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숨기기에 바쁜 ‘숨은 주역’과의 인연
성완종 전 의원은 “나는 박근혜 정권의 개국공신이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실제 선거운동 때 지근거리에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가 챙기는 듯한 흔적도 꽤 남았다. 하지만 이제 모두 ‘기억에 없다’고들 한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397호] 승인 2015.04.22  08:58:36

“목숨을 걸고서 박근혜 정권을 창출했다.” “대선 때 충청도 조직을 다 만들어줬다.” “나는 박근혜 정권의 개국공신이다. 첫 번째 손가락에 꼽힐 만한 공신은 아닐지라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는 된다.”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전 경남기업 회장)은 자랑스러워했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그는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열기도 했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성 전 의원의 이웃에 사는 박 아무개씨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에 성 의원은 자기가 당선된 것처럼 인사를 하고 밥을 사고 다녔다. 이웃들을 리베라호텔로 불러 잔치를 벌일 정도로 기뻐했다”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 직후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서는 성 전 의원을 “대선의 숨겨진 일등 공신”으로 소개했다. 성 전 의원이 출연한 프로그램 제목을 ‘박 당선의 숨은 주역-이제는 말할 수 있다’로 붙였다. <쾌도난마> 측의 설명은 이랬다. “성 전 의원이 박근혜 후보 지지율 약세 때 충남·대전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자유선진당을 이끌고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이끌어냈다. 합당 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으로 자신이 만든 모임인 ‘충청포럼’ 등을 선거운동에 활용해 충청권에서 60%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다.” 새누리당 한 충청권 의원은 “성 의원이 주도한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의 합당은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권 표심에 큰 영향을 주었다”라고 말했다.
 
성완종 전 의원은 2012년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당선자 가까이에 있었다. ⓒ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실제로 성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충청권 유세에 나섰을 때 성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의 곁에서 수행했다. 박 후보는 대선 기간 중 충청권을 22차례 방문했다. 대선 다음 날인 2012년 12월20일 선거 캠프 해단식에서도 성 전 의원은 박 당선자의 바로 뒤에 앉아 있었다. 당선자 신분으로 첫 일정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할 때도 성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따랐다.

대통령의 주변에 선다는 것은 정치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별히 힘이 쏠리는 대선 기간과 당선자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2002년 대선 유세 마지막 날, 노무현 후보의 옆자리에 서겠다며 정동영 전 의원과 신경전을 벌이다가 단일화를 파기했던 정몽준 전 의원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경남기업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은행권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경남기업은 베트남에서 랜드마크72 건설 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경남기업은 은행권에서 5100억원을 지원받았다. 총 1조2000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랜드마크72 사업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경남기업은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다. 대규모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성완종 전 의원은 새누리당 선대위 해단식 때 박근혜 후보를 수행하거나 당선자 가까이에 있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욱이 검찰에는 성 전 의원의 파일이 쌓여 있었다. 성 전 의원 일가가 알짜배기 계열사를 분리하면서 자산을 빼돌렸다는 그룹 내부자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성 전 의원이 러시아 캄차카 유전 개발사업을 벌이며 석유공사로부터 지원받은 자금도 특혜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2008년 9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경남기업의 주채권 은행인 신한금융지주에 청탁한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경남기업은 물론 성 전 의원 자신도 선거법 위반 재판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였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몰라도 청와대는 성 전 회장을 각별히 챙겼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4월17일 충남 지역 인터넷 신문 <디트뉴스24>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새누리당 성완종 의원(서산·태안)은 17일 ‘대·중소기업 상생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라며 ‘상생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는 게 박 대통령의 분명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성 의원은 이날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가진 뒤 <디트뉴스24>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근혜 당선자가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할 때도 성 전 의원(원 안)은 뒤를 따랐다. ⓒ사진공동취재단

2013년 들어 경남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금감원은 신한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에 900억원 상당의 대출을 지시한다. 특혜 의혹이 일었다. 이에 대해 금감원 한 관계자는 “하청 회사의 연쇄 부도를 막기 위한 정상적인 감독과 관여였다”라고 말했다.

