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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그토록 반대했던 평화의 소녀상 제작 이야기
[기획-‘위안부’ ③-2] 소녀상 만든 조각가 부부 김서경, 김운성
문형구 기자 mmt@mediatoday.co.kr 2017년 06월 03일 토요일

소녀상이 가령 비석이나 사죄 구호를 담은 조형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전시에 어린 소녀들을 성 노예로 만들고 무참히 살해하기까지 한 일본의 책임을 묻고 있는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말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국민들이 함께 분노하고 아파하며 마음을 모으는 역사적 실체가 돼 왔다.

사실 소녀상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조각가인 김서경, 김운성 부부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소녀상을 구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1년 1월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인사동으로 향하던 김운성 작가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발을 멈추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증언을 하던 1992년에 기억이 멈춰있던 김 작가는 무관심하게 살아온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 김운성, 김서경 조각가 @이강훈

얼마후 김운성 작가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에 방문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미술을 하는 사람인데, 무슨 일이든 돕고 싶다’는 거였다. 그해 겨울 수요시위 1000회를 앞두고 있던 정대협은 20여년 할머니들의 싸움을 기리는 작은 비석을 잎본대사관 앞에 세울 계획이라며 그 디자인을 김 작가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비석에 대한 몇 개의 스케치가 완성되기도 전에 일본은 기념비 설치를 중단하라고 압박해왔다. 일본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이 있는가 하면 소녀상 설립 직전에도 주한 일본대사가 외무부를 방문해 “일본 대사관 앞 평화비를 세우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막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운성 작가는 이런 상황에 움츠러들고 있던 자신의 마음에 화가 났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기념비’라는 구상은 하루를 세우더라도 ‘의미심장한 조형물’을 만들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응당 사죄해야 할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뻔뻔스럽게도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기념비 하나에도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 소녀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의 소녀상은 그 구상 단계에서 계속 바뀌면서 탄생해갔다. ‘다소곳이 두 손을 포갠 모습’은 일본의 변하지 않는 태도에 ‘두 주먹을 꼭 쥔 형태’가 됐다.

소녀상을 디자인 한 건 김서경 작가다. 그는 디자인을 위해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자료들을 흡수하며 감정이입을 했고 ‘꿈을 빼앗긴 소녀’를 표현하기로 했다.

소녀상의 전신이라 할 ‘소녀의 꿈, 하나-못다핀 꽃’이란 작품은 “꿈 많던 소녀가 봄의 향기를 맡으며 예쁜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다. 김서경 작가는 최근 개정판을 펴 낸 작가노트(‘빈 의자에 새긴 약속’, 도서출판 말)에서 “꿈을 잃어버리기 전의 소녀였던 모습을 형상화하여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해서 일본 정부의 전쟁 범죄와 여성인권 유린의 참혹한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고 썼다.  

이 ‘소녀의 꿈’은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소녀상 미니어처를 거쳐 현재의 소녀상으로 거듭났다.  

소녀상을 디자인하고 뼈대를 만들고 흙을 덮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은, 불과 열셋 혹은 열네살의 나이에 ‘엄니와 아부지’의 품으로부터 떼어져 전쟁터로 끌려간 어린 소녀들과 동화하는 과정이었다. 흙 작업을 하는 3개월 내내 김서경 작가는 시시때때로 울고 화를 내고 답답함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수많은 일본군들에 바쳐진 소녀들의 두려움과 공포가 그 자신에게도 엄습해왔다.  

“그렇게 격하게 밀려든 감정을 가라앉히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 점 한 점 흙을 붙여갔습니다. 그리고 소녀상의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하고서야 비로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은 소녀상이 내게 가만가만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 소녀상을 바라보는 김서경 작가. 사진제공=김서경.

소녀상의 얼굴은 우리의 언니나 누이와 같이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이 소녀상의 얼굴은 ‘모델’이 없이 탄생했다.  

김서경 작가가 가장 긴 시간을 들인 작업도 소녀상의 얼굴이었다. 희생된 그 수많은 소녀들의 슬픔, 분노를 담아야 했고 또한 20년간 지속된 수요집회의 의미를 보여야 했기에 단 하나의 얼굴 ‘모델’을 쓸 수가 없었다. 작업기간 내내 “소녀의 얼굴은 울었다 화냈다 하며 계속 바뀌었다”. 그 얼굴은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화가 나지만 화난 표정이 아닌, 어리고 여린 소녀지만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는 모습”이어야 했다.

마침내 소녀상의 얼굴이 완성되던 순간을 김서경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찰흙과 손의 온기가 같아지고 부드러워질 대로 부드러워졌습니다. 마무리 작업을 하던 눈 매무새에서 손을 떼고 소녀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찾았던 얼굴이 나온 것에 감사하고 감사하며, 작업실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습니다”

소녀상은 수많은 상징을 안고 있다. 거칠게 잘리워진 머리카락은 무참히 끊겨 나간 어린 소녀들의 가족과의 인연, 고향땅과의 인연을 나타냈다. 어깨 위에 내려앉은 작은 새는 위안부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과 남은 소녀들을 이어주는 상징이다. 땅에 닿지 못한 발뒤꿈치는 조국에 돌아와서도 차가운 시선과 아픔의 세월을 떠돌듯 견뎌야했던 피해자들의 삶을 표현했다. 환생의 의미를 지닌 나비가 자리한 할머니의 그림자는 소녀들이 할머니가 되기까지의 아픈 긴 시간을 보여준다. 소녀상 옆의 빈 의자는 용감한 외침이 있고 세상을 떠 난 분들의 자리이자, 미래세대의 다짐을 나타내는 약속의 자리이다.  

“할머님들의 20년간의 수요집회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랬어요. 할머님들이 1991년에 말씀하기 시작하셨는데, 본인들이 피해받은 역사만을 세상에 알리려는 게 아니라 우리 미래세대의 아이들을 위해 그 자리에 계신 거라고. 그런 염원을 소녀상에 담고자 했습니다(김서경·운성 부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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