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3001
최순실 게이트를 정확히 예언한 소설이 있었다
[서평] 소설 ‘혜주’, 책사의 국정농단으로 4년만에 쫓겨난 비운의 여왕... 나향욱 개돼지 발언까지 '예언'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6년 11월 01일 화요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성지순례’하게 될 책이 있다. 정빈이라는 필명을 가진 저술가가 지은 장편소설 ‘혜주’가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 4년차를 맞이하는 2016년 1월1일 출간한 이 책은 즉위 4년차에 쫓겨나는 여왕의 이야기를 다뤘다.
한 대학생이 지난 27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주전이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최순실 사태 이전에 나온 소설이다. 올 초만 하더라도 ‘하야’나 ‘탄핵’이야기가 실시간 검색어를 뒤덮을 것이란 예상이 힘들었다는 점에서 뒤늦게 주목할 만하다.
[관련기사 : 대학생이 쓴 '공주전', 이것은 픽션입니다]
주인공은 혜명공주. 아버지 광조가 갑자기 죽자 딸 혜명공주는 어린나이에 여왕이 된다. 어머니 순현왕후가 여주김씨 궁밖에 있던 시절부터 혜명공주를 데리고 다니던 절 회운사가 등장한다. 혜명공주는 이때 인연으로 중전이 돼서도 발길을 끊지 않았다. 회운사에서 어렸을 때부터 시자(侍子) 생활을 하던 무극은 절에 드나들던 혜명공주를 모시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을 연상케 하는 소설 속 3인방 중 무극에 이어 두 번째 인물은 노천이라는 책사다. 여왕 혜주의 심복이다. 하지만 그 정체는 의혹투성이다. 마지막 인물은 민 상궁. 등장인물들은 현실 속 최순실 게이트와 비교해보면서 최순실과 정윤회 등 누구와 가까운지 추측해보게 된다. 종교인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혜주는 출생의 비밀, 주변사람들은 성관계 등으로 난잡하게 엮여있다. 역시 세간에 떠도는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인물들의 출생의 비밀과 유흥업소 종업원 등과의 관계를 유추해보면서 읽으면 흥미진진하다. 자칫 삼류작품 쯤으로 격하될 뻔 했지만 소설 ‘혜주’는 최근 일련의 사태 덕에 예언서로 평가받을만하게 됐다.
초반부 독자들은 혜주에게 연민을 느낀다. 혜주는 아버지 광조를 어린나이에 잃고 큰 부담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주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다.
▲ 소설 ‘혜주’/ 정빈 지음/ 피플파워 펴냄
두물섬 참사
“청년들은 헤엄쳐 나왔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했나요? 물가에 사는 사람들이 헤엄도 하나 못 치나요?”
두물섬이란 곳에서 큰 물난리가 일어났다. 혜주는 우왕좌왕. 결국 섬 주민들을 구하지 못했다. 두물섬 참사의 후속 대책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책으로 학생들에게 수영교육을 강화하려 했다.
두물섬 참사 이후에는 나라에 역병이 돌기도 했다. 메르스 정국 때 역시 박근혜 정부는 무능했다.
괴벽보를 붙인 이에게 혜주는 단설형, 혀를 자르는 형을 내린다. 박근혜-정윤회 관련 전단지 배포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수감생활을 한 박성수(둥글이)씨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개돼지 발언 예언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을 예언한 소설 속 한 부분도 있다.
“(괘념치 마시옵소서.) 백성들은 마구간 누렁소나 뒷간 똥돼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나면 죽고 죽으면 또 태어나는 법이옵니다. 부디 성심을 굳건하게 보지(保持)하시옵소서.”
출생의 비밀, 혜주 즉위의 정당성마저 흔들게 된다. 군주제에선 출생이 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하고 민주제에선 선거가 정당성을 보장한다. 18대 대선 당시 저질러졌던 부정선거로 민주적 정당성이 훼손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인 풍자로 볼 수 있다.
“오기와 독선을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무능한 임금은 또 처음 봤습니다. 본인이 잘 모르면 신료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면 될 텐데 침전에서 혼자 모든 걸 처리하려니 무리수가 따르는 건 당연지사지요. 솔직히 말해 폐주가 군사를 알겠습니까? 외교를 알겠습니까? 기껏해야 문고리 권력인 우별직 노천과 좌별직 무극 그리고 민 상궁의 치마폭에 놀아난 꼴이니 주변 사람을 잘못 쓴 것도 다 폐주 자신의 책임이지요.”
