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534

박근혜 정권을 지탱한 건 팔할이 정언유착이었다
[이완기 칼럼] 임기 반환점, 이제 시간은 민주세력의 편이다
입력 : 2015-08-17  09:12:47   노출 : 2015.08.17  10:30:46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 wklee1020@gmail.com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여당은 상찬했고 야당은 깎아내렸다. 여야의 상반된 입장을 차치하고, 이번 경축사는 광복 70년에 부응해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표현해 오히려 나라 안의 좌우대립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한반도의 기적, 경제강국 등 아버지 시대의 치적을 장황하게 열거하면서도 같은 시기 독재정권 밑에서 투옥과 고문과 사법살인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일언반구 위로의 말 한 마디도 없었다는 점에서 남은 임기 중 박근혜의 편향된 인식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했다.

박근혜 정권 절반의 임기가 지나는 현 시점에서 박 정권의 이미지는 부정선거, 무능, 무책임, 불통, 유체이탈 등 하나같이 부정적 언어로 얼룩져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박 정권은 그로인해 야당의 공세와 시민사회의 저항에 부딪혔다. 그동안 박 정권 하에서 저질러졌던 국기문란 행위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국정원 관권부정선거, 남북정상의 NLL회의록 공개, 공무원 간첩조작, 정윤회와 문고리권력의 국정농단, 세월호 참사,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 국회법 개정안, 국정원의 사이버사찰 등 하나하나가 역대 정권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대선 공약은 대부분 폐기 또는 축소되었고, 총리와 각료들의 인사는 눈뜨고 볼 수 없는 추잡한 이력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시간은 항상 박 정권의 편이었다. 박 정권의 이런 의혹들은 잠시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사라지고 박근혜는 건재함을 과시해 왔다. 인터넷 공간에서 박근혜에 대한 원성과 조롱의 언어가 차고 넘쳤지만 그는 선거에서 항상 야당을 따돌리는 신통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이런 위기 때마다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메커니즘이 있다. 그것은 이열치열, 이독공독, 즉 열로 열을 다스리고, 독으로 독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드러난 악을 또 다른 악으로 밀어내 버리는 것이다. 박 정권 임기 초에 국정원 관권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저항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을 때, 국정원은 ‘불법’을 무릅쓰고 남북정상들의 NLL회의록을 공개해 이슈화함으로써 관권부정선거 이슈는 잠잠해졌다. 성완종 리스트로 박 정권의 대선자금 의혹이 한창 부풀어 있을 때도 메르스 사태는 ‘정부의 무능’이라는 또 다른 악재로 등장해 성완종 리스트를 잠재웠다. 뒤에 나타난 의혹이 앞의 의혹을 덮어버리는 이러한 메커니즘은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을 포기한 채 문제를 흐지부지 넘기고, 들끓던 여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망각의 늪으로 빠져든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지만 악의 순환구조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나라는 그냥 굴러갔다.

▲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박유철 광복회장 등 참석자들이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러한 악순환의 구조를 가능케 하는 절대적 조건은 정언유착의 커넥션이다. 언론은 적절한 시간이 흐른 뒤에 때 맞춰서 정권이 내놓은 사건을 축소하거나 확대함으로써 이슈를 잠재우고 또 다른 이슈를 만들어 간다. 국민은 이 이슈 만들기의 메커니즘을 통해 망각의 도가니에 빠진다.

이러한 악순환은 국가정보기관과 유착된 거대 족벌신문들에 의해 주도되며 고질적인 정보 갈증으로 목말라하는 언론시장의 병폐가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언론시장의 작은 틈바구니를 지키고 있는 일부 진보신문들도 변화무쌍한 언론소비자들의 구미를 맞춰야만 하는 시장의 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뉴스(News)는 새로워야 하고 새로운 팩트가 아니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시의성 없는 기사는 아무리 중요해도 별스런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러한 고유의 속성 때문에 언론은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기사거리를 소화하느라 여념이 없다. 치열하게 이슈를 만들어내고 더 깊이 더 집요하게 진실을 파고드는 심층의 언론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뉴스타파>와 <미디어오늘> 등 대안매체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보였지만 소수의 인력과 정보유통능력 때문에 한계에 머물고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제 권력이 사악한 일을 저질러 놓고 그것이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면 또 다른 악재를 개발해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리하여 진실은 은폐되고 또 다른 악으로 논란을 옮겨놓을 뿐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 부정선거, 비리인사, 아니면 말고 식의 막말과 망언이 계속되는 이유이다.

이 악순환의 구조를 타개할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 모든 약자들이 뭉치는 것뿐이다. 개별화된 노동자들, 흩어진 시민사회가 큰 틀로 뭉치고 연대해야 한다. 수많은 정보와 다량의 의제 속에서 고만고만한 대안언론들이 속보경쟁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장의 구조를 타파할 수 있어야 한다. 거대 족벌언론이 만들어낸 구도에 따라 이슈에서 또 다른 이슈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이 악의 구조를 깨지 못한다면 진실 찾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경쟁 속에 있는 마이너 언론들이 뭉치고 연대해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힘을 키워야 한다. 그리하여 이슈의 집중을 통해 한 가지라도 확실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정의가 승리할 때까지 모든 사회적 약자와 민주세력들이 뭉쳐 한 가지라도 승리할 수 있도록 희망을 거는 일이다.

박근혜 정권 절반의 임기 동안 박 정권에서 드러난 의혹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 졌듯이 시간은 박 정권의 편이었다. 그러나 이제 임기 절반이 넘어가는 이 시점부터 시간은 민주세력의 편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