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0516044239997

"재인이는 인생이 훌륭한 사람" 50년 지기가 말하는 문재인 대통령
박지연 입력 2017.05.16. 04:42 수정 2017.05.16. 08:19 
 
지각쟁이 文 대통령, 소아마비 친구 돕느라 지각 감수
사업실패 김 판사에 용돈 주고 공부 도움도
文, 2~3년 전 “대통령 돼야겠다” 사명감 드러내

문재인 대통령의 50년 지기 친구인 김정학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15일 오전 자신의 집무실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50년 지기 친구인 김정학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15일 오전 자신의 집무실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50년을 지켜본 친구로서 재인이는 살아온 인생 자체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학(64ㆍ사법연수원 18기)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여섯 기수 선배인 문재인 대통령을 '재인이'라고 스스럼없이 불렀다.

김 판사가 뒤늦게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한참 후배가 됐지만, 둘은 경남중ㆍ경남고를 함께 다니며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둘도 없는 친구사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있었던 문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김 판사는 그 동안 나서지 않았다. 대선 전에는 후보자인 문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젠 그의 진면목을 알려야겠다 싶어 처음으로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15일 문 대통령의 50년 지기 김 판사를 인천지방법원 집무실에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학 부장판사가 2013년 1월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김정학 부장판사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학 부장판사가 2013년 1월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김정학 부장판사 제공

문 대통령은 학창시절 ‘지각생’이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불편한 김 판사의 책가방을 들고 중ㆍ고교를 함께 등교하다 보면 어김없이 늦곤 했다. 김 판사는 “지각하게 생겼으니 먼저 가라 해도 끝까지 함께 갔다”며 “진짜 가버리면 제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지 알고 지각하는 편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서를 많이 하고 시사에 밝았던 문 대통령과 대화하다 보면 가파르고 먼 길이 짧게 느껴졌다고 한다. 경남고 1학년 때 김 판사는 소풍을 포기했지만 문 대통령이 “가자”며 김 판사를 이끌었다. 김 판사를 업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느라 소풍이 끝나고 나서야 도착했지만, 중간에 도시락을 까먹으며 보낸 시간이 김 판사에게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그는 “친구들은 재인이가 저를 업고 온 사실을 알고 귀갓길에는 서로 돌아가며 업어줬다”고 회상했다. “1학년 때는 둘 다 키가 작았어요. 나중에 재인이가 하는 말이 ‘내 키가 조금 더 크고 힘이 셌으면 정학이를 마음껏 업고 갈 텐데’ 하면서 속으로 울었다고 하더군요. 재인이는 고2 때 10㎝ 이상 훌쩍 컸지요.”

지난해 6월 네팔 지진 피해복구 작업에 참여한 문 대통령이 네팔 보고회를 열고 경남고등학교 동문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정학 부장판사 제공
지난해 6월 네팔 지진 피해복구 작업에 참여한 문 대통령이 네팔 보고회를 열고 경남고등학교 동문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정학 부장판사 제공

김 판사는 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업에 실패했을 때 고시공부를 권유하고 뒷바라지까지 한 이가 문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앞날이 캄캄하던 그 때 재인이가 내 사정을 알고는 자기가 모든 비용을 다 댈 테니 고시공부를 시작하라고 했다”며 “내가 주저하자 후배를 보내서 ‘형님 꼭 모시고 내려오라고 한다’며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변호사로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다지 여유가 없을 때였지만, 이미 부산 구포에 고시원을 구해놓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새로 바뀐 고시서적과 용돈까지 대줬다. 김 판사는 ‘내가 불합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언제까지 책임을 지려는 걸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졌고, 밤 늦게까지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고는 언덕 아래로 보이는 불빛을 보며 매일 각오를 다진 결과 2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나란히 법조인의 길을 걸었지만, 김 판사는 인천지법에서 근무하고 문 대통령은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자주 보지는 못했다. 두 사람이 법정에서 판사와 변호사로 만난 건 한참 뒤 일이다. 김 판사가 1993년 창원지법 충무지원(지금의 통영지원)에서 형사단독 판사로 근무할 때 문 대통령이 변호인으로 법정에 섰다. 김 판사는 “판사와 변호사로 일합(一合)을 겨룰 걸로 기대했는데 단순도박 사건이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웃었다.