“여러분께서도 다 아시다시피 지금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법도 질서도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주상전하의 하교만이 법이요, 질서인 나라가 돼버렸습니다. 금년으로 주상께서 즉위하신지 네 해가 됩니다. 돌이켜 보면 탈법과 전횡, 무능과 무책임으로 점철돼 왔다고 이 사람은 평가하고 싶습니다.”
즉위 4년차에 쫓겨난 여왕
▲ 박근혜 대통령
무능한 왕은 결국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민 상궁은 의금부 군졸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갔다. 측근들이 왕을 버리기 시작했다. 혜주와 민 상궁은 사이가 나빠졌다. 결국 민 상궁은 자결했고, 폐주도 뒤를 따랐다.
즉위 4년차에 쫓겨난 여왕. 실록에는 혜명공주가 급사한 것으로 돼 있고 사인은 나와 있지 않았다. 또 회운사에는 대화재가 발생해 전소돼 4년간의 역사는 사라졌다는 게 이 소설의 설정이다. 박정희 미화, 국정교과서 강행 등 부정한 역사를 지우려는 박근혜 정부의 여러 모습이 떠오른다.
이쯤되면 저자가 궁금해진다. 글쓴이는 정빈이라는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단설형’이 무서워서일까?
저자는 친일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30여년간 기록해온 언론인 정운현씨다. 역사는 우연처럼 반복된다. 한 평생 역사를 다루던 이에게서 나온 통찰일까?
정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원고를 다 쓰고 출판사 여러 곳에 연락을 했는데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극적이어서 출판조차 어려웠다”며 “친일문제를 다뤄온 나에 대한 선입견이 독자들에게 있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릴까 싶어 필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소설로 끝날 것인가, 예언서가 될 것인가?
이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았다. 출간 당시엔 너무 허무맹랑한 소설이었고, 지금은 허무맹랑한 현실이 소설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최순실 게이트를 정확히 예언한 소설이 있었다
[서평] 소설 ‘혜주’, 책사의 국정농단으로 4년만에 쫓겨난 비운의 여왕... 나향욱 개돼지 발언까지 '예언'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6년 11월 01일 화요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성지순례’하게 될 책이 있다. 정빈이라는 필명을 가진 저술가가 지은 장편소설 ‘혜주’가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 4년차를 맞이하는 2016년 1월1일 출간한 이 책은 즉위 4년차에 쫓겨나는 여왕의 이야기를 다뤘다.
한 대학생이 지난 27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주전이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최순실 사태 이전에 나온 소설이다. 올 초만 하더라도 ‘하야’나 ‘탄핵’이야기가 실시간 검색어를 뒤덮을 것이란 예상이 힘들었다는 점에서 뒤늦게 주목할 만하다.
[관련기사 : 대학생이 쓴 '공주전', 이것은 픽션입니다]
주인공은 혜명공주. 아버지 광조가 갑자기 죽자 딸 혜명공주는 어린나이에 여왕이 된다. 어머니 순현왕후가 여주김씨 궁밖에 있던 시절부터 혜명공주를 데리고 다니던 절 회운사가 등장한다. 혜명공주는 이때 인연으로 중전이 돼서도 발길을 끊지 않았다. 회운사에서 어렸을 때부터 시자(侍子) 생활을 하던 무극은 절에 드나들던 혜명공주를 모시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을 연상케 하는 소설 속 3인방 중 무극에 이어 두 번째 인물은 노천이라는 책사다. 여왕 혜주의 심복이다. 하지만 그 정체는 의혹투성이다. 마지막 인물은 민 상궁. 등장인물들은 현실 속 최순실 게이트와 비교해보면서 최순실과 정윤회 등 누구와 가까운지 추측해보게 된다. 종교인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혜주는 출생의 비밀, 주변사람들은 성관계 등으로 난잡하게 엮여있다. 역시 세간에 떠도는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인물들의 출생의 비밀과 유흥업소 종업원 등과의 관계를 유추해보면서 읽으면 흥미진진하다. 자칫 삼류작품 쯤으로 격하될 뻔 했지만 소설 ‘혜주’는 최근 일련의 사태 덕에 예언서로 평가받을만하게 됐다.
