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3441.html

줬다 뺏는 배상금…인혁당 유족 “집마저 앗아가나요”
등록 :2017-02-20 19:02 수정 :2017-02-20 20:59

2심까지 배상소송 이겨 돈받았는데 2011년 대법 “이자 과다” 반환 판결
10여명 “고통의 대가인데…” 거부, 상당액 국가폭력 치유 위해 기부도
이자 20%씩 늘어 반환금 ‘눈덩이’ ‘집 경매’ 법원 통지서에 발동동, “다시 독재정권 시절 돌아가” 항의



5억9054만5940원(지난 10일 기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 고 나경일(2010년 사망)씨 유가족 은주(63)씨가 ‘대한민국’에 갚아야 할 돈이다. 지난 14일 그의 유일한 재산인 대구 범어동 115㎡(35평) 집을 경매 처분하겠다는 법원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다음날 집행관이 들이닥쳐 ‘집의 시가가 3억여원’이라고 알려줬다. “30년 넘게 살아온 집이에요. 아버지가 감옥계시는 동안 가정교사 일, 식당 일하면서 저와 어머니가 같이 모아서 마련한 유일한 재산이에요.” 은주씨는 국가가 가져가겠다는 ‘집’을 설명하며 “손이 벌벌 떨린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수시로 울었다. 은주씨의 아버지 나경일씨는 인혁당 사건에서 고문 끝에 간첩으로 조작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8년 복역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이 오히려 국가에 돈을 갚아야 하는 이 상황은 2011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2009년, 은주씨 등 인혁당 피해자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국가폭력의 피해사실을 인정하고 사건 피해자와 가족 77명에게 총 배상금(원금과 지연이자) 중 65%를 우선 주도록 했다. 은주씨는 이때 4억5000여만원을 받았다. 이 중 상당액을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한 재단설립 등을 위해 기부했다. 2심까지 유지되던 결정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2011년 대법원은 피해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지연이자가 과하다’며 2009년부터의 지연이자만 배상금에 포함시켰다. 30여년치 이자가 배상금에서 사라졌다. 3억여원이었다. 은주씨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판결”이라며 ‘30여년치 이자’를 반환하지 않았다. “아버지 고통의 시간을 대가로 받은 돈을 돌려줄 수가 없습니다.” 이들이 버티자 2013년 7월 대한민국은 ‘과도하게 돌아간 가지급금을 돌려달라’며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넉달 뒤 대한민국은 승소했다. 안경호 4·9재단 사무국장은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지만 피해자와 가족 10여명이 여전히 ‘부당한 판결에 굴복할 수 없다’며 돈을 반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줬다가 다시 돌려달라’고 한 돈은 매년 20%씩 불어나 4년 만에 3억1200만원에서 5억9054만5940원이 됐다. 애당초 국가가 줬던 돈 4억5000여만원을 훌쩍 넘는 액수다. 대한민국은 동생 정수씨가 운영 중인 출판사 계좌까지 압류했다. “지금도 돈이 불어나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재산을 가져가겠지요.” 은주씨의 한숨이 깊어졌다.

안경호 국장은 “‘지연이자가 과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한동안 별 일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반환소송이 시작됐고, 재산압류로까지 이어졌다”며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 등을 통해 힘겹게 명예를 회복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다시 독재정권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돈을 무기로 피해자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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