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583

묘기'에 가까운 중앙일보의 '4대강 담합론', 그 의도는?
'4대강 국정조사' 정당화시키며 동시에 부당하단 입장도 섞어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입력 2014.11.21  14:33:58

새정치민주연합이 예산 정국에서 ‘사자방 국정조사’를 전면에 내걸면서 여당 내부에 미묘한 갈등이 감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일보>가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 중앙일보 21일자 1면.

<중앙일보>는 21일 1면에 <4대 강 담합에 발목 잡힌 건설 수출>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내용은 좀 고약하다. 국내 대형건설업체들이 4대강 사업에서 담합을 했다는 혐의로 과징금을 받은 사실이 해외 프로젝트 수주에도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는 ‘4대강 사업 트라우마’라고 할 만한 일로 외국의 기준에서 보기에는 ‘담합’을 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될만하긴 하다. 게다가 국내 건설업체들이 담합에 따른 거액의 과징금과 입찰제한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부담은 부담이다. <중앙일보>는 이런 국내 건설업계의 딱한 사정을 걱정하는 “정부도 지나치게 몰아가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코멘트를 덧붙였다. 국내 건설업계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기사다.

이어지는 <중앙일보>의 4면과 5면 역시 화려하다. <중앙일보>는 이날 4면에 <담합 부르는 턴키·최저가 낙찰…“정부가 판 깔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5면에는 <수공 빚 8조 누가 갚나 다투다 4대강 예산 심의 올스톱>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연결해서 맥락을 읽어보자면 이런 거다. ‘정부가 공공공사를 애초에 건설사들이 담합을 할 수밖에 없는 형식으로 내면서 책임은 건설사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국정조사 한 번 해볼까? 어떻게 되나…’


▲ 21일자 중앙일보 4면, 5면.

실제로 건설사들의 입장에서 공공공사의 발주를 턴키 방식으로 하고 최저낙찰제를 적용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에는 일견 정당한 측면이 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여러 공구를 동시에 발주하면서 이 방식을 따르는 불합리성이 있었다. 결국 건설사들은 공구를 나눠 서로 짜고치는 방식으로 입찰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도 과징금에 더해 검찰수사, 입찰제한, 민사소송의 4중 제재를 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게 <중앙일보> 4면 기사의 요지다.

<중앙일보>는 심지어 오피니언면의 ‘분수대’ 코너를 통해서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칼럼은 무인우주선 로제타호와 탐사로봇 파일리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부분은 “들어간 돈 1조7000억원도 말 많고 탈 많은 4대강 후속사업으로 내년에 쓸 예산만큼이란 걸 보면 ‘껌값’인 셈이다”라는 문장 하나밖에 없다. 이 한 부분을 두고 제목을 <내년 4대강 사업 예산이면 할 수 있었던 일>로 뽑았다. 의도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부분이다.

▲ 중앙일보 21일자 분수대.

<중앙일보>의 이러한 지면 편집은 야권이 제기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한 국정조사론에 은근슬쩍 건설업계의 사정을 반영할 수 있는 여론을 조성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만일 야권이 4대강 사업을 통해 관급공사의 턴키 발주와 최저낙찰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면 <중앙일보>의 노력은 나름 헛되지 않은 것이 된다. <중앙일보>하면 삼성, 삼성에는 삼성건설이 있으니 이런 측면에 있어서도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건설 역시 4대강 사업의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중앙일보>의 이러한 의미심장한 편집은 최근 정치권의 논의와 맞물려 나름의 정치적 맥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야권은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국정조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5면에서 전하는 것처럼 이 문제 때문에 국회가 예산안 처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문제는 여당 내부에서도 야당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20일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사업에 대한 분석과 평가, 판단 작업을 해야 한다. 어떻게 (사업을) 수정 보완하고 국가경제와 관련해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창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졌고 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도 이날 “있는 그대로 그 실상이 알려져야만 그 다음에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찾아 시스템 개혁이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하든, 감사를 하든 구조적이고 근본적 비리와 문제점의 해결 방법은 딱 한 가지”라고 발언했다. 사실상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물론 일부 의원들의 이런 발언에도 불구하고 당내 주류는 국정조사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자리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들의 발언을 “개인의견”이라고 규정하며 분명한 선긋기를 한 것이 이를 반영한다. 대표적인 친박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역시 21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금 단계에서 국정조사를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 “이인제 의원도 ‘필요하다면’이라고 토를 달았으니 꼭 국정조사를 해야되겠다고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말해 ‘톤다운’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중앙일보>와 같은 방식으로 보수언론마저 4대강 사업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이 흐름이 구 친이계와 친박계의 충돌이라는 계파적 비극을 불러올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국정조사 요구가 야당의 ‘정략적’ 차원에만 머문다면 괜찮지만 <중앙일보>의 방식처럼 건설사들의 이해를 끼고 문제가 제기될 경우 이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친박계의 입장에서는 자원외교 부분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연루될 수 있긴 하지만 4대강부터 국정조사를 진행할 경우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볼 게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하지만 친이계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결코 받을 수 없는 주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 중 벌인 사업들이 모두 폄하될 우려가 있으며 실제로 각종 이권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회고록까지 쓰는 상황에서는 4대강 국정조사 요구를 친박계가 모른 척 수용하자는 액션을 취하는 순간 친이-친박 갈등이라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상황까지 가기 전에 정부여당은 알아서 상황을 잘 관리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 ‘관리’와 ‘노력’의 영역에서 <중앙일보>가 얻게 되는 어떤 이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굳이 논증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바다. 그것은 정치적인 것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하찮은 것일 수도 있고 정말 대단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언론의 본령을 명백하게, 하지만 겉보기에는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중앙일보>의 묘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묘기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이 언론비평의 역할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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