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삶과 죽음을 가른다
김진혁  2015년 4월 8일 19시 27분 수요일 


요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다음과 같은 표어를 만나게 된다.

“사고 시 죽고 사는 것은 안전띠가 결정합니다.”

보는 순간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다소 섬뜩한 표어긴 하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렇다면 과연 평상시에 우리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건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하나 존재한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제임스 길리건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에서 발생한 살인율과 자살률의 그래프를 살펴보다 우연히 그 추이가 다른 무언가와 거의 흡사하게 겹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게 다름 아닌 특정 정당의 집권 기간이었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했을 땐 살인율과 자살률이 올라가고, 반대로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했을 땐 살인율과 자살률이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언뜻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 자료가 지나치게 정확하게 일치하다 보니 오히려 그 상관관계를 단정 짓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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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길리건에게 두 가지 자료가 과학적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심증을 갖게 해준 건 ‘실업률’ 데이터였다. 실업률 데이터 역시 살인율 및 자살률과 마찬가지로 공화당 대통령 시기엔 상승하고, 민주당 대통령 시기엔 하락했기 때문이다.

실업은 경제적 지위를 상실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개인에게 매우 큰 수치심과 모욕감을 유발하는데 정신의학에서 수치심과 모욕감은 ‘살인’이나 ‘자살’같은 ‘폭력적 성향’을 발생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결국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공화당 대통령 집권 시기에 미국 사회에선 보다 많은 개인이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고, 이것이 폭력적 성향을 강화하여 살인과 자살의 발생 빈도를 높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보통 ‘경제는 보수가 잘한다!’라고들 하는데 도대체 왜 공화당 대통령 집권 시기에 실업률이 높았던 걸까? 정말 경제를 보수 정당이 더 잘하는지는 좀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하니 일단 논외로 하고 일단 분명한 건, 공화당과 같은 보수정당은 상대적으로 ‘피고용인’보다 ‘고용인’을 좀 더 옹호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지기반에 있어서도 보수정당의 경우 ‘피고용인’보다 ‘고용인’ 위주인 게 어느 나라나 일반적이다.

높은 실업률은 그 자체로 나쁜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두에게 나쁜 건 아니다. 특히 ‘고용인’ 입장에서 보면 일 할 사람이 넘쳐나기 때문에 적은 임금을 주고도 좋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다. 이것이 민주당보다 상대적으로 고용인들을 지지 기반으로 둔 공화당이 높은 실업률에 민주당보다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늘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공화당 대통령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 집권 시기엔 살인율과 자살률이 하락한다. 하지만 아젠하워는 공화당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 및 실업수당 규모를 키우는 등 사실상 민주당에 가까운 정책을 펼쳤던 인물이다. 반대로 민주당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폈던 카터 대통령 집권 시기엔 살인율과 자살률이 상승한다. 결국 이러한 예외 역시 공화당의 경제 정책과 민주당의 경제정책이란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실제로 이러한 예외를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정당 집권 시기와 살인율 및 자살률 추이는 전반적으로 일치한다.

지난 100년 동안 미국인들은 아마도 매번 다른 인물의 대통령을 뽑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경제정책에서만큼은 민주당과 공화당 두 정당 중 어느 하나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두 정당 중 어느 한 정당은 미국인들의 삶과 죽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건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거나 좋은 일을 결코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경제 정책’ 때문이었다. 다소 비약하면 그 정책은 ‘죽음’을 불러오는 정책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안전띠 착용을 강조한 표어를 정치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바꿔 볼 수 있지 않을까?

“사고 시 죽고 사는 것은 안전띠가 결정합니다.”
“평상시 죽고 사는 것은 정치가 결정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대부분이 ‘피고용인’인 유권자들은 ‘고용인’을 옹호하는 보수주의 정당에 투표하는 걸까? 아쉽게도 시간상 본 편에서는 제외했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은 2014년 7월 30일 자 미니다큐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에서 다루고 있다. 본 편의 주요 참고 자료인 제임스 길리건의 책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에도 관련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도 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총 11명의 대통령이 존재했지만 각 대통령이 속한 정당의 성격을 보면 크게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두 가지로 나뉠 뿐이고, 그 중 자유주의 정당 소속의 대통령은 11명 중 단 세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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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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