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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의 '선의', 그때그때 다르다?
이명박 박근혜 정책은 '선의'로 보자면서 민주정부 비판엔 '굽은나무론' 
김민하 기자 | 승인 2017.02.20 16:00 

중도층 확장 전략에 제동이 걸리는 것일까. 안희정 충남지사의 발언으로 야권 전체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안희정 지사가 19일 부산대에서 열린 ‘즉문즉답’ 행사에 나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평가하면서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겠지만 결국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 때문이다. 안희정 지사는 “K재단, 미르재단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기업들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서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야권의 다른 대권주자 및 세력들은 일제히 안희정 지사를 겨냥해 포문을 여는 분위기다. 요즘 상승세인 안희정 지사의 기세를 꺾어 놓겠다는 의지가 엿보일 정도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0일 SBS라디오와의 전화연결에서 “청산하고 책임져야 될 상대의 손까지 잡아버리면 새로운 변화는 절반의 성공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바로 견제에 나섰다. 최근 국민의당에 합류한 손학규 전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와의 전화연결에서 “박 대통령이 훈련, 자질이 부족했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데, (안희정 지사의 말은) 좀 억지로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최근 특검과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과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박근혜 정권이 미르 K스포츠재단을 만든 의도는 결코 ‘선한 의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르 K스포츠재단’이라는 형식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대기업의 부를 특정인을 위해 빼돌리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안희정 지사의 발언이 ‘불’에 기름을 붓는 형국으로 이어지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명백히 ‘선의’에 의한 게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일까지 선의로 해석하려 든 것은 결국 ‘중도층 확장’이라는 선거 전략에 따른 발언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안희정 지사가 과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포함하는 대연정 구상’을 말했다는 사실은 이런 해석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인의 발언은 ‘선거 공학’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따른 발언이더라도 자신의 정체성까지 부정하는 수준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라면 곤란하다. 안희정 지사의 발언을 비판하는 야권 지지자들은 SNS 등에서 마치 그가 ‘표’를 위해 어떤 신념을 팔아넘긴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꺾어야 하는 1차적 목표를 갖고 있는 안희정 지사로서는 ‘공학’의 차원에서도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19일 오후 부산대 10.16 기념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안희정 지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지는 짐작 가는 바가 있다. 한국 정치는 끝없이 상대를 악마화 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어법으로 가득 차있다. 야권 지지자들이 여당 소속 정치인들을 친일파, 기업과 결탁한 기득권, 대의와 명분으로 사익추구를 포장하는 거짓말쟁이로 묘사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는 정작 여당이 주장하는 정책 자체에 대한 토론은 실종된다. 상대를 악마화 하는 어법은 일견 시원한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오히려 기득권에 상처를 내지 못하는 ‘무딘 칼’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선의’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만들었더라도 문제가 없냐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통해, ‘747공약’을 통해 장담한 연평균 성장률 7%를 달성했다면 괜찮냐는 것이다. 정책적 토론이라는 것은 바로 이 경우의 효용을 검토하는 것이지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무슨 의도를 갖고 어떤 사업을 추진했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를 통해 자기 배를 불렸다는 것에만 주목하지 이러한 대형 토건사업과 무분별한 해외투자를 통한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등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한다.

아마도 안희정 지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의’로 그러한 사업들을 추진했다는 점을 백보 양보해 인정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문제라는 얘기였을 것이다. 안희정 지사 측이 밝힌 행사 발언 전문을 보면 그렇다. 이 자리에서 안희정 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의’가 놓친 게 국가주도형 경제 발전 모델의 한계라고 언급했다. 의도를 논하는 걸 넘어서서 정책적 토론, 생산적 토론이 필요하다는 뜻 자체는 전달이 된다. 그러나 정치인은 어쨌든 자기 발언을 ‘정치적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안희정 지사의 이 발언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걸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정작 궁금해지는 것은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릴 것이냐에 대한 문제다. 안희정 지사는 19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기 때문에 당을 새롭게 만들고 반성문을 쓴 모든 정치 선배들에 대해 난 동의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저만 혼자 김대중 노무현의 고향에 남아 시대에 덜 떨어진 고집을 피우는 걸까요”라고도 반문했다. ‘못났지만 신념을 팔진 않았다’는 얘긴데,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말하는 사람들은 출세를 위해 신념을 굽힌 것에 가깝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안희정 지사의 인식이 옳다면 그런 일은 도대체 왜 일어났는가. 참여정부 말기 열린우리당이 붕괴한 것이나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국민의당이 뛰쳐나온 일은 결국 ‘정파적 이유’였던 것으로 평가하는 게 옳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변화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10년의 민주정부를 ‘신’이 운영한 게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정책적 실패로 평가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고, 이런 점들이 대중을 실망하게 했고, 바로 이 대중적 에너지가 이후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미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안희정 지사의 이런 세계인식은 이 대목을 외면하고 있다. 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선의’를 전제로 평가할 것을 주장하면서, 민주정부 10년에 비판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가.

안희정 지사는 이렇게도 말했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비정규직 임금격차, 임금착취, 소득양극화로 이어지는 현실을 극복하는 문제를 풀어야지 노동시장 유연화 그 자체를 찬반으로 싸워서는 답이 안 나온다.” 한미FTA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대안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개방화와 FTA를 통해 더 어려워진 산업과 농민, 계층에 대해 사회적 재분배를 하고 기회를 더 줄지를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대목에 대해서는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끼리도 반성적으로 평가하는 흐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생전에 남긴 유고를 통해 “우리가 진짜 무너진 핵심은 노동이다. 핵심적으로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논의된 ‘IMF 플러스’라는 협상안을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김대중 당시 당선인이 인정한 일을 기원으로 한다.

물론 안희정 지사가 문제가 되는 모든 정책을 이제와서 1997년 이전으로 되돌리겠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 정부가 한 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미완의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그 개혁의 과정에 아주 중요한 나침반 하나가 애초에 고장나 있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게 안희정 지사가 말하는 ‘선의’를 전제한 정책적 토론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첫 걸음이다.

김민하 기자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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