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127
‘손석희 공갈 미수범’에 놀아났던 언론
[1심 판결문 분석] “바람이라도 폈나” 농담이 “젊은 여성과 밀회”로…김웅에게 풍문 전한 후배 기자 누구일까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승인 2020.07.14 04:30
2017년 4월16일 밤. 화장실을 찾던 A씨는 과천시의 한 교회 야외 주차장에서 후진을 하던 중 정차 중이던 견인 차량과 가볍게 부딪히는 접촉사고를 냈다. A씨는 다음날 견인차 기사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150만원을 송금했다. 아무런 법적 문제도 남기지 않았던 이 해프닝은 A씨가 손석희 JTBC 대표이사로 드러난 순간부터 ‘뺑소니’ ‘배임’ ‘동승자’ ‘밀회’ 같은 키워드로 언론에 도배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박용근 부장판사) 재판부는 지난 8일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에게 공갈 혐의로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실체가 불분명한 동승자 문제가 부각 되는 등 피해자에게 측량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시했다. 손석희 사장은 공갈 협박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작은 실수나 해프닝을 꼬투리 잡아 집중보도하는 ‘가차(Gotcha)저널리즘’의 피해자였다. 1심판결문을 바탕으로 이 사건의 실체와 남은 의문점, 언론 보도 문제점을 짚어봤다.
▲게티이미지.
‘젊은 여성과 밀회’ 풍문의 시작은 ‘농담’이었다
주차장 사건 당시 손 사장 차량을 따라갔던 견인차 기사 김아무개씨와 그의 동료 양아무개씨는 손 사장이 운전했던 차량에서 동승자를 보지 못했다. 단지 상황이 종료된 이후 그들끼리 대화하던 중 “(피해자가) 왜 도망갔지? 바람이라도 폈나?”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이 농담이 어느 카센터 사장에게 전해졌고,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카센터에 들른 성명불상 기자에게 이 내용을 전했다. 해당 기자는 또 다른 성명불상 기자에게 알려줬고, 그 기자가 김웅씨에게 알려줬다. 이 과정에서 “바람이라도 폈나”는 농담은 “젊은 여성과 밀회”로 바뀌어 있었다.
재판부는 “풍문 수준의 제보를 가지고, 즉 적어도 4단계 이상의 전문으로서 그 신뢰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김씨는) 사건 당사자인 견인차 기사들에게 대한 사실관계 확인 절차 없이 주차장 사건의 언론 제보 여부를 놓고 약 5개월간이나 피해자에게 JTBC 채용, 합의금과 같은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2018년 8월26일 성명불상 후배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전화로 들었다.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그 선배가 차를 고치러 갔는데, 기자라고 하니까 이런 얘기를 해줬대요. 1년 전 과천 공터에서 어떤 차가 뻉소니를 치고 갔고, 딱 잡았는데 내렸더니 손석희였고, 차 안에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더래요. 합의금 150만원에 퉁 치자고 했는데, 계좌에 들어온 돈을 보니 JTBC에서 보내줬더래요.”
해당 후배 기자는 이번 재판에서 재판부가 증인으로 불렀지만 끝까지 출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왜 김씨에게 정보를 주기만 하고 본인 또는 본인의 언론사에서 취재해 기사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후배 기자’에게 정보를 준 ‘선배 기자’도 마찬가지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손석희 JTBC 대표이사. ⓒJTBC
5개월간 손석희를 공갈 협박하다
김웅씨는 2005년 KBS에 입사해 2012년 불미스러운 일로 퇴사한 뒤 컨설팅회사를 차리고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며 2015년 인터넷 ‘불륜 조장’ 사이트 애슐리 메디슨의 국내 가입자들을 언론에 제보했고, 이 과정에서 손석희 사장과 개인적 연락을 하게 됐고 종종 사적 연락을 했다. 김씨는 2018년 당시 회사 경영이 좋지 않았고, 그해 6월20일과 8월12일 특별한 친분도 없던 손 사장에게 “선배님 저 다음 달부터 PC용 책상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온라인 언론사를 만들어볼 생각이었는데 무산 직전입니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다 주차장 사건 풍문을 들은 김씨는 8월28일 밤 10시54분 ‘취재’를 시작했다. 손 사장은 “차량에 동승자가 없었고, 사고 사실을 알지 못하고 현장을 떠났으며, 사고 다음날 개인적으로 합의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계좌에서 나간 이체내역도 보여줬다. 그러나 김씨는 8월29일 오후 3시39분경 “전화로 취재하고 끝낼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사건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데, 선배님이 워낙에 중요한 인물”이라며 직접 만나기를 요구했다.
