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vop.co.kr/A00000924100.html

5대 재벌이 ‘앞다퉈’ 밝힌 청년고용계획의 진실
이완배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08-18 18:33:37 

영국 수상을 지낸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에는 그냥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학이 있다”고.

통계학자들이 들으면 무척 억울할 이야기지만 디즈레일리가 3대 거짓말에 통계학을 꼽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숫자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준다. 그래서 대충 숫자로 장난질을 좀 한 뒤, 통계라는 이름으로 발표를 하면 사람들은 그 권위에 기가 눌린다. 숫자라는 이름 아래 거짓을 말하기에 더 없이 좋은 수단이 통계학인 것이다.

재벌 총수들이 대통령과 점심을 한 번 먹고 나더니 앞 다퉈 대규모 채용을 하겠다고 나섰다. 삼성은 3만 명, 현대차는 1만 명…, 사상 최대 규모의 청년 채용 계획이란다. 숫자만 봐도 위용이 대단하다. 반가운 마음에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이게 웬걸, 사상 최대 규모의 채용이 아니라 숫자로 말장난을 해 놓은 것이었다. 이건 그냥 거짓말도, 새빨간 거짓말도 아니다. 통계를 빙자한 사악한 속임수일 뿐이다. 5대 재벌 채용계획의 진실을 살펴본다.

지난 7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한 재벌총수들
지난 7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한 재벌총수들ⓒ뉴시스

삼성그룹, 말이 좋아 ‘디딤돌’이지…

삼성그룹은 17일 ‘청년 일자리 종합대책’이란 걸 발표했다. 골자는 크게 △삼성 고용 디딤돌 프로그램 실시 △교육 프로그램 운영 △1만 명 신규 채용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삼성 고용 디딤돌 프로그램은 그럴싸한 수사와 달리 그 내용이 단순 인턴 채용 프로그램이다. 젊은이들을 정규직으로 뽑는 게 아니라 인턴으로 뽑아 잡일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채용 대상도 삼성그룹에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도 아니고 ‘삼성 협력사’에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 3000명이다.

삼성그룹은 이들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삼성 계열사에서 직무 교육을 시켜주고, 3개월은 협력사에서 인턴십을 거친 뒤 삼성 협력사 채용으로 연계한다”고 했다. 인턴십이 어떤 것인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인턴십은 일종의 잡부에 가깝다. 삼성은 이들의 급여를 자기들이 부담하겠다고 자랑하는데, 이게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150만 원 수준이다.

이 프로그램은 삼성이 주도하는 청년 채용과 전혀 상관이 없다. 인턴십을 마친 뒤 천운이 따라 취업을 하더라도, 삼성 계열사도 아니고 삼성 협력사에 취업을 해야 한다. 삼성이 협력사를 얼마나 종이나 노예처럼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청년 채용의 부담은 협력사가 지는데 왜 생색은 삼성이 내나? 게다가 그 협력사에서도 인턴사원에서 정규 사원이 되는 일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은 부연할 필요도 없다.

더 ‘삼성스러운’ 사실은 이렇게 바늘구멍을 뚫고 인턴을 거쳐 삼성 협력사에 취업을 하면 “4년 뒤 삼성 계열사에 ‘입사를 지원할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 대목이다. 채용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이력서와 취업 지원서를 제출할 ‘기회’를 준다고 한다. 이를 위해 청년들은 월 150만 원 받고 6개월 인턴으로 ‘뺑이’를 친 뒤, 운 좋게 협력사에 채용되는 천운을 누려야 한다. 이걸 삼성은 ‘디딤돌 프로그램’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면 ‘삼성의 초수퍼울트라 채용 갑질’이라고 부르는 게 정상이다.

삼성은 또 “영업 현장에서 3개월 간 뛸 수 있는 청년 인턴 일자리 4000개도 신설한다”고 자랑했다. 이것도 인턴이다. 삼성은 “이들 중 우수 인력은 실제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정작 몇 명을 선발할 계획이라는 말은 쏙 뺐다. 삼성이 정말 청년 고용을 확대할 마음이었다면 적어도 “4000명의 인턴 일자를 제공한 뒤 최소한 2000명은 선발할 계획”이라는 정도는 밝혔어야 했다. 실컷 인턴으로 굴려놓고 “적절한 사람이 없어서 안 뽑았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삼성 청년 채용의 두 번째 골자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30개 대학과 20개 전문대에서 6400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단다. 대구 경북지역 대학과 협력해 향후 2년 동안 5000명에게 창업 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단다. 도대체 창업교육이 삼성의 청년 채용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인과관계가 없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창업 교육을 청년 채용 계획에 끼워 넣는 것은 속이 너무 들여다보이는 속임수다.

