도 여러 가지 단위가 뒤섞여 있지만, 그냥 원으로 통일해서 이해해도 무방하다. 당시 관찰사 자리는 10~20만원이고, A급 지역의 군수 자리는 5만 원 이상이었다. A급 지역은 세금이 많이 걷히는 곳을 의미한다. 광양군수 자리가 5만원에 팔린 것을 보면, 당시 광양군의 재정수입이 괜찮았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1905년 당시 황성신문 논설위원의 월급은 30~40원, 1908년 현재 목수의 일당은 82전이었다. 목수가 30일 내내 근무할 경우에 한 달 수입은 24.6원이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다면, 1905년이나 1908년에는 관직 가격이 좀더 올랐을 수도 있겠지만, 1901년의 관직 가격이 1905년이나 1908년에도 그래도 유지되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30원을 버는 논설위원이 5만 원짜리 군수가 되기 위해서는 139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오로지 글만 써야 했고, 24.6원을 버는 목수가 5만 원짜리 군수가 되려면 169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대패만 밀어야 했다. 이런 점을 비춰보면 고종이 받은 5만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할 수 있다.  


▲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 실린 민영환의 모습. ⓒ 중학교 국사 교과서

위 일화는 구한말의 매관매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준다. 일반 관리들은 물론이고 황제까지도 매관매직에 나섰을 정도였다. 친한 외척한테까지 돈을 받고 자리를 내주었으니, 고종이 이 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야박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민영환은 고종과의 친분만 믿고 '맨 입으로' 수없이 청탁을 했던 셈이다.

결국 고종은 민영환 몰래 민영환 부모로부터 돈을 받은 뒤에야 관직을 내주었다. 위에서 '고종이 민영환보다 세상을 훨씬 더 잘 알았다'고 언급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하지만 고종보다 훨씬 더 세상을 잘 아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 그들은 잠시 뒤에 소개하기로 하겠다. . 

<매천야록>의 저자인 황현은 시간이 흐를수록 매관매직이 더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래 문장에서 '이때'는 1901년을 가리킨다. 

"이때 매관매직의 남발은 갑오년(1894)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심했다. 그래서 외척과 친한 사람일지라도 감히 한 자리를 넘볼 수 없었다."

갑오년은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한 해다. 동학전쟁 후에 매관매직이 훨씬 더 성행했다는 것이다. 나라를 잘못 다스려서 그런 화를 당하고도, 조선의 관료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웬만한 경우라면 외척과 친한 인물은 관직을 그냥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시기에는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돈이 없으면 연줄도 소용없었던 셈이다. 

매관매직 남발... 공금에까지 손 댄 그들 

기막힌 것은, 매관매직을 위한 자금의 상당액수가 국고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관료들이 승진을 청탁할 때 제공한 뇌물은 거의 다 공금이었던 것. 

황현은 "관리들이 (매관매직을 위해) 손대는 것은 결국 공금이었으므로, 국고가 자연히 감축되었다"고 했다. 고종은 자신이 돈을 받고 관직을 판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돈은 국고 자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고종보다 훨씬 더 세상을 잘 아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금을 훔쳐서 고종으로부터 관직을 사는 관원들이 많았으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관리들이 공금을 훔쳐 관직을 사면 공금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었으니, 구한말의 서민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  서울 덕수궁 중화전 앞의 품계석. 구한말의 유능한 인재들은 매관매직 풍조로 인해 이 자리에 설 기회를 잃었다. ⓒ 김종성

사실, 매관매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쪽은 일반 서민이라기보다는 국가 자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왜냐하면 매관매직이 심하면 체제 붕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학농민전쟁 2년 전인 1892년에 과거시험에 응시했다가 탈락한 김구가 <백범일지>에서 회고한 바 있듯이, 구한말의 매관매직 풍조는 과거시험 응시자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었다. 

"(답안지로 제출하는) 글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서울 권세가에 보내는 청탁 편지 한 장이나 시험 감독관의 수청 기생에게 주는 비단 한 필이 진사 급제가 되기에는 글 잘하는 선비의 글보다 빨랐다."

답안지를 잘 쓰기보다는 뇌물을 주는 편이 합격에 유리했다는 말이다. 이처럼 돈을 주지 않으면 과거시험에도 합격할 수 없고 승진도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조선왕조였다.  왜냐하면 '우수하지만 정직한 인재'나 '우수하지만 돈이 없는 인재'들이 왕조의 일꾼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관매직이 위험한 이유 

김구(1876년 생)뿐만 아니라 이승만(1875년 생)도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새로운 곳에서 활로를 찾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구한말의 과거시험은 유능한 청년들을 조선왕조 체제 안으로 흡수하는 데 실패했다. 과거시험이 인재선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이다. 참고로, '이승만이 유능했다'고 말한다 하여 그가 훌륭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므로 오해 없기를 바란다. 

구한말에 청년 시절을 보내고 1945년 해방 직후에 민족지도자 반열에 오른 사람들 중에 구한말 관료 출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구한말의 매관매직 풍조로 인해 유능한 청년들이 조선왕조를 위해 일할 기회 자체를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능한 청년들이 좀더 많이 조선을 위해 일했다면, 조선의 운명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매관매직의 최대 피해자는 조선왕조 자체였던 셈이다.  

이 점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공천헌금 파문 같은 매관매직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관매직은 일반 서민들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무엇보다 대한민국 자체에 가장 큰 피해를 준다. 매관매직 풍토는 대한민국을 좀 먹는 행위다. 매관매직에 대해서 이적행위 못지않은 불이익이 가해져야하는 이유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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