손 사장은 ‘주차장 사건이 기사화되면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수 있고, JTBC 뉴스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주차장 사건은 합의금을 150만 원이나 준 게 침소봉대되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갈 것이다. 동승자가 있었다는 견인차 기사들 말은 거짓이다. 그렇게 부풀렸을 경우 견디기가 어렵다’며 기사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8월29일 밤 10시경 JTBC 21층. 손 사장을 만난 김웅씨는 “사건을 기사화하지 않겠다, 다만 합리적인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하면서 “회사가 망했다. 언론계에서 일하고 싶다. JTBC는 어떻게 뽑느냐”고 물었다.
이에 손 사장이 “JTBC는 엄격하게 뽑는다”고 했고 김씨가 “그러면 JTBC에 들어가기는 어렵겠군요”라고 하자 “경력도 있고 하니 우리 쪽에서 필요하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자 김씨는 “그렇지 않아도 와이프가 손 사장님에게 잘 부탁드리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5개월간의 공갈 협박이 시작됐다.
▲지난 8일 서울서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는 김웅씨 모습. 그는 이날 법정 구속됐다. ⓒ연합뉴스
“국제부 외신기자가 최선”…“이리 오래 끌 일 아닙니다”
2018년 9월5일 김웅씨는 “선배님을 모실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손 사장에게 보냈다. 그는 견인차 기사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들을 취재한 사실도 없었지만 손 사장이 “그 친구들(견인차 기사들)이 또 연락을 해서 주장을 계속하던가요?”라고 물어보자 “지력이 출중한 자들이 아닙니다. 다만, 입을 닫고 자중할 줄도 모르는 이들이라 상황을 장담 못 하겠습니다”라고 거짓말했다. 손 사장이 사건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시 해프닝이 불거진 배경에 의문을 품자 “논리적으로 설득될 이들도 아니라 다소 심란합니다”라고 거짓말했다.
그는 5개월간 총 10회에 걸쳐 손석희 사장에게 주차장 사건을 기사화할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면서 JTBC 채용을 요구했다. 9월8일 전화통화에서는 기사화될 수 있는 상황에 초조함을 보이던 손 사장에게 “저는 지금이라도 제목 뽑고 뭐 스트레이트 쓰라면 제가 10분 만에 쓸 수 있거든요”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그냥 선배님과 같은 배를 타고 싶다”고도 말했다.
손 사장은 10월3일 김씨에게 받은 이력서를 이규연 JTBC 탐사기획국장에게 보여주며 프리랜서라도 가능하냐고 말했고, 이규연 국장은 ‘평판 조회 결과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손 사장은 채용절차 진행이 어렵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요구는 이어졌다. 그해 11월2일에는 텔레그램을 통해 “K본부(KBS)의 경우 보도본부 출신 기자들이 사장 비서실장과 사장비서를 맡는다”고 언급했고, 11월8일에는 “국제부 외신기자가 최선의 선택, 넓은 곳에 저를 풀어놓으시죠”라는 내용의 텔레그램을 보냈다.
11월17일에는 “난 누군가를 으르고 협박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이젠...”이라는 문자를 남겼고, 12월4일에는 KBS가 유례없는 경력기자 채용에 나섰다는 미디어오늘 기사를 텔레그램으로 보냈다. 그해 12월5일에는 “이리 오래 끌 일이 아닙니다”, “텐트 안으로 오줌을 누려는 녀석이 있으면, 텐트 안으로 불러들여서 텐트 밖으로 오줌 누게 하라”는 텔레그램을 보냈다. 12월9일에는 “상황을 끝내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재판부가 “해악의 고지가 명확했다”고 판단하게 된 대목들이다.
“일시불 2억4000만원, 모든 것을 끝내겠다”
2019년 1월10일. 상암동 한 주점에서 손석희 사장을 만난 김웅씨는 채용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화를 낸 뒤 정규직 입사가 어려우면 프리랜서 계약서를 써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거부하자 “상왕의 목을 잘라 조선일보로 가져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김씨를 다시 앉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손 사장이 김웅의 얼굴 부위에 유형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사건 직후인 1월11일 0시40분 경 파출소로 가 손 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뒤 ‘일단 기록만 해주고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1월13일 폭행 사건 피해 신고를 한 뒤 1월17일 손 사장에게 자필 사과문을 요구했다. 그는 전치 3주 상해진단서를 제출했는데, 정작 담당 의사는 그의 증상 호소에 따라 상해진단서를 발급했을 뿐 얼굴에서 상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건 당일 파출소에서 김씨를 봤던 경찰관들도 그의 얼굴에서 아무 상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1월19일 합의를 원하는 손석희 사장으로부터 용역 형태로 월수입 1000만 원을 2년간 보장하는 방안 등을 받았으나 ‘일시불 2억4000만원을 1월21일 정오까지 달라, 그러면 모든 것을 끝내겠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채용도 합의금도 모두 미수에 그치면서 결국 1월24일 언론에 폭행사실과 주차장 사건 등을 제보하게 된다. 재판부는 손 사장이 당시 JTBC 인사에 대해 포괄적 권한을 갖고 있었으며, 김씨가 손 사장에게 외포심(공포심)을 일으켰다고 판단하고 손 사장이 김씨에게 업무계약 등을 제안했던 대목을 공갈 협박에 따른 수세적 대응으로 봤다.