이런 프로그램은 그냥 일종의 사회 환원 프로젝트의 일종이다. 자산규모가 300조 원이 넘고 편법 증여로 수 조 원의 세금을 덜 낸 삼성그룹이 이 정도 교육 제공으로 생색을 낼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채용 효과가 있는 것이 세 번째, 즉 1만 명 신규 채용이다. 그런데 이것도 잘 들여다보면 ‘통계학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삼성은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단지, 호텔신라 면세점과 신라스테이, 삼성바이오로직스 2·3공장 증설, 에버랜드 파크호텔 등 신규 투자를 통해 2017년까지 1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창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단지의 채용은 예정된 것이었다. 반도체 시장은 이미 중국의 개입으로 플레이어들이 물량을 대거 쏟아내는 치킨 게임에 들어갔다. 따라서 이 분야의 공장 증설과 채용 증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지난 7월 대기업 오너들의 자존심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에 HDC신라가 선정됐다. 사진은 HDC신라 면세점으로 탈바꿈 되는 부지로 선정된 10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전경.
지난 7월 대기업 오너들의 자존심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에 HDC신라가 선정됐다. 사진은 HDC신라 면세점으로 탈바꿈 되는 부지로 선정된 10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전경.ⓒ뉴시스

게다가 호텔신라 면세점 채용은 ‘삼성의 용기 있는 투자’가 아니라 ‘정부가 제공한 혜택’에 가까운 것이다. 면세점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사업이다. 대부분 유통 재벌들이 입찰에 참여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인 결과 지난달 10일 삼성그룹이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냈다.

얼마나 이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었는지, 거의 모든 대기업을 비롯해 무려 21곳이 사업을 하겠다며 총력을 동원해 유치전에 나섰다. 그 결과 삼성은 정부의 혜택으로 사업을 딴 후, 그 사업을 위해 당연히 뽑아야 할 신규 인력을 버젓이 ‘청년 채용 계획’이랍시고 내놓은 것이다.

현대차 1만 500명 채용? 평년 증가분에도 못 미치는 수치

현대차그룹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1만 500명을 새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미 연초에 밝힌 9500명 채용 계획에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1000명을 추가로 채용하겠다는 수치를 더한 것이다. 결국 연초 계획보다 늘어난 것은 임금피크제를 통해 아버지 월급 깎아 청년 채용을 1000명(에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현대차그룹이 새로 감당하는 리스크는 전혀 없다.

사상 최대라는 9500명 채용 계획도 통계를 이용한 속임수다. 현대차그룹은 2013년 8520명을, 2014년 9100명을 각각 채용했다. 2014년 늘어난 채용 증가율은 6.8%였다. 그런데 올해에는 9500명을 뽑는다. 전년에 비해 늘어난 증가율은 4.4%로 되레 감소했다. 현대차그룹은 매 해 5~7% 정도 신규 채용 인력을 늘렸다. 올해에는 그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증가율을 내세웠다. 그러고도 “사상 최대 채용”이라고 말을 돌린다.

여기에 현대차 그룹은 “최근 열린 <2015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 전국적으로 총 2만 5000여 명의 청년 및 경력 인재가 행사장을 방문한 것으로 추산되며, 이를 통해 채용될 인재들을 포함해 올해 1차 협력사들만 해도 1만 7000여 명의 신규 채용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자랑했다. 누가 도긴개긴 아니랄까봐 협력사가 신규인력을 채용하는 걸 자기들의 자랑꺼리로 내세우는 못된 습관은 삼성이나 현대나 꼭 닮았다.

코미디의 결정판, LG그룹 10조 원 투자

‘통계학의 거짓말’을 이용한 최대의 코미디는 LG그룹이다. LG그룹은 삼성과 날짜를 맞춘 듯 똑같이 17일 신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LG디스플레이 한상범 사장이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공장으로 ‘모시고’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2018년까지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LG그룹 또한 이에 발맞춰 “이번 투자로 35조 5000억 원 상당의 생산 유발 효과와 13만 명의 직간접 고용 창출 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런데 실제 이번 투자가 이 정도 고용을 늘릴지 여부는 차치하고, 이 투자에 대해 LG그룹의 솔직한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난주 한 매체가 “LG디스플레이가 2018년까지 1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다”고 보도하자 한국거래소는 이 풍문에 대해 LG디스플레이측에 사실 여부를 밝혀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LG디스플레이는 “우리 회사는 통상 매년 3조 원 수준의 투자를 집행한다. 따라서 2018년까지 10조 원을 투자한다는 것은 투자 금액 면에서 통상 범위 수준”이라고 실토했다. 이는 외부 사람들이 추정이나 분석을 통해 밝힌 사실이 아니다. LG디스플레이 스스로 털어놓은 말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매년 3조 원 정도 늘 하는 투자인데, 이를 3년 3개월 치를 퉁 쳐서 묶은 뒤 10조 원으로 포장하고, 그걸 장관님을 공장으로 모신 뒤 마치 대단한 신규 투자를 하는 것처럼 부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을 공교롭게도(!) 삼성그룹의 채용 계획 발표 날짜와 같은 날에 함으로써 LG는 마치 재벌들이 청년 고용 창출을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 효과까지 얻었다.

