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35665


'진짜 부정선거' 양심선언합니다... 민경욱 의원 보십시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나는 '진짜 부정선거'에 관여했다

20.04.24 07:34 l 최종 업데이트 20.04.24 07:34 l 최종선(news)


글쓴이 최종선씨는 1972년도부터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던 중, 형인 최종길 서울대 교수가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는 일을 겪게 된다. 그는 1988년에 최종길 교수의 명예회복과 진실 규명을 위해 자신의 '수기'를 공개했고, 이후에도 '박정희 시대'의 참상을 고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현재는 미국 워싱턴에 거주 중이다.[편집자말]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야당 후보들, 극우 유튜버들이 현 정부가 부정선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보며, 불현듯 지난날 제가 겪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박정희 시대의 선거가 과연 어떠했는지, 부정선거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그들에게 좀 일깨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부정의 핵심 집행주체였던 필자가 본 지면을 빌려 증언하겠습니다.아래 내용은 필자의 책 <'산 자여 말하라' 겨울공화국 이야기 Ⅰ, 나의 형 최종길 교수는 이렇게 죽었다>(199쪽~203쪽)에 담았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야당 후보를 당선시키라는 '특명'

 

▲  투표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가족들(연합뉴스 자료사진) ⓒ 연합뉴스

 

1978년 12월 저는 인천에 있는 중앙정보부 경기지부에서 인천시를 담당하고 있던 직원이었고, 그해 12월 12일은 제 10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날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시 최아무개 지부장이 부르더니 가는 길도 잘 모르는 성남·여주광주·이천 지역구로 당장 내려가서 대통령 특명을 수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천 지역 담당관인 저는 인천 지역을 팽개쳐 놓고 졸지에 그날 밤중으로 다른 동료 몇 명과 함께 성남으로 갔습니다.


그 지역구에는 8대, 9대 의원으로 신민당 소속이었던 O가 무소속으로 출마했습니다. 여당인 공화당에선 경호실장 차지철로부터 지역구를 넘겨받은 이른바 '최후의 차지철 맨' J, 신민당에서는 Y가 출마했습니다. 그래서 3파전 양상이었는데, 1위는 O, 2위는 J, 3위는 Y의 순서로 분석되고 있었습니다. 1위 O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데 3위 Y의 인기는 있는지 없는지 미풍조차도 안 느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는 중선거구제라 한 지역구에서 2명의 국회의원이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대통령의 특명이라는 게 이 하늘을 찌르는 인기의 'O'를 낙선시키라는 것이었으니, 자연히 여당의 'J'와 비록 야당인 신민당이지만 'Y'를 당선시켜 줘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대통령 특명이라지만, 그래도 반대당인 야당 후보를 밀어줘야 한다니, 이 무슨 희극 중의 희극인지. 그런데 왜 O를 그렇게 죽기를 한하고 꼭 떨어뜨려야 했을까요. O가 당내에서 발언하기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뽑더라도 거기 나가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판 붙어보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괘씸죄·불경죄에 걸려들어 '기필코 떨어뜨리라'는 특명이 내려오게 된 것이고, 그래서 장기 졸인 저는 그를 떨어트리기 위해 그곳 성남까지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고 싶지도 않고 할 방법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당 성향의 사회 단체장들 정도를 불러다가, 야당인 신민당을 도와주라고 압력 넣는 게 고작이었는데,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단체장들의 묘한 표정이었습니다. 아마 속으로는 "야당 밀어주는 정보부원 들은 내 생전에 처음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며칠 우스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당 후보인 J씨가 얼굴이 벌건 채로 우리 사무실로 쳐들어 와서 "아니 여당 표를 모두 뺏어다가 야당에 넘겨주니 세상에 이런 법도 있소!" 하고 소리치는 겁니다. 그가 한때 정보부에 몸담은 적도 있어서 서로 안면이 있는 다른 직원들은 민망하고 미안하니까 슬금슬금 모두 피해 버렸고, 안면이 없는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2등이라도 잘 하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차지철에게도 항의하고 당 고위층에도 항의하고 했다지만, 아무리 차지철이라 한들 그 특명이 대통령한테서 직접 나간 건데, 그인들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냥 유야무야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선거 전날인 1978년 12월 11일 오후 2시쯤 본부에서 지부장(당시 중앙정보부 경기지부장 A)이 직접 전화를 해 왔습니다.


"어때?"

"깜깜합니다."

"안 되겠지?"

"네."

"1억 주면, 못 돌려?"

"안 됩니다."

"알았어! 그런데, 아직 하룻밤 남았는데, 끝까지 안 해 봤다고 뭐라 안 할까?"

