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0609212750615

가슴에 자식 묻고..민주화 투사 어머니들이 견딘 30년
신진 입력 2017.06.09 21:27 수정 2017.06.09 21:49 

[앵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투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쓰러져 갔습니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나 억울한 죽음도 많습니다.

지난 30년의 세월을 견딘 어머니들을 신진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영정 속 아들은 스물네 살 앳된 모습으로 웃고 있습니다.

공장 노동자들 권리를 위해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윤기 씨입니다.

쌀 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아온 어머니는 이제 백발 노인이 됐습니다.

[정정원/김윤기 열사 어머니 : 지금도 그게 가슴에 못이 박혔어. 신발 하나도 못 사 신기고 당가리(바지)도 못 사 입히고…가슴에 맺혀가지고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와.]

정 씨가 아들을 잃은 뒤 쓴 편지에는 "민주화가 이뤄져 윤기 영혼이라도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1988년 5월 여느 때처럼 집을 나선 아들은 29년째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던 서울대생 안치웅 씨, 넋이 나간 엄마는 온 서울을 헤맸지만 아들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백옥심/안치웅 열사 어머니 : 그 때 올림픽을 앞두고 공항에 들어오면 폭탄을 던진다고 해서 운동권들을 자꾸 미행을 했어요. 너무 억울한 게 어떻게 하필 우리 아들을…왜 하필 그중에서 나를…]

김혜수 씨는 아들의 죽음 만큼이나, 아들이 못 이룬 꿈 때문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노동 운동을 하던 아들 강민호 씨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공장에 위장 취업했지만 일주일 만에 기계에 빨려 들어가 숨졌습니다.

[김혜수/강민호 열사 어머니 : 노동자로서 살고 싶다는 메모도 남겨놓고 했으니까…뜻이 있어서 들어갔으니까 그 안에서 뜻을 이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의 얼굴을 보기 위해 영정 사진이 있는 유가족 협의회 사무실을 찾고 있습니다.

[김혜수/강민호 열사 어머니 : 주위에서는 오래 됐으니 잊고 사는 줄 알겠지만, 가슴에 묻고 산다는 말이 참 절절하게 느껴지고…]

30년 전 가족 사무실로 터를 잡은 동대문구 시장 골목의 한옥집에는 수배자들이 피신하던 다락방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역시 자식을 잃은 장남수 회장은 그래도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자부했습니다.

[장남수/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30년 전부터 민주화 운동에 씨앗을 뿌렸던 것이 트고 성장을 해서 (지난 겨울부터) 광화문에 1700만이라는 시민을 모았다고 그렇게 봅니다.]

(사진제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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