초반부 독자들은 혜주에게 연민을 느낀다. 혜주는 아버지 광조를 어린나이에 잃고 큰 부담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주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다.
▲ 소설 ‘혜주’/ 정빈 지음/ 피플파워 펴냄
두물섬 참사
“청년들은 헤엄쳐 나왔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했나요? 물가에 사는 사람들이 헤엄도 하나 못 치나요?”
두물섬이란 곳에서 큰 물난리가 일어났다. 혜주는 우왕좌왕. 결국 섬 주민들을 구하지 못했다. 두물섬 참사의 후속 대책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책으로 학생들에게 수영교육을 강화하려 했다.
두물섬 참사 이후에는 나라에 역병이 돌기도 했다. 메르스 정국 때 역시 박근혜 정부는 무능했다.
괴벽보를 붙인 이에게 혜주는 단설형, 혀를 자르는 형을 내린다. 박근혜-정윤회 관련 전단지 배포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수감생활을 한 박성수(둥글이)씨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개돼지 발언 예언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을 예언한 소설 속 한 부분도 있다.
“(괘념치 마시옵소서.) 백성들은 마구간 누렁소나 뒷간 똥돼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나면 죽고 죽으면 또 태어나는 법이옵니다. 부디 성심을 굳건하게 보지(保持)하시옵소서.”
출생의 비밀, 혜주 즉위의 정당성마저 흔들게 된다. 군주제에선 출생이 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하고 민주제에선 선거가 정당성을 보장한다. 18대 대선 당시 저질러졌던 부정선거로 민주적 정당성이 훼손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인 풍자로 볼 수 있다.
“오기와 독선을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무능한 임금은 또 처음 봤습니다. 본인이 잘 모르면 신료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면 될 텐데 침전에서 혼자 모든 걸 처리하려니 무리수가 따르는 건 당연지사지요. 솔직히 말해 폐주가 군사를 알겠습니까? 외교를 알겠습니까? 기껏해야 문고리 권력인 우별직 노천과 좌별직 무극 그리고 민 상궁의 치마폭에 놀아난 꼴이니 주변 사람을 잘못 쓴 것도 다 폐주 자신의 책임이지요.”
“여러분께서도 다 아시다시피 지금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법도 질서도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주상전하의 하교만이 법이요, 질서인 나라가 돼버렸습니다. 금년으로 주상께서 즉위하신지 네 해가 됩니다. 돌이켜 보면 탈법과 전횡, 무능과 무책임으로 점철돼 왔다고 이 사람은 평가하고 싶습니다.”
즉위 4년차에 쫓겨난 여왕
▲ 박근혜 대통령
무능한 왕은 결국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민 상궁은 의금부 군졸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갔다. 측근들이 왕을 버리기 시작했다. 혜주와 민 상궁은 사이가 나빠졌다. 결국 민 상궁은 자결했고, 폐주도 뒤를 따랐다.
즉위 4년차에 쫓겨난 여왕. 실록에는 혜명공주가 급사한 것으로 돼 있고 사인은 나와 있지 않았다. 또 회운사에는 대화재가 발생해 전소돼 4년간의 역사는 사라졌다는 게 이 소설의 설정이다. 박정희 미화, 국정교과서 강행 등 부정한 역사를 지우려는 박근혜 정부의 여러 모습이 떠오른다.
이쯤되면 저자가 궁금해진다. 글쓴이는 정빈이라는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단설형’이 무서워서일까?
저자는 친일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30여년간 기록해온 언론인 정운현씨다. 역사는 우연처럼 반복된다. 한 평생 역사를 다루던 이에게서 나온 통찰일까?
정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원고를 다 쓰고 출판사 여러 곳에 연락을 했는데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극적이어서 출판조차 어려웠다”며 “친일문제를 다뤄온 나에 대한 선입견이 독자들에게 있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릴까 싶어 필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소설로 끝날 것인가, 예언서가 될 것인가?
이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았다. 출간 당시엔 너무 허무맹랑한 소설이었고, 지금은 허무맹랑한 현실이 소설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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