지난해 2월1일, 손석희 JTBC 사장은 사내메일을 통해 당시 심경을 밝혔다. “얼굴 알려진 사람은 사실 많은 것이 조심스러운데, 어떤 일이든 방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상황이 왜곡돼 알려지는 경우가 제일 그렇습니다. … 바로 지금 같은 상황, 즉 악의적 왜곡과 일방적 주장이 넘쳐나는 상황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날 손 사장은 사원들에게 흔들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언론 때문이었다.
▲게티이미지.
손석희 공갈 미수사건, 언론은 사실관계 충실했나
김씨의 제보로 언론 보도가 나가기 시작한 1월24일부터 2월5일까지 네이버에 송고된 10대 일간지 보도량을 보면 조선·동아일보가 각각 31건으로 가장 많았고, 가장 적게 한 곳은 한겨레·중앙일보로 각각 4건이었다. 방송의 경우도 KBS와 MBC는 1건, SBS는 2건이었던 반면, TV조선과 채널A는 각각 13건과 14건을 기록했다. ‘뺑소니’에 ‘밀회’ ‘동승자’ 같은 자극적 이슈에 언론사 간 이해관계 및 정파적 보도 태도까지 더해지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렀고, 오보와 왜곡 보도가 이어졌지만 손사장 측에서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일례로 TV조선은 2019년 1월26일자 메인뉴스에서 ‘[단독] “손석희, 방송 직후 전화…동승자 봤냐 물어”’란 기사를 냈지만 오보였다. 손 사장은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인 1월23일 견인차 기사와 통화했다. 채널A는 1월30일자 메인뉴스에서 ‘[단독] 견인차 기사의 증언…“음주측정도 했다”’란 기사를 냈으나 역시 오보였다. 측정 사실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인용 보도와 추측성 보도가 쏟아졌다.
SBS는 1월30일자 메인뉴스에서 손 사장과 견인차 기사와의 1월23일 통화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제가 현장에서 여자분이 내리는 거는 봤거든요”라는 발언을 전했다. 이어 “봤다, 아니다, 몇 차례 말이 오간 끝에 A씨(견인차 기사)가 잘못 봤을 수도 있지만 자신은 그렇게 봤다고 하자 손 사장이 경고성 발언을 합니다”라고 보도했다. 이 리포트는 많은 언론에 인용됐다. 정작 SBS가 인터넷에 올린 6분7초짜리 녹음파일 전체는 주목받지 못했다.
이 무렵 KBS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한 김언경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많은 사람들이 손 사장이 입막음을 하려고 협박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라고 설명하며 “녹취 전문을 보면 다섯 번에서 여섯 번 정도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어요’, ‘어두워서 확신이 들지 않아요’라는 이야기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 내용이 SBS 보도에서는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경찰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손 사장의 배임 혐의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것이라며 관련 단독보도를 내는 식으로 ‘김웅의 공갈미수’ 사건을 ‘손석희 배임 혐의 불기소 논란’ 사건으로 만들며 검찰이 배임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식의 여론전에 나섰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일반인 시각에도 손 사장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 기자에게 JTBC 돈이 지급된 적 없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배임 미수’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김 기자의 공갈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간 제안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논평했다.
조선일보는 2월8일 ‘경찰 출석 앞둔 손석희, 대규모 변호인단 꾸려’란 제목의 기사를 내고, TV조선은 5월27일 ‘손석희 JTBC 대표 뺑소니 의혹 황제 조사 특혜논란’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는 식으로 손 사장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1년이 지난 지금, 김웅씨는 감옥에 갔으나 손 사장도 흉터가 남았다. 재판부는 “특정 사건의 보도 여부를 놓고 사건의 당사자와 취직 등을 놓고 흥정하는 것은 기자의 일상적인 업무 범위 내에 속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수 언론은 왜 처음부터 이 대목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게으름 탓이었을까, 미필적 고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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