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가 가리키는 곳은 어디인가
56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는 짧았다. 그러나 후폭풍은 메가톤급이다. 메모에는 친박계 실세로 통하는 이들의 이름과 돈 액수가 적혀 있었다.
김동인·고제규 기자  |  astoria@sisain.co.kr  [396호] 승인 2015.04.16  09:01:22

새벽 6시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경향신문> 기자(이 아무개 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50분간 담아두었던 말을 쏟아냈다. 통화 대부분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이었다. 나머지 7~8분 정도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내용이었다. 성 전 회장은 “2006년 9월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미화 10만 달러를 건넸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허태열 전 비서실장(당시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에게 현금 7억원을 전달했다”라고 폭로했다. 

통화 당시 그의 상의 윗주머니에는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 메모는 56자, 짧았다. 내용은 여의도를 넘어 청와대까지 파장이 미치는 메가톤급이었다. 친박근혜계 실세로 통하는 이들의 이름과 돈 액수가 적혀 있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다. 

‘김기춘 10만 달러 2006년 9월26일’ ‘허태열 7억’ ‘유정복 3억’ ‘홍문종 2억’ ‘부산시장 2억’ 그리고 ‘이병기’ ‘이완구’는 이름만 적혀 있었다. <경향신문> 기자와 통화가 끝나고 9시간 뒤인 4월9일 오후 3시32분, 그는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된 당일 이 리스트가 담긴 메모지를 확보했다. 메모 존재를 안 유족은 반환을 요구했지만 검찰이 거부했다. 유족들은 메모지를 열람도, 복사도 할 수 없었다. 내용도 몰랐다. 검찰은 이날 “안타깝다”라는 반응 외에는 메모 존재 사실을 일절 함구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자원외교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4월9일 숨졌다.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4월8일 그는 기자회견을 했다.
자원외교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4월9일 숨졌다.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4월8일 그는 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성 전 회장이 숨진 다음 날인 4월10일 <경향신문>이 1면에 ‘김기춘 10만 달러, 허태열 7억 줬다’라는 성 전 회장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내보냈다. 이날 오전 11시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출입 기자들과 비공식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특수부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매일 오전 정기적으로 기자들과 ‘티타임’을 한다. 이날 <경향신문> 보도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최 차장은 그제야 메모 존재 사실을 슬쩍 공개했다. “어제 저녁 강남 삼성병원에서 성완종 회장 변사체를 검시하는 과정에서 고인의 주머니에서 메모지가 한 장 발견되어 검찰이 확보했다. 메모지 내용은 몇 사람의 이름과 금액만 기재되어 있다. 그중 한 사람에 대해서는 일자도 불입(기록)되어 있다.” 

기자들은 성완종 리스트의 존재를 이때 처음 알았다. 최 차장 검사는 구체적인 이름과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메모에 적혀 있는 내용은 55자 정도이고 메모 내용만으로는 누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경향신문>에서 보도된 두 사람도 메모지에 포함되어 있다.” 티타임 뒤 기자들이 본격적인 취재에 나서면서 ‘성완종 리스트’는 곧바로 확인되었다.

‘리스트’ 당사자의 해명이 부채질한 의혹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은 일제히 ‘돈을 받은 적이 없다’ ‘황당무계하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 이완구 국무총리 등도 해명 자료를 내는 등 의혹을 부인하느라 온종일 진땀을 뺐다. 성 전 회장이 리스트를 작성한 의도를 부각시키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이병기 실장은 “최근 전화통화에서 자신(성 전 회장)은 결백하니 도와달라며 진행 중인 검찰 조사에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데 대해 인간적으로 섭섭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김기춘 전 실장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스트 나온 것을 보면서 뭔가 자기가 곤경에 처했을 적에 이 사람들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고 하는 섭섭함이 있었지 않겠는가, 그렇게 짐작을 한다”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의 폭로가 구명 요구를 거절한 데 따른 보복성이 짙다는 의미다. 

이 같은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름 뒤에 적힌 날짜(2006년 9월26일)와 관련해 “내가 독일에 간 것은 9월23일인데, 9월26일 돈을 줬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적극 해명했다. 어설픈 해명이었다. 성완종 전 회장은 <경향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2006년) 9월26일자 <조선일보> 사진에 김 실장이 독일에서 (박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게 나오는데 이 부장(<경향신문> 기자)도 확인해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9월26일자 <조선일보>를 찾아보라고 한 것이다. 그 날짜를 김기춘 전 실장 이름 옆에 적어두었는데, 김 전 실장은 돈을 건넨 날짜로 착각하고 해명했다.

