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종 2억’ 발언… 박근혜 대선 자금 겨누나
검찰의 칼끝이 우선은 이완구·홍준표 두 사람에 조준된 듯하다. 검찰의 수사가 대선 자금과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 대한 의혹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임기가 8개월 남은 김진태 검찰총장이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397호] 승인 2015.04.22  09:10:53

‘완사모(이완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이 구속됐다. 4월16일 충남 아산 소재 온양교통 대표 이준일씨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치소에 갇혔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시그널’이라고 설명했다.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가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2년 전부터 검찰이 손에 쥔 사건이었지만 이완구 돈줄과 관련이 있다 보니 제대로 수사를 못했다. 총리가 되면서는 아예 파일을 덮었다. 그런데 이 총리의 ‘비타 3000’ 구설수가 불거지자마자 최측근인 완사모 회장을 체포해 구속까지 일사천리로 해치웠다”라고 말했다.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경남기업 전 회장)의 죽음 이후 꾸려진 검찰 특별수사팀도 수사의 연관성을 크게 부인하지 않았다. 4월17일 구본선 특별수사팀 부팀장은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완사모 회장 구속이 관계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의미한 사건인지 보도록 하겠다”라며 여지를 두었다. 구 부팀장은 또 이완구 총리 선거사무실 CCTV 화면 확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확보 여부를 확인해줄 수가 없다. 확보 안 했다고 하면 CCTV가 없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2013년 성 전 의원이 충남 부여·청양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사무실에서 현금 3000만원이 든 음료수 상자를 이완구 당시 후보에게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 의지를 보인 것이다. 검찰의 칼날이 사방에서 이 총리를 향하고 있다.
 
성 전 의원의 마지막 인터뷰 덕분에 정국을 뒤흔들 종이 한 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연합뉴스

 또 다른 포화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맞고 있다. 성 전 의원은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 당시 의원에게 1억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홍준표 캠프 공보특보였던 윤승모씨를 통해 홍 지사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윤씨 또한 홍 지사에게 돈을 준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당시 홍준표 캠프 사정을 잘 아는 한 여권 인사는 “친박 중심인 성완종 리스트에 홍준표가 있는 걸 의아해할 필요가 없다. 2011년 당 대표 선거는 홍준표 대 유승민의 각축전이었고, 당시 친박 주류는 스스로 ‘이마에 친박 써 붙이고 다닌다’고 말하는 유승민 대신 범친이계 홍준표를 밀었다. 홍준표가 대세이기도 했고 유승민에 대한 견제심 때문이었다. 성완종이 홍준표에게 돈을 줬다면 판세를 정확히 읽은 거였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날수록 홍 지사는 윤씨의 ‘배달 사고’ 뉘앙스를 풍기며 해명에 나섰지만, 성 전 의원이 홍 지사에게 전화해 ‘한 장(1억원) 잘 받으셨냐’고 확인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 8인 중 가장 빨리 검찰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경찰은 정계 유력 인사의 이름이 적힌 ‘성완종 쪽지’를 뒤늦게 공개했다. ⓒ연합뉴스

의혹은 이완구·홍준표 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검찰의 수사 또한 두 사람의 혐의 입증에 매달려 있다. 뇌물 사건은 돈을 준 사람의 일관된 진술과 정황이 중요해, 당장은 가장 구체적으로 의혹이 불거진 두 사람에게 칼끝이 조준된다.

다른 폭로와 차원이 다른 ‘홍문종 2억’ 발언

그러는 사이, 나머지 여섯 명은 의혹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언론 대응 등을 자제하며 잠수 모드로 전환했다. 성완종 전 의원은 홍문종 의원을 두고 “2012년 대선 때 홍문종은 본부장은 맡았는데, 제가 한 2억 정도 현금으로 줘서 조직을 관리했다”라고 밝혔다. 다른 이들에 대한 폭로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2012년 대선 자금 문제로 수사가 비화될 수 있는 발언이다. 규모가 다른 폭로에 홍 의원은 강경하게 대처했다. 그는 “2억이 아니라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 은퇴하겠다”라고 밝혔다.

여간해서 언론에 나서지 않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적극 해명에 나섰다. 성 전 의원은 “김기춘이 2006년 9월에 VIP(박근혜) 모시고 벨기에·독일 갈 때 10만 달러를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 수행비서도 따라왔다”라고 했다. 의혹이 불거진 직후 김 전 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장 재임 시절 성 전 의원을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며칠 후 말을 바꿨다. 성 전 의원의 다이어리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이 2013년 9월에 두 번, 11월에 한 번 만났다고 적혀 있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경남기업 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간 일주일 뒤인 2013년 11월 새누리당 충청도 의원 5명과 저녁을 먹었다고 말을 번복했다. 단둘이 본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확실하지 않다고 말을 흐렸다. 핵심 진술이 흔들린 것이다. 성완종 인터뷰에 언급된 이병기 현 대통령 비서실장과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 대한 의혹 또한 잠복하고 있다.