김정학 부장판사는 “30년 가까이 판사 생활을 하면서 ‘판사 10단’이 되는 것이 꿈인데 참 어려운 일 같다”고 말했다. 사법부 일원으로서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묻자 그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판사로서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김정학 부장판사는 “30년 가까이 판사 생활을 하면서 ‘판사 10단’이 되는 것이 꿈인데 참 어려운 일 같다”고 말했다. 사법부 일원으로서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묻자 그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판사로서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김 판사는 문 대통령을 강인하고 낙천적인 친구로 기억했다. 1975년 데모로 쫓기던 중 김 판사 집을 찾은 문 대통령은 평소처럼 바둑을 두며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판사는 “재인이가 ‘경희대도 데모를 시작했다’고만 말할 뿐 힘든 얘기는 안 했다”며 “제게 위로를 받는 듯 편안하게 찾아오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후 유신 반대 시위로 구속됐다 풀려난 문 대통령은 강제로 특수전사령부 예하부대에서 복무할 때에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육질이 되어 나타난 문 대통령에게 “고될 텐데 괜찮냐”고 묻자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의외로 특전사 체질인 가봐”라며 웃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서민을 이해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김 판사는 확신했다. 그가 보아 온 문 대통령의 모습은 순박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김 판사는 “2012년 대선 이후 어느 날인가 재인이가 약속에 늦어 이유를 물어보니 집에서 키우던 닭이 닭장에 안 들어가려고 해서 가두고 오느라 늦었다”며 “정원을 가꾸고 밭을 갈고 개, 고양이, 닭을 돌보다 보면 하루가 다 가는 게 딱 농부체질이라고 하더라”고 웃었다. 서울에서 일을 보고도 가축들이 눈에 밟혀 양산에 내려갈 정도였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문 대통령은 2008년 귀향하기 전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알고 있다”며 “과(過)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도 자유롭지 않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고 한다. 김 판사는 “비서실장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참 맑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에는 “나는 정치체질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최근 2~3년 전부터는 “내가 할 일이 생겼다. 대통령이 돼서 사회를 바꿔야겠다”면서 사명감을 드러냈다고 김 판사는 말했다.

김정학 부장판사는 “30년 가까이 판사 생활을 하면서 ‘판사 10단’이 되는 것이 꿈인데 참 어려운 일 같다”고 말했다. 사법부 일원으로서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묻자 그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판사로서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김정학 부장판사는 “30년 가까이 판사 생활을 하면서 ‘판사 10단’이 되는 것이 꿈인데 참 어려운 일 같다”고 말했다. 사법부 일원으로서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묻자 그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판사로서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김 판사는 문 대통령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을 기회가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문 대통령은 2008년 이후 부산에서 다시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사건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앞서 월급도 사무실도 없는 정무담당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수입이 끊긴 지 오래였다. 김 판사는 “부산에서 사건이 없어 고생하는데 저 역시 여유가 없어 도움을 못 줬다”며 “노동ㆍ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재인이는 어려운 와중에도 돈 안 되고 복잡한 재심 사건을 맡아 법리를 묻더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때는 김 판사가 서초구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더 조심스러웠다. 혹여 선거법에 위반될까 지지하는 발언도 못한 채 마음을 졸이며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고 한다. 김 판사는 “그 동안 재인이에게 진 빚을 갚을 기회가 없었다”면서 ”판사 월급으로 경제적 도움을 줄 수는 없어도 젊을 때 진 빚은 언젠가 폼 나게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판사는 문 대통령에게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민심을 봉합하는 화합정치와 외교ㆍ안보 불안을 씻어달라고 부탁했다. 과거의 잘못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 비전을 먼저 제시해주길 바랐다. 늘 약자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인천=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mailto: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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