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하단

관미성의 옹진반도설

“옹진성은 성이 낮고 얕은 데다가 응암산이 동남쪽을 누르고 있어 적의 화살이 미칠 수가 있고, 성 밖에서도 성 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곁에 옛 토성 자리가 있는데 3면이 바다에 닿고 지세가 험해서 의지할 만합니다. 이곳에 성을 쌓는 것이 좋겠습니다(세종실록 권5, 14년 정월 신묘일)”라는 기록이 있다. 옹진반도에 소재한 이 토성은 관미성의 지세에 대한 “그 성은 사면이 절벽이요 바다가 둘러져 있다”는 묘사에 어긋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토성은 인천 앞바다의 덕적도 부근에서 연평도와 백령도 연안을 지나 황해도 은율 앞바다에 소재한 초도(椒島)를 중간 기항지로 하여 올라 가는 노철산수도(老鐵山水道)나, 황해연안을 따라 올라 가다가 초도(椒島)에서 꺽어져 산동반도 끝의 적산(赤山)으로 직통하는 적산항로라는 중국대륙과 통하는 양대 수로를 관장할 수 있는 요진(要鎭)이었다. 그러므로 옹진반도 끝에 축조된 이 성곽이 해도(海島)는 아니면서도 바다까지 통제할 수 있는 요진이요 군항(軍港)이었으므로 관미성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출처 : 
http://db.history.go.kr/download.do?levelId=kn_074_0030&fileName=kn_074_0030.pdf
* 古代國家의 成長과 交通路 - 이도학" 중  "Ⅳ.고구려의 성장과 교통로 -  34.수상 교통로의 확보, p163"의 107) 주석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원출처 :  
李道學, 漢城百濟의 歷史와 文化, 1995, pp.85~86)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