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94197.html?_fr=mt2

문재인 정부 인사의 최고 실세도 ‘시스템’일까?
등록 :2017-05-10 17:37 수정 :2017-05-10 17:44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42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무총리 및 국정원장 후보자와 비서실장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무총리 및 국정원장 후보자와 비서실장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권력은 인사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임기 개시와 함께 곧바로 인사를 시작했습니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이낙연 전남지사, 국정원장 후보자로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을 지명했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에는 임종석 전 의원, 경호실장에는 주영훈 전 경호실 안전본부장을 임명했습니다.

청와대 인사는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만 하면 끝입니다. 앞으로 청와대의 다른 수석과 비서관, 행정관 자리도 차례차례 채워나갈 것입니다.

국무총리와 장관 인사는 좀 복잡합니다. 국무총리는 국회의 임명동의가 있어야 하고, 장관들은 국무총리의 제청이 있어야 합니다. 국무총리와 장관 인사가 끝나야 차관급, 외청, 공기업체 등 수없이 많은 새 정부 인사를 순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라고 했습니다. 국무총리 후보자를 발표하면서는 “균형 인재 발탁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한 얘깁니다. 이대로만 하면 인사를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좀 허전하지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대통령 인사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입니다. 탕평과 적재적소 이외에 ‘문재인 인사’의 특징이 없을 수 없습니다. ‘문재인 인사’의 방향과 원칙은 과연 무엇일까요?

참여정부 경험 풀어 쓴 과거 저서 내용 등으로 본 ‘문재인 인사’ 방향과 원칙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 대세를 장악해야”
“인사 추천과 검증 철저히 분리”
“참여정부 인사 최고 실세는 시스템
노 대통령도 시스템 안에서만 인사”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엔 부정적

문재인 대통령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에 노무현 정부의 조각 뒷얘기를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놀라운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첫 조각은 파격 그 자체였다. 특히 사회 분야 쪽은 거의 다 파격이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때 개혁적 인사들이 한 두 명씩 내각이나 청와대에 발탁됐다가 견디지 못하고 불려 나오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나는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의 대세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선인의 생각도 같았다.”

“사회 분야 쪽은 그것이 가능했다. 우리에게 인재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교·안보·국방·경제 등의 분야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 분야 인재풀이 약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쪽 분야는 잘 알지 못해서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의 대세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의 생각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을까요? 사람은 생각을 쉽사리 바꾸지 않습니다.

더구나 2002년~2003년과 달리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경제 분야 인재풀을 폭넓게 확보하고 있습니다. 2012년 대선과 2017년 대선을 치르며 각 분야 전문가들을 영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있을 문재인 정부 조각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개혁적 인사들을 일거에 대거 발탁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내정이 바로 그 신호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파격적인 인물들이 청와대와 내각에 속속 가세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국무총리 제청권은 어떨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이낙연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철저히 보장할까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추측이 아닙니다. <문재인의 운명>에 근거가 있습니다.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실질 총리제를 위해,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을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다. 당선인도 그 소신이 강했다. 헌법에 규정돼 있는 이상 준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대통령제에 맞지 않는 제도일 뿐 아니라 대단히 위선적 제도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제 아래에선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정치적, 정책적 정체성에 따라 내각을 구성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국무총리가 국무위원 임명에 관여할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본다. 실제로도 연립정부가 아닌 한 대통령의 뜻과 다른 인물의 제청을 고집할 국무총리가 있을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앞으로 이낙연 후보자가 국회 임명동의를 거쳐 국무총리에 임명되더라도 제청권을 이용해 ‘대통령 인사’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통령 인사는 취임 초기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기 내내 공직 인사를 하는 것이 대통령입니다.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 시대의 공직 인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될까요? 문재인 대통령 시대에 공직을 맡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제가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장, 인사제도비서관, 인사관리비서관, 인사수석비서관을 지낸 박남춘 의원(인천 남동갑)이 참여정부 청와대 사람들과 함께 2013년 5월 <대통령의 인사>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바로 ‘문재인 의원’이 썼습니다. 글의 제목이 ‘왜 지난 정부의 인사 노하우를 활용하지 않는 걸까’였습니다.

“참여정부 인사 시스템의 구성 원리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다. 과거 민정수석실에서 함께 관장했던 추천과 검증 기능을 분리하여 추천은 인사수석실, 검증은 민정수석실이 나눠 맡도록 했다. 그리고 민정수석실은 추천에는 관여하지 않고 인사수석실이 추천하는 후보자에 대해 검증만 담당하도록 하여, 서로 균형 속에서 견제할 수 있게 했다.

둘째,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다. 인사추천회의는 인사수석실이 추천하는 후보자에 대해 추천 의견과 함께 민정수석실의 검증 의견, 그리고 추천위원들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들을 종합하여 치열한 토론 끝에 최종 후보자를 결정했다. 말하자면 추천 의견과 검증 의견을 놓고 배심원들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구조였다. 검증도 부실검증과 자의적인 판단을 막기 위해 검증 항목과 평가 기준을 구체적으로 세분하여 정한 인사검증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매뉴얼은 언론과 청와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적용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그 매뉴얼이 끊임없이 보완되고 진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참여정부의 인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대통령이 그 시스템을 존중하고 스스로 기속됐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사 시스템 속에서만 인사를 했고, 인사추천회의의 결정을 존중했다. 때때로 참모진이 대통령의 의중을 미리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드문 일이었지만 대통령이 특정인을 후보군 속에 포함시켜서 검토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평소 특정인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등의 경우였다. 그러면 인사수석실은 그를 후보군에 포함시켜 검토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도 인사추천회의에서 부적격 판정을 내리면 대통령은 그에 따랐다. 참여정부 인사의 최고 실세는 ‘시스템’이라는 노 대통령의 말은 결코 수사가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추천과 검증의 철저한 분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모든 인사는 청와대 인사위원회를 거쳐 ‘투명하게’ 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바를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처럼 ‘예측 가능한’ 인물의 경우에는 특히 그럴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총리와 비서실장 등 인사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총리와 비서실장 등 인사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987년 대통령직선제 도입 이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정가에 늘 나타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선자 선거 캠프나 당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새 정부의 청와대나 행정부, 공기업체에 들어가려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입니다. 당선자의 신임이 두터운 측근을 찾아내 줄을 대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 인사의 최고 실세는 시스템이라고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문재인 대통령 시대에도 그대로 통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적절한 자리가 나면 직접 지원하면 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번에 문재인 대선 캠프의 꽤 중요한 자리에서 일했던 전직 의원이 있습니다. 선거 전날 이 전직 의원을 만났습니다. 그가 무척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5월10일 집에 간다. 놀러 다닐 생각이다. 대통령을 만드는 것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하고 말고는 내가 아니라 시스템이 결정할 것이다. 내가 필요하면 부를 것이고 필요하지 않으면 부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일까요? 아니면 문재인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 본 정확한 처신일까요? 이 사람이 문재인 정부에서 발탁되는지, 발탁되지 않는지 지켜볼 생각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