"3천만 주세요, 하는 척이라도 해보게."

"알았어, 기다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받았습니다.


"차장 얼굴 알지?"

"몰라요."

"어쨌든 성남 검문소로 4시에 가봐. 차장이 직접 갈 거야."

"만 원권 신권으로 주세요."

"알았어."


그날 오후 4시. 성남대로에 있는 헌인릉을 바로 지나면 나오는 검문소에 가서 기다리니까 당시 중앙정보부의 국내담당 차장이 왔습니다. 3천만 원인지 얼만지 열어 보지도 않은 채 누런 과일 봉투 뭉치 통째로 받아 가지고 왔더니, 다른 직원들 모두가 무슨 사람 죽이는 폭탄이라도 보는 양 몸을 사리면서 꼬리를 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관계없었습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을 증언할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에 살고 있었기에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시장과 서장까지 불러... 이것이 부정 선거다

 

▲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의 막내 동생이자 중앙정보부 직원이었던 최종선씨 ⓒ 최종선


저의 양심선언 수기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간첩 최종길의 동생이 어떻게 중앙정보부 안에서도 극비 중의 극비인 이런 특명 공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형이 정말 간첩이라면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하는 의혹, 그런 의혹만 일어나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제 한 몸 기꺼이 던질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으니,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나의 형은 이렇게 죽었다... 조국의 국민에게 호소한다")


그 돈을 봉투에 1만 원권 한 장씩 넣어서 성남의 달동네 빈민가에 그 날 밤중으로 모두 뿌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보부 직원 대여섯 명이 봉투에 돈 나누어 넣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 밤새 그 많은 걸 길도 모르는 '산동네·달동네·별동네' 수 천 집에 가가호호 일일이 뿌린단 말입니까? 더구나 반대편 선거 운동원들의 감시도 삼엄한데...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결국은 성남시장과 경찰서장을 불렀습니다. 성남시청 회의실에 시청 산하 동장 및 사무장 통장들 수십 명을 소집해서 봉투와 돈을 나눠주고, 봉투에 일일이 넣어 밤에 모두 돌리도록 했습니다. 경찰서장에게는 돌리다가 반대편 운동원들에게 붙잡혀오는 사람 있으면 알았다 하고 잠시 잡아두었다가, 뒷문으로 모두 내보내 주라고 했습니다. 제 평생에 그런 부정 선거는 그 이후 다시 보려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개표 결과는 당초 예상대로 1위 'O', 2위 'J'였는데, 그렇게 어렵게 당선된 그 두 분도 다음 해 10·26이 일어나면서 국보위가 생기고 국회는 해산되어 버렸으므로 유감스럽게도 단명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증언을 "아무려면 대통령이 직접 시켰을라고"라며 안 믿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3천만 원이라는 돈, 지금도 큰 돈이지만 그 당시로는 진정으로 큰 돈이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 2편 344쪽을 보면, 1979년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정보부장이 쓸 수 있는 비용의 한도는 "한 달 판공비 한도 1억 원 및 미화 1만 달러, 봉급 60만원, 가족 생계보상비 120만 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중앙정보부장의 한 달 봉급이 고작 60만원인 데,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는 특명이 아니었다면, 부장도 아닌 차장이 어찌 1억 원을 주겠다 하고, 3천만 원을 휴지 뭉치 던져주듯 할 수 있었겠습니까?


<남산의 부장들> 2편 147쪽을 보면,  J가 79년 비명에 간 차지철의 시신을 수습하고 가족 뒷바라지를 한 '마지막 차지철 맨'이 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차지철 경호실장과 특별히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던 J를, 당시 권력이 막강했던 차지철이 도와주고 싶지 않아서 안 도와주었겠습니까? 경호실장인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박정희의 '특명'으로 집행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그로서도 달리 어찌 할 길이 없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이게 바로 부정선거라는 것입니다. 반면 지금 같은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통합당 일부 인사들의 작태는 국민을 편 가르는 망국적 배신행위일 뿐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한마디 더 해 두렵니다. 이곳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살면서 가장 부끄럽고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그 존귀하고 숭고해야 할 우리의 태극기를 왜 그렇게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들고 나와 능멸하는지, 거기에 한 술 더 떠 남의 나라 국기는 왜 들고 나오는지, 이제는 거기에 한 술 더 떠 남의 나라 대통령에게까지 청원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디 민족적 자존심이 무엇이고, 애국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 부정선거 의혹 제기한 시민단체, 기자회견 열어준 민경욱  제21대 총선 인천 연수을에 출마했다 낙선한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인천범시민단체연합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4·15 총선 국민적 의혹을 밝혀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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