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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안 가도 이미 '식물 대통령', 야당의 복잡한 계산
탄핵 발의할 수 있지만 의결까진 여러 걸림돌, ‘국정공백’ 부담도 커… 비서진 교체‧특검 요구만
조윤호 기자 ssain@mediatoday.co.kr  2016년 10월 26일 수요일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은 물론 기밀정보까지 보고받고, 각종 국정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금기어였던 ‘대통령 탄핵’ ‘하야’가 공론화되고 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5일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총에서 하야 및 탄핵 관련 발언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있었다”고 답했다.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국민 여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원들도 여론의 무게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의견 안에 그런 내용을 섞어 말씀하신 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1야당의 의원총회에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탄핵이라는 금기는 깨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3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을 이유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 정부와 대통령은 탄핵 대상이 아닌가”라는 글을 올렸을 때만 해도 새누리당은 “정치테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 등을 미리 받고 첨삭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25일 하루 종일 네이버와 다음의 인기검색어를 ‘탄핵’과 ‘하야’가 차지했다.

▲ 25일 17시 기준 네이버(왼쪽)와 다음 인기검색어.

정치인들도 탄핵과 하야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6일 SBS ‘박진호의 시사 전망대’ 인터뷰에서 “이미 대통령의 권위도 상실하고 지도력도 다 없어졌다. 직무 수행 능력도 의심되고. 저는 하야하고 거국 중립 내각 구성해서 국가 권력 다 넘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본인이 거부하면 결국 탄핵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야권이)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 발의와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소추를 결의할 수 있다. 청와대가 버티면 국회는 그냥 넘어가주는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란다”고 밝혔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석고대죄하고 하야해야 한다고 본다.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썼다.

탄핵요건과 절차는 헌법에 나와 있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 위배 소지는 명확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최순실씨로부터)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 (수정을 하는)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이 있으나 청와대 보완체계가 완비된 후에는 그만뒀다”고 말했다. 스스로 최씨에게 청와대 내부 자료를 넘겼다고 시인한 셈이다. 이외에도 최씨가 외교 및 안보문서까지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및 공무상 비밀누설죄를 위반했을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법률 위배 소지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실제 탄핵으로 이어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 번째는 정치적 조건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결되려면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발의는 가능하지만 의결까지 가려면 새누리당의 이탈표가 필요하다. 야당과 무소속 의원을 다 합쳐도 3분의2에 못 미치는 171석(더민주 121석+국민의당 38석+정의당 6석+무소속 6석)이다. 탄핵 의결을 하려면 새누리당 의원 129명 중 29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새누리당 비박계의 요구사항은 특검 및 국정조사,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이지 탄핵이나 하야는 아니다. 비박 계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25일 CBS ‘시사자키’ 인터뷰에서 탄핵 및 하야 요구에 대해 “지금 그렇게까지 우리가 할 부분은 아니다”며 “오죽하면 이런 소리까지 나오는가를 감안해서 대통령께서 특검도 수용하겠다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법적인 조건도 필요하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 재판관 6인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탄핵이 가능하다. 지난 2004년 새누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연합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 선거중립 의무, 측근비리 등이 이유였지만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해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정당화 된다”는 이유였다.

▲ 무소속 김종훈 의원(왼쪽)과 윤종오 의원이 26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김종훈 의원실 제공

헌법재판소가 최순실 게이트를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 혹은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할 경우’라고 판단할 지는 미지수다. 또한 2004년 사례처럼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의결했음에도 헌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역으로 국회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야당 내부에서도 탄핵이나 하야 요구에 대해 신중론이 나오는 이유는 탄핵, 하야 요구를 시작하면 야당도 정치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탄핵이나 하야로 인해 대통령이 공석 상태가 되면 60일 이내 대선을 실시해야한다. 지금까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국 혼란의 책임은 박근혜 정부가 지게 되지만, 그 이후의 정국 혼란으로 인한 책임은 탄핵 및 하야 요구를 제기한 야당이 함께 지게 된다.

도종환 민주당 의원은 25일 CBS ‘시사자키’ 인터뷰에서 “무조건 탄핵으로 갈 때 더 걱정되는 게 나라의 국정운영의 공백이다. 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그냥 다 내쫓고 전 내각이 총 사퇴를 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아무 준비도 없이 경제가 망가지고 안보위기가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히 국정 공백이 이뤄진다면 이건 나라가 공중 분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탄핵 발의’만 해서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은 26일 YTN ‘신율의 출발새아침’ 인터뷰에서 “지금 그런 들끓는 민심을 본다면, 탄핵까지 결행하기 전 단계, 탄핵 발의는 해 놓는 것이 어떨까”라며 “이럴 때 야당이 또 너무 몸 사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탄핵 발의만 해도 정국은 ‘탄핵 국면’으로 진행될 것이고, 그로 인한 부담은 야당이 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만약 야당이 새누리당 비박계를 설득해 탄핵 의결이나 하야 압박에 나선다면 새누리당은 최순실 게이트의 당사자가 아닌 야당과 함께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무엇보다도 야당 입장에서 이미 레임덕의 절정을 맞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굳이 탄핵할 이유도 없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개혁을 추진하던 임기 초반, 노무현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 간의 대립 끝에 나왔다. 하지만 설사 탄핵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레임덕을 맞은 임기말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무리하게 탄핵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야당은 공식적인 탄핵이나 하야 언급은 하지 않은 채 특검 및 청와대 비서진 총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6일 오전 의총 직후 브리핑에서 “우병우 수석을 비롯한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한 청와대의 전면 쇄신을 요구한다”며 “이후 특검, 국정조사 등 전방위적 수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공공성 강화와 성과 퇴출제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행동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요구를 수용하느냐이다. 검찰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기에 박 대통령 입장에서 검찰을 지휘할 우병우 민정수석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해졌다. 박 대통령의 사과 이후에 언론 보도를 통해 추가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사과 한 번으로 ‘퉁 치려는’ 모습도 보인다.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은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추가로 말할 기회가 있겠나’라는 질문에 “대통령이 사과한 내용과 사과 방식이 진솔하고 진심을 담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버티기’에 들어갈 경우 탄핵 및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6일 CBS ‘뉴스쇼’ 인터뷰에서 “지금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때 닉슨이 어떻게 된 사건으로 탄핵에 직면에서 하야해야 했는지 그 상황을 좀 면밀히 복기해야 할 것 같다”며 “닉슨도 사태를 거짓말로 덮으려다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지금 대통령이 딱 그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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