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010


최저생계비로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 할아버지

[3.1절 이야기] 공식기록 없다고 국가유공자 지정 안돼…단국대 학생 도움으로 역사 강연자로

입력 : 2015-02-27  17:30:50   노출 : 2015.03.01  07:50:45 장슬기 기자 | wit@mediatoday.co.kr


“여러분, 일제강점기에 가장 먼저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간 마을이 어딘지 아시나요?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내앞마을이에요. 내앞마을은 의성 김씨 집안이 모여 사는 곳이죠.”


애국의 대가는 빈궁했다.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79)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한 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김시진씨의 증조할아버지 김대락 선생, 할아버지 김홍식씨, 아버지 김문로씨는 모두 일제강점 첫 해인 1910년 말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기여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하지만 중국에서 선친들의 독립운동 기록을 증명할 공식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시진씨는 최저생계비로 생계를 이어갈 뿐이다. 


▲ 지난해 10월 24일 금천고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강연하는 김시진 할아버지. (사진 = 단국대 이승원 학생 제공)


국권을 빼앗긴 1910년 김씨집안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했다. 당시 김시진씨의 아버지 김문로씨가 18살이었다. 탄압을 피해 만주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던 중 김시진씨는 1936년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고 살다가 2001년이 돼서야 한국에 들어왔다. 그간 김씨 집안은 뿔뿔이 흩어지고 몰락했다. 미국으로 망명해서 소식이 끊긴 할아버지, 독립운동으로 건강이 악화돼 59살에 세상을 뜬 아버지를 대신해 내앞마을을 찾았지만 백년전 땅은커녕 친척들 산소조차 찾기 힘들었다. 


안동대학교 사학과 김희진 교수가 쓴 <안동 내앞마을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와 김시진씨의 증언에 따르면 안동 의성김씨 집성촌에 살던 김대락(김시진씨 증조부) 선생은 만석꾼이었다. 일제의 침탈이 극심해지자 김대락 선생은 자신의 재산을 기부해 협동학교를 세웠다. 협동학교는 1907년 3월 설립돼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곳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안동 지역을 이끌었던 곳이다. 


<안동 내앞마을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에서 김희진 교수는 “내앞마을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두가지 큰 특징을 가진다”며 “하나는 전통성이 강한 안동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발원지가 이 마을이고 또 하나는 1910년 나라가 무너지자 만주를 망명해 서간도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는데 이 마을 출신이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만주로 옮겨 몸 바친 인물 약 150명에 대한 추적 작업을 지금 추진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결과를 학계에 보고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해 10월 24일 금천고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강연하는 김시진 할아버지. (사진 = 단국대 이승원 학생 제공)

 

김시진씨는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영등포구 대림동에 거주하며 폐지를 줍고 살다가 국가유공자 제도를 알게 돼 보훈처를 찾았다. 하지만 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관련)공식 기록이 필요하니 차분히 기다려 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부가 김씨에게 제공하는 돈은 매월 45만원이다. 김씨는 “월세 25만원을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사연을 듣고 4년 전 단국대 학생들이 김씨를 찾았다. 비영리단체 ‘인액터스’ 소속 단국대 학생들은 김씨가 강연가로 자립할 수 있게 ‘투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투혼을 본받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겠다는 취지로 단국대 학생들은 김씨가 학교에서 생생한 역사강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재까지 김씨는 구현고, 동답초 등 13개 학교에서 의성김씨 집안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다음 강연은 서울 은평에 있는 세명컴퓨터고에서 전교생을 상대로 열릴 예정이다. 


▲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 할아버지(사진 가운데)의 강연을 돕고 있는 단국대 황지은(사진 왼쪽) 학생과 이승원 학생. (사진 = 장슬기 기자)

 

단국대 학생 황지은씨(22)는 “할아버지(김시진씨)가 학생들에게 아픈 과거를 생생하게 얘기해줄 때 이를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길 바란다”며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부당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이 투혼 프로젝트의 취지”라고 말했다. 단국대 학생 이승원씨(23)도 “독립운동가가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며 “우리도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본받고자 지속적으로 할아버지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단국대 학생들은 강연 학교를 섭외하고 강연 자료를 만들어준다. 김시진씨의 강연료는 학교에서 받지 않고 학생들이 기업에서 받은 후원금을 통해 충당한다. 


김씨는 “학생들이 독립운동가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강연을 도와주거나 가끔 집에도 방문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김씨는 “서울시청에서 2012년 광복절 타종행사에 참여해달라고 해서 갔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천해줘서 임대주택에 살게 됐다”며 “아내(권순례, 78)와 함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