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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비 뚫고 임산부도 나왔다, "나는 왜 촛불 들었나"
김민중 기자 입력 2016.11.27 09:22 

(종합)광장에 쏟아진 평범한 이웃들..등산 마치고 그대로 나온 산악회 회원들도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사진제공=뉴스1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사진제공=뉴스1

회사원 이모씨(32)는 26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부인과 함께 촛불을 들고 '셀카'를 찍었다.

그런데 이씨의 표정이 조금 불안하다. 임신 5개월째인 부인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씨는 "산부인과에서 초음파검사를 해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하다는 걸 확인하고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눈발까지 휘날리던 궂은 날씨, 이씨는 혹시 모를 과격 집회 가능성을 우려해 혼자 집회에 오려 했다. 그러나 부인 나모씨(27·여)가 "뱃속 아기에게도 역사적인 현장을 보여주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날 광화문광장 일대에서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로 '200만의 함성 200만의 촛불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5차 촛불집회)이 열렸다.

지난달 29일 이후 5번째 열린 대규모 시위로 주최 측 추산 150만명(경찰 추산 27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지방 집회까지 합하면 190만명(경찰 추산 33만2500명)이 촛불을 밝혔다.

인파 속에는 시민단체 운동가나 정치인뿐만 아니라 집회와 담을 쌓고 살던 남녀노소 평범한 시민들이 대거 눈에 띄었다. 대부분 이씨 부부 같이 가족 단위거나 연인, 친구, 동네 이웃끼리 나왔다.

남편 손을 잡고 기자에게 사진촬영을 요청한 학원 강사 최모씨(52·여)는 "아들은 미국에 있고 딸은 일하고 있어서 그렇지 원래는 온 가족이 집회에 참가하려 했다"며 "박 대통령 퇴진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해 나왔는데 시민들의 성숙한 집회 문화 덕분에 오히려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씨의 남편 박모씨(55)는 "현장에 있으니 마음 속에서 울컥하는 게 있다"고 말했다.

부인과 처형, 고등학생 자녀 2명과 함께 나온 회사원 박동희씨(51)는 "지난주 집회 때는 혼자 나왔지만 오늘은 고3 아들까지 포함해 가족 전체를 총동원했다"며 "박 대통령이 전혀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것 같아 더욱 강한 퇴진요구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환갑맞이 동창회를 하던 중 화가 나 집회까지 참석한 무리도 있었다. 금융권에서 임원까지 하고 퇴직했다는 홍모씨(60)는 "종로3가에서 모임을 갖다가 친구 2명과 의기투합해 왔다"며 "개인적으로는 3번째 집회인데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만큼은 어떻게든 박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 이웃주민끼리 왔다는 사람도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온 가정주부 서모씨(62·여)와 정모씨(62·여)는 "60년 넘게 살면서 처음 집회에 참가했다"며 "나라가 어쩜 이 지경인지, 오죽했으면 우리 같이 집회에 아무 관심 없던 사람들도 이러겠느냐"고 반문했다.

경기 용인시에 산다는 가정주부 김모씨(63·여)와 이모씨(79·여)는 "4·19혁명 때도 이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다"며 "기성세대로서 이런 나라를 젊은이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니 너무 부끄러워 집에 있을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몸이 안 좋다는 이씨는 "집을 나설 때 눈이 많이 내려 주위 사람들로부터 걱정을 샀지만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중·고등학생들은 한데 모여 목소리를 냈다. 중학생 장해미(16·여)양은 "박 대통령은 대통령 되고 얼굴이 정말 어려지셨는데 정신연령도 어려지신 것 같다"며 "그 큰 잘못을 하고도 어떻게 그렇게 모른 척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학생 안유림양(15·여)은 "아버지가 건설노동자고 어머니는 유통 일을 하신다"며 "부모님이 힘들게 번 세금이 영양주사나 비아그라 등 엉뚱한 데 쓰였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밖에도 광장에서는 낮에 북한산 등산을 하고 그대로 시위현장으로 온 산악회 회원들, 주말 데이트를 포기한 연인 등 여기저기서 달려 나온 평범한 이웃들로 가득했다.

김민중 기자 mi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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