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70804&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6

치마저고리 소녀는 왜 주먹을 불끈 쥐었을까
[현장] 1000차 수요시위... 1500여명 성황 '평화비' 세워
11.12.14 17:45 ㅣ최종 업데이트 11.12.14 18:03  김경년 (sadragon) / 유성호 (hoyah35)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 김순옥(90, 사진 맨 왼쪽 시계방향), 박옥선(88), 길원옥(84), 김복동(85)할머니들과 참가자들이 전범자 처벌과 일본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수많은 참가자들이 전범자 처벌과 일본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일본 대사관을 응시하는 치마저고리 소녀
 
단발머리 소녀는 맨발에 치마저고리를 단정하게 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대의 가녀린 얼굴로 앞을 차분히 응시하고 있지만 두 손만은 불끈 쥐고 있었다. 마치 '당신들이 한 짓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이. 정면에는 할머니들이 지난 20년 동안 1000번을 오가며 손가락질했던 일본대사관이 있다.
 
1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는 여느 때와는 달리 비장감이 흘렀다. 이 날은 지난 1992년 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처음 수요집회를 시작한 지 꼭 1000회차를 맞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날을 오가며 차가운 길바닥에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상대인 일본 정부는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우리 편이 되어 줘야 할 한국 정부도 마지못해 도와주는 시늉만 하다가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리고서야 부랴부랴 회담을 제의했다. 그마저 일본 정부는 대꾸를 하지 않고 있다. 마치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는 듯.
 
실제로 정부에 등록된 254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제 63명밖에 안 남았다. 워낙 고령이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생존자 수는 줄어만 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본의 범죄 행위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평화비'를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우기로 했다.
 
'평화비'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소녀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이 비를 만든 조각가 김운성씨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일본인들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인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끔찍한 고통과 상처를 고스란히 받았던 것은 어린 나이의 소녀들이었다"며 "그래서 소녀상을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놓고 '너희들이 한 짓을 똑똑히 봐야 한다'라고 증거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고생 "할머니들 모두 돌아가셔도 시위 이어나가야"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어보이며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직접 쓴 피켓을 들어보이며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할머니들의 아픈 기억과 쓰린 상처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직접 쓴 피켓을 들어보이며 일본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오늘 1000차 수요집회에는 각계의 관심을 반영하듯 시민과 학생, 취재진 등 15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구령에 맟춰 피켓을 흔들고 구호를 외칠 땐 마치 촛불집회가 연상되었다.
 
자원봉사를 위해 이 자리를 찾았다는 고3 한다빈양은 "잘못을 했으면 마땅히 사죄하는 게 맞는데 저런 거(평화비)까지 만들어 보여줘야 한다는 게 너무 화난다"며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셔도 여기 모인 사람들과 평화비가 함께 집회를 이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사수업의 일환으로 현장을 찾은 서울 문창고 3년 장승원양은 "일본이 빨리 죄를 인정하고 사과해서 할머니들이 더이상 이렇게 추운 곳에 나와 시위할 필요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이지연양은 "수요집회 1000회라는 역사적인 현장에 동참할 수 있어서 마음이 뿌듯하다"며 "역사를 왜곡하려는 일본이 정말 밉다"고 말했다.
 
사회자 권해효씨는 "20년을 차가운 길바닥에서 보내야 했던 할머니들이 다음주에도 다시 수요집회를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그런 날을 위해 연대할 것을 부탁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별 문제 없이 평화비를 세울 수 있을지 걱정됐으나, 여러분들이 뜻을 모아준 덕분에 무사히 세울 수 있었다"며 "오늘 1000차 수요집회는 완성도 끝도 아니며 다음주에 1001차 집회를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윤 대표는 그간 많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회상하는 듯 "오늘 할머니가 5분밖에 나오지 못하신 게 1000회의 역사를 설명하는 듯하다"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뉴욕에 가신 이용수, 이옥선 할머니에게는 집회 시작전 스카이프로 서울의 모습을 보여드렸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 일본 정부에 사죄하라고 엄중히 말해줬으면"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길원옥(84)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연대발언을 경청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유성호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정대협 한국염 공동대표와 윤미향 상임대표가 배우 김여진, 1인저널리스트 '미디어몽구'(본명 김정환) 등이 소셜네크워크를 통해 모은 성금으로 마련한 승합차의 키를 전달받은 뒤 참가자들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할머니 대표로 연단에 오른 김복동 할머니는 "피어보지도 못한 소녀들을 외국 전쟁터에 끌고가서 노예처럼 짓밟은 역사를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 모르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과거 잘못한 것을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엄중히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특히 일본 대사관을 향해 "일본 대사는 들어라! 평화의 길이 열렸으니 죽기 전에 사죄하라, 알겠는가 대사!"라고 호통쳤다.
 
이날 집회에서는 수요집회에 가는 할머니들을 실어나르는 승합차가 낡았다는 소식을 듣고 트위터에서 모은 돈으로 구입한 승합차의 전달식이 열리기도 했다.
 
윤미향 대표는 집회가 끝난 뒤 가진 노상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일본에게 엄청난 부끄러움을 남기는 날이지만 할머니들에게 오늘은 승리의 역사라는 걸 함께 한 수천 명의 시민들이 증명한다"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1000차 수요집회를 맞이하여 세계 각지에서는 세계여성폭력추방일인 지난달 25일부터 오늘까지 세계연대행동기간으로 결의하고 다양한 연대행동이 열리고 있다.
 
뉴욕 쿠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에서는 13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이 만나는 행사가 열렸고, 14일 독일 베를린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연대집회가 열린다. 일본 도쿄에서는 '외무성을 인간 사슬로 포위하자'는 연대집회가 열리는 등 전 세계 9개국 37개 도시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국제 연대 집회가 개최된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 김순옥(90, 사진 맨 왼쪽 시계방향), 박옥선(88), 길원옥(84), 김복동(85)할머니들이 시민사회의 모금으로 건립한 평화비를 안아보고 있다. 평화비는 한복을 입고 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10대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높이 130cm의 비로 할머니들이 항상 시위하던 일본대사관 정문에서 불과 15m 떨어진 건너편 인도에 설치됐다. ⓒ 유성호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수많은 참가자들이 전범자 처벌과 일본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한명숙 전 총리와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 유정현, 김성회 의원,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박영선, 원혜영, 최영희, 전현희,이미경,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등이 참석해 연대의사를 밝혔다. ⓒ 유성호


일본인 참가자 "할머니들 1명이라도 살아계실 때..."

▲ 1000차 수요집회에 참가한 일본인 미즈노씨가 응원 헝겁을 모아 만든 플래카드를 펼쳐보이고 있다. ⓒ 김경년

오늘 1000회 수요집회 현장에는 한국 시민뿐만 아니라 피켓을 들고 참가한 외국인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특히 일본 정부의 책임에 공감하는 일본인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왔다는 미즈노 이소코시(75.여)씨는 '아이치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 회원이라며 "오늘 1000차 수요집회에 동참하기 위해" 동료 13명과 함께 어제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미즈노씨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단 1명이라도 살아남아 있을 때 일본 정부가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며 "한국에서 이같은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사회에 알리기 위해 우리 회원들이 매월 1번 수요집회를 열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 지난 11일 나고야의 사카이마치에서는 회원 160여 명이 모여 1000차 집회의 사전모임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미즈노씨는 1000차 집회를 맞아 회원들이 직접 손으로 쓴 응원 천조각을 모아 만든 플래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어 "나고야시의 63개 지자체로 하여금 일본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싣도록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며 "내년 3월과 6월 의회가 열리는 시기에 맟춰 행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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