이외에 LG그룹은 “사회맞춤형학과 운영을 확대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해 지방 인재 고용을 활성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지만 이 역시 실체가 모호하다. 청년 실업은 대학이 교육을 제대로 못해서 생긴 현상이 아니라 일자리 자체가 없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LG는 소프트웨어 분야를 중심으로 한 사회맞춤형학과 전공을 전기·전자와 기계·자동차부품 분야로 확대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 학과를 졸업하면 LG가 얼마의 인력을 채용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당연히 없다.

SK, 너도 디딤돌이냐?

최근 그룹 총수가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SK는 삼성과 마찬가지로 <고용 디딤돌>과 <청년 비상(飛上)> 프로그램을 앞세워 생색을 냈다. 그럴싸한 이름에서 벌써 드러나듯이 SK의 고용 계획은 ‘고용을 계획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냥 교육 프로그램이다.

SK는 최근 이 두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내년부터 2년 동안 4000명의 인재를 육성하고 2만 명의 창업교육을 지원해 미국 실리콘밸리까지 진출시키겠다는 복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말을 다 믿는다고 쳐도, 인재들이 자기들의 열과 성을 다해 창업을 해서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데, 그걸 왜 SK가 “우리가 청년 고용을 늘렸다”고 생색을 내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생색을 낼 유일한 이유는 그저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뿐이다.

내용도 쪼잔하기 짝이 없다. ‘고용 디딤돌’은 내년부터 2년 동안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 2000명 씩 모두 4000명을 대상으로 직무교육과 인턴십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쉽게 말하면 매년 2000명을 월 150만 원씩 주고 인턴으로 뽑아 부려먹겠다는 내용이다.

‘청년 비상(飛上)’ 프로그램은 수도권과 대전·충청권에 있는 25개 대학과 공동으로 각 대학 캠퍼스에 창업지원센터를 설립해 창업교육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이 또한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지 SK가 청년을 ‘채용’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1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경영권 분쟁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그룹 순환출자 해소와 일본 계열사 지분 축소 등의 계획을 밝혔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1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경영권 분쟁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그룹 순환출자 해소와 일본 계열사 지분 축소 등의 계획을 밝혔다.ⓒ양지웅 기자

정규직 채용 늘리랬더니 간접고용만 늘리겠다는 롯데

형제 간 경영권 분쟁으로 시끌벅적한 롯데도 눈속임 통계를 이용해 생색만 잔뜩 냈다. 롯데그룹은 7일 “2만 4000명을 4년 동안 신규로 채용하겠다”며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롯데는 발표가 나자마자 언론으로부터 “착시효과를 이용한 속임수”라는 뭇매를 맞았다.

기본적으로 롯데가 발표한 ‘4년 동안 2만 4000명의 신규채용’ 계획은 통계를 이용한 속임수다. 세부 계획을 살펴보면 매년 5200명~7000명 정도를 뽑겠다는 것인데, 롯데는 2009년에도 6600명을 뽑는 등 원래 그 정도 인원을 늘 뽑아왔다. 게다가 이 숫자에는 인턴사원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4년 동안 2만 4000명”이라고 폼을 잡고 발표해서 그렇지 “매년 평균 6000명”이라고 했으면 생색이 나려야 날 수가 없는 수치다.

더 황당한 것은 롯데그룹이 이와 함께 “총 고용 인원을 2020년까지 59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덧붙인 점이다. 롯데가 밝힌 바에 따르면 2020년 롯데의 직접 고용 인원은 15만 5000명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43만 5000명은 간접고용으로 채우겠다는 이야기다.

알려진 대로 간접고용은 위탁계약, 하도급계약 등을 말한다. 정상적인 고용이 아니라 재벌들 배를 채우기에 가장 적합한,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심각한 착취 구조에 뛰어들게 하는 대표적인 ‘나쁜 고용’이다. 백화점과 마트 숫자 늘리면서 그 직원들을 대놓고 하도급으로 돌리겠다는 소리다. 안 그래도 간접고용 인원이 대기업 평균 3배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은 롯데그룹이다. 그 간접고용을 43만 명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것은 채용을 늘리는 게 아니라 대놓고 착취하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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