2013년 9월4일과 5일. 성 전 의원의 다이어리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9월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동행할 경제사절단 7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경남기업 장해남 사장의 이름이 대기업 회장단 명단에 오른다. 대한상공회의소 한 관계자는 “경남기업이 대기업 회장단에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이변이었다. 청와대가 결정하는 일이지만 여당 국회의원인 성 회장의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경제사절단은 가고 싶다고 누구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기업 처지에서 대통령 순방 때 동행하는 것은 해외 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자 특혜인 셈이다. 사절단에는 최수현 당시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서진원 신한은행장 등이 포함돼 있다. 경남기업의 주채권·주거래 은행과 감독기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9월8일 박 대통령이 경남기업이 지은 베트남 랜드마크72에서 열린 패션쇼에 모델로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이 런웨이에 등장해 미소를 지으며 10여m를 걷는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2011년 준공된 이 건물은 분양이 절반도 안 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통령 행사를 이 건물에서 연 것 자체가 엄청난 특혜라는 말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

2013년 10월 경남기업의 워크아웃이 결정된다. 은행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금감원의 지휘 아래 결국 은행권은 1000억원을 긴급 지원했다. 2014년 2월에는 5300억원이 추가로 지원됐다.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특혜 의혹이 일었다. 무상 감자 없이 자금 지원, 우선매수청구권 등 특혜 조항이 포함됐다. 감사원 감사에서 ‘금감원의 고위 관계자가 주채권 은행인 신한은행 간부에게 워크아웃 당시 성 회장의 의중을 반영해주라고 요구했다’라는 내용이 드러났다. 워크아웃 전후로 성 전 의원은 권혁세 전 금감원장과 최수현 금감원장과 두루 만났다. 당시 기업 워크아웃을 담당했던 김진수 기업금융구조개선 국장을 세 차례 만났다고 성 전 의원은 다이어리에 적었다. 금감원 인사를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기업인은 드물다. 정권 실세의 뒷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013년 9월8일 박 대통령은 경남기업이 지은 베트남 랜드마크72에서 열린 패션쇼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올해 초,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성 전 의원은 억울해했다. 무엇보다 자원외교 수사에서 자신이 첫 번째 타깃이 된 것에 대한 서운함을 자주 토로했다. 성 전 의원은 기자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 사람이면 이래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성 전 의원의 친구 김 아무개씨는 “성 회장은 자기 돈과 조직을 총동원해 대통령 선거운동을 했다. 성 회장이 ‘백억까지는 안 되고 몇십억원을 썼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4대강 사업도 하고 러시아 캄차카, 아프리카 니켈 광산 같은 자원외교 사업도 해서 괜찮았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성 회장이 힘들다는 소리만 했다”라고 말했다. 성 전 의원과 가까운 서산장학재단의 한 인사는 “경남기업이 위험해지자 영입한 국정원 출신들을 통해 구명 로비에 나섰다. 상황이 너무 다급해서 성 회장이 직접 선거운동을 같이한 동지들을 찾아 청와대로 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 전 의원은 절박하게 청와대에 매달렸다. 경남기업 노조에서는 경남기업에 영입된 국정원 출신들과 국정원장을 지낸 이병기 비서실장의 역할을 지목한다. 2008년부터 4년간 경남기업 감사를 지낸 차문희씨는 2012년 국정원 2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전옥현씨는 2013년 3월 경남기업 사외이사로 영입된다. 성 전 의원은 이병기 실장을 리스트에 올렸으나 액수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성 전 의원은 이병기 비서실장에 대해 “신뢰를 중시해야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정치적으로 신뢰하고 의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말했다.

‘다이어리’ 보도 이후 말 바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성 전 의원이 가장 공을 들인 사람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성 전 의원이 2006년 10만 달러를 직접 건넸다고 주장하자, 김 전 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비서실장이 된 다음(2013년 8월5일 이후)에는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서는 “식사도 좀 하고 그런 사이였나”라고 묻자 김 전 실장은 “아니, 그런 사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혀 아니냐”라고 되묻자, “네”라고 답했다. 4월15일 <중앙일보>가 성 전 의원의 다이어리를 근거로 2013년 11월6일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성 전 의원이 저녁을 먹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김 전 실장은 4월16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착각했던 것 같다. 내가 다시 기억을 되살리고 가지고 있는 자료를 보니까 11월6일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라고 말을 뒤집었다.
 
2013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때 경남기업 장해남 사장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성완종 전 의원은 죽기 직전까지도 김기춘 전 실장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자살하기 며칠 전 평창동 김 전 실장의 집을 찾아갔고, 김 전 실장이 있다는 사무실로도 찾아갔다. 비서에게는 계속해서 김 전 실장의 출근 시간을 체크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게이트’에 대해서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치 남의 일처럼. 성 전 의원이 돈을 건넸다고 한 사람 가운데는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3명이 모두 포함돼 있다. 나머지도 대선에서 돈을 만지던 유정복·서병수와 같은 실세 중의 실세이다. 성 전 의원이 돈을 건넨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2012년 대선은 모두 박 대통령의 선거였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로 길을 잡아 청와대 쪽으로 말을 달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검찰의 칼은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경남기업은 4월14일 결국 상장폐지됐다. 자본은 전액 잠식 상태였다. 금융권에만 1조원 넘는 손실을 안겼다. 물론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질 가능성이 크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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