하루 동안 메모의 존재를 숨겼던 검찰은 뒤늦게 확인 수사에 들어갔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4월10일 오후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윤수 3차장을 불러 “메모지의 작성 경위 등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관련 법리도 철저히 검토해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김 총장의 지시에서 주목할 부분은 ‘작성 경위’와 ‘법리’이다. 검찰이 친박 실세 그룹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성 경위란 성 전 회장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느냐 우선 따져보겠다는 뜻이다. 김기춘 전 실장이나 이병기 실장 해명대로 구명 실패에 대한 보복성 메모인지부터 살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검찰이 ‘민감한’ 사건을 처리할 때 쓰는 수법이다. 이른바 정윤회 국정 농단 의혹의 경우 인사 개입이라는 ‘본질’보다는 십상시 모임을 한 식당, 모임 여부, 날짜 등 ‘곁가지’만 수사하고 사건을 끝냈다. 곁가지 팩트(사실)가 어긋난 점을 들어 본질인 인사 개입에 대한 수사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당연히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받았던 정윤회씨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곁가지 수사를 먼저 해서 메모 자체가 신빙성이 낮다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대상자를 소환 조사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뇌물 사건 입증에서 가장 중요한 공여자가 사망해 입을 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이 같은 전개를 예상케 한다. 의혹을 털어주는 수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법리’를 거론한 점 또한 검찰의 수사 방향을 전망할 수 있다. 이는 공소시효와 연결되는 대목이다. 성 전 회장이 김기춘 전 실장 등에게 건넨 돈의 성격을 뇌물로 볼 것인지, 정치자금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사건 처리가 달라질 수 있다. 2006년과 2007년 건네진 돈을 정치자금으로 보면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 정치자금법은 공소시효가 7년이다. 다만,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이 2006∼2007년 당시 모두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뇌물죄 적용도 법리상으로는 가능하다. 뇌물죄 공소시효는 7년이지만 수뢰 액수가 1억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난다. 허 전 실장의 7억원 수수 의혹은 공소시효가 남아 있게 된다. 뇌물죄는 직무와 관련된 대가 관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자금 수사보다 더 어렵다.

박 대통령, 이번에도 ‘가이드라인’ 제시할까 

따라서 그간의 박근혜 정부 검찰 행보에 비추면 이번 수사 역시 소극적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문제는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성 전 회장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뇌물 사건의 경우 공여자가 돈을 준 시점, 시기, 장소 등에 대한 진술에 주로 의존하는데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의 경우 시기와 장소가 특정되었다. 성 전 회장은, 김 전 실장에게는 2006년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주었고, 허 전 실장에게는 2007년 리베라호텔에서 직접 건넸다고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뇌물 사건에서 저 정도 진술을 하고 일관성이 있으면 수뢰자가 부인해도 입증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일방적으로 허위라고 털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또 공여자는 더 이상 말을 못하지만 증인과 참고인들이 남아 있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거기(리베라호텔)까지 가져간 심부름한 사람들, 우리 직원들이 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현금을 인출하거나 마련하는 과정에 관여한 직원들이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죽음 자체가 성 전 회장의 인터뷰와 메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죽으면서까지 주지 않은 돈을 주었다고 거짓 인터뷰를 할 가능성은 낮다. 정황도 맞아떨어진다. 김기춘 전 실장도 인정했듯이 2006년 9월23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독일을 방문했다. 이 방문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당시 취재기자들도 동행했는데, 박 대표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박근혜 대표 처지에서는 의미 있는 이벤트였기에 ‘실탄(돈)’이 필요한 때였다. 2007년 허태열 전 실장에게 건넨 7억원으로 경선을 치렀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도 그 당시 정황과 일치한다. 당시 박 캠프는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그즈음 김무성 의원과 박근혜 후보가 공개적으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도 했다. ‘무대와 공주’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가 나온 적도 있다(2013년 5월25일자).

김무성:대표님,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박근혜:…….
김무성:(박 대표의) 삼성동 집을 부동산에 알아보니까 한 20억원쯤 간다고 합디다. 그거 팔고 아버지하고 살던 예전 신당동 집으로 들어가십시오. 일주일이면 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니…. 신당동 들어가면 (박 대표의) 이미지에도 좋습니다. 당선되면 (집 문제는) 어떻게든 풀릴 겁니다. 떨어지면 내가 전셋돈 마련해주겠습니다.
박근혜:(점점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제가 언제 돈 쓰라고 했어요? 돈 쓰지 마세요!
김무성:그래, 됐습니다. 고마 치아삐리소!

바로 이때가 성 전 회장이 돈을 건넸다는 2007년 경선이다. 당시 박 캠프의 자금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상대적으로 풍족했던 이명박 캠프와 달리 박 캠프는 ‘실탄’ 마련을 위해 의원들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성 전 회장이 한동안 정치권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게 정설이다. 충청권의 너른발인 그가 친이, 친박을 가리지 않고 인맥을 쌓았다는 점도 성완종 리스트의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다. 

박 대통령이 정윤회 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지 또한 관전 포인트다.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 등 친박 그룹에 건넨 돈은 박근혜 대통령을 보고 준 돈이라는 점 때문에 박 대통령도 자유롭지 않다. 어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바로 당사자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박근혜 대통령은 2006년 9월 독일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맨 왼쪽)도 동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6년 9월 독일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맨 왼쪽)도 동행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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