검찰은 신중하다. 수사의 우선 대상은 이완구 총리·홍준표 경남도지사인 상황이다. 벌써부터 검찰이 수사 확대를 부담스러워한다는 말이 서초동 안팎에서 나온다. 대선 자금과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 대한 의혹은 당장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

김진태 검찰총장(왼쪽)은 문무일 대전지검장(오른쪽)을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했다. ⓒ연합뉴스

주저하는 모습은 성완종 리스트가 폭로된 첫날 드러났다. 4월10일 자원외교 수사팀을 이끌었던 서울중앙지검 최윤수 3차장검사는 언론 브리핑에서 “핵심 관련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사안의 진상을 확인하기 어려운 면이 현실적으로 있고, 사안에 따라서 공소시효 문제 등 법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당연히 법리 검토를 해봐야겠지만 사건 시작도 전에 검사가 법리 운운하는 건, 사건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덤벼보자가 아니라, 안 되는 방향부터 깔고 가는 건 못하겠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뒤늦게 ‘성완종 쪽지’의 존재를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이 관계자는 지적했다. 4월9일 성완종 전 의원의 시신을 수습한 직후 경찰·검찰은 쪽지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항의하는 유족에게도 꿈쩍하지 않았다(“메모, 촬영도 안 된다 했다” 참조). 정국을 뒤흔들 종이 한 장이 사라질 위기에서 구한 건, 성 전 의원의 마지막 인터뷰였다. 일절 말을 꺼내지 않던 검찰은 다음 날 인터뷰 보도에 대응하며 56자가 쓰인 쪽지를 공개했다.

대검 반부패부장보다 한 기수 빠른 수사팀장  

결국 김진태 검찰총장은 4월12일 총장 직속 특별수사팀을 따로 꾸렸다.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등 기존 수사 라인을 모두 배제했다. 수사팀 구성은 김진태 총장보다 힘이 세다고 알려져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의 힘을 철저히 배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팀장은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맡았다. 특별수사팀은 김진태 검찰총장-윤갑근 대검 반부패부장-문무일 팀장으로 지휘·보고 체계를 갖췄다. 사법연수원 18기인 문무일 팀장은 19기인 윤갑근 부장보다 한 기수 위다.

기수와 서열을 중요하게 여기는 검찰 문화에서 이례적인 지휘 라인이 생긴 이유를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사실상 윤갑근 부장도 지휘 라인에서 뺀다는 뜻이다. 반부패부장이라 사건의 성격상 지휘 라인에는 넣지만, 그보다 선배인 사람을 밑에 둬서 결국 총장이 직속으로 보고받겠다는 말이다. 그만큼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거다. 외압을 초기에 차단하겠다는 뜻을 담은 라인업이다.” 임기가 8개월 남은 김진태 총장이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4월15일 검찰 특별수사팀이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있는 경남기업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시사IN 이명익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은 벌써부터 나온다. 권력 핵심부의 수사 흔들기에 김 총장이 버티지 못할 거라는 평가다. 특별수사팀이 구성되자마자 여의도와 서초동에서는 우스갯소리처럼 ‘채동욱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풍문이 돌았다. 사건이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야권 인사도 성완종 리스트에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문무일 수사팀은 관련 내용을 공식 부인했다. 특별수사팀은 알지 못하는 자료라는 것이다. 문무일 팀장은 해당 보도를 보고 불쾌해했다고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4월3일 성완종의 1차 검찰 수사 자료가 있다. 그때 어떻게든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한 말이 죽음을 앞두고 한 말과 다를 수 있다. 여러 경로로 수사팀을 방해하는 다른 증거가 샐 수 있다. 당장 성완종 증언의 신빙성을 흔들 거다. 또 여야 할 것 없이 수사 대상을 넓히면서 사건의 본질도 흔들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대통령이 4월16일 특검을 언급한 것도 김진태 총장에게는 악재다. 특별수사팀에 시간이 별로 없다. 죽은 자도 더 이상 말이 없다. 대신 메모와 증언을 남겼다. 수사를 넓힐 수 있을지는 오롯이 ‘김진태 호’의 몫이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