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0611121041040

대통령 '가야사'언급.."역사 도구화" vs "반발은 전문가 오만"
박정환 기자,김동규 기자,남경문 기자 입력 2017.06.11. 12:10 


'가야사 연구·복원' 언급 이후 학계 논쟁·지자체 치열
지자체 "영·호남 화두..가야 고분 2020년 세계유산 신청"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수석 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News1 DB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수석 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News1 DB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김동규 기자,남경문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고대 국가 가야의 역사 연구를 언급하면서, 역사학계·지방자치단체의 반향과 함께 가야사를 잘 모르던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발굴 성과에 따르면 가야는 경상도와 전라도 동부 지역에 있는 소국 10개가 연맹해 600년간 번성한 고대국가로 알려졌다. "고구려·신라·백제에 비해 가야 연구가 홀대받아 일반인이 가야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게 가야사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이런 가야역사를 연구·복원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이후 학계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우선 "대통령이 특정한 역사 연구를 지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정치권이 역사를 도구화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른 쪽에서는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를 오직 고대사 연구자 자신들만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문가의 오만"이라며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운용해야 할 위치에 있는 대통령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갖지 못하는 종합적·거시적 안목에서 연구 과제를 제시하는 게 비판의 대상은 아니다"라는 반박이 제기됐다.

관련 지자체들도 대통령의 언급에 화답해 가야사 복원 사업을 활발하게 준비하면서 합동으로 202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모습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가야사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지자체의 예산쟁탈전으로 변질되면 안 된다"며 "연구와 교육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각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 문 대통령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이라고 운을 떼면서 '가야사 연구 및 복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야사의 지역적 범위가 넓어 영호남 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취지에서다.

문 대통령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방정책 공약을 정리하고 있을 건데, 그 속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 부분을 꼭 포함해 줬으면 좋겠다"며 "우리 고대사가 삼국사 중심으로 연구되다 보니 그 이전 역사가 연구 안 된 측면이 있고 가야사는 신라사에 덮여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가야사가 경남 중심이고 경북까지 조금 미친 역사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더 넓다. 섬진강 주변 광양만·순천만, 심지어 남원 일대,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들이 남아 있다"며 "가야사 연구 복원은 영호남 공동사업으로 할 수 있어 영호남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정기획위가 놓치면 다시 과제로 삼기 어려울 수 있으니 이번 기회 충분히 반영되게끔 해달라"고 당부했다.

역사학계·지자체는 문 대통령의 발언 요지를 크게 세 가지로 해석했다. 우선 가야 유적이 분포한 영남·호남·충청권 일대를 '가야 문화권'으로 엮어 개발하면 지역통합의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경남 김해·함안·창녕 등 가야 유적 분포지를 역사 문화 관광 도시로 조성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2006년 잠정 중단된 이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판단했다.

이밖에 문 대통령 개인이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역사에 관한 관심을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2011)에서도 밝혔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 중고교 다니는 내내 역사가 가장 재미 있었고, 성적도 제일 좋았다. 지금도 나는 역사책 읽는 걸 좋아한다. 처음 변호사 할 때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대학입시 때에도 역사학과를 가고자 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이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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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가 역사를 도구화" vs "전문가의 오만"

역사학계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유사역사학을 추종한다'는 의혹을 놓고 논쟁을 펼치고 있다. 가야사가 신라사에 가려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대통령이 특정한 역사 연구를 지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정치권이 역사를 도구화해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이 골자다.

이런 주장의 중심에는 한국고대사학회장 하일식 연세대 교수(56)가 있다. 하 교수는 지난 4일 학회 홈페이지에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 복원 '지시'가 부적절한 이유'라는 글을 게시하며 "고고학계 일부는 환영하고, 일부는 갸우뚱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역사의 특정 시기나 분야 연구나 복원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며 "역사를 도구화하는 발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또 "역사를 잘못 가르친다고 국정교과서를 지시한 박근혜 정권의 악몽을 벗어난 지 아직 몇 달 지나지도 않았다"며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의 논의를 거쳐 중장기적 지원책이 마련되도록 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그를 비롯한 한국고대사학회 회원들은 국정교과서 반대에 앞장섰다.

그는 문화관광벨트를 만드는 것은 학문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라며 경계했다. 그러면서 "많은 연구자는 김대중 정부 때 금관가야(지금의 김해 일대)를 중심으로 가야사를 복원한다고 국가 예산 1290억 원을 쓴 것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이 있다"며 "예산이 정해지면 실제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은 10%도 안 되고 대부분 토목공사나 이벤트로 쓰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선 제목과 다르게 도종환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걱정하는 내용이 더 길게 할애돼 있다. 하 교수는 "도 후보자가 지난 19대 국회에서 사이비역사 주창자들과 결합하여 어떤 일을 벌였는가"라며 "지난주에 국회에서 그런 모임에 참석하여 축사하는 가운데 역사학계를 '식민사학 카르텔'에 찌든 존재로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도종환 후보자는 지난 8일 '유사역사학을 추종한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역사문제는 학문연구와 토론으로 풀어야 하지 정치가 좌지우지할 영역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특정 학설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이를 정부정책에 반영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일식 한국고대사학회장이 쓴 글은 학계에 큰 파문을 낳았으며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최성호 경희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 9일 교수신문 기고문 '대통령의 가야사 발언과 전문가의 오만'에서 하 교수의 주장에 반박했다.

최 교수는 언뜻 보면 문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하 교수의 비판은 꽤 설득력이 있지만 '다소 공정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 교수가 학계의 주요 연구 아젠다를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가 아니라 오직 해당 학문에 종사하는 전문가 그룹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발휘해 결정해야 한다고 보는 듯 싶다"며 "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대통령이 뇌 과학 연구를 육성하라고 지시한다든지, 혹은 인공지능 연구를 육성하라고 지시하는 것 역시 부적절한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운용해야 할 위치에 있는 대통령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갖지 못하는 종합적·거시적 안목에서 특정 연구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은 절대 부적절하지 않다.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이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 오직 고대사 연구자 자신들만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문가의 오만"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 전경(경남도 제공)2017.6.8./뉴스1© News1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 전경(경남도 제공)2017.6.8./뉴스1© News1

◇ 가야사 홀대 사실…"문 대통령이 영·호남에 던진 화두"

가야사 연구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크게 기뻐했다. 이들은 홀대받던 가야사 연구와 복원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가야'라는 별명이 있는 김태식 홍익대 교수는 "그동안 가야사가 우리 역사에서 역사적 실상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해 온 것은 사실"이라며 "가야는 초기부터 신라 일부였다는 신라의 일방적 주장이 통용돼 역사 교육에서도 비중이 너무 적고 왕경(王京) 정비 사업에서도 배제되는 등 홀대받아 왔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31일 제28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문화재위원으로 선출된 가야사 연구자인 이영식 인제대 교수는 "중고교 역사 교과서만 봐도 가야사 홀대를 알 수 있다"며 "중학교 교과서에 가야사 관련 서술 부분이 한 장 반이고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고작 5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아주 최근의 가야사 연구 지식들이 담겨 있다"며 "가야사를 연구하고 복원함으로써 동서교류도 활발히 하고 지역 차별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30년 넘게 전북에서 가야사를 연구하고 있는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가야사 복원은 대통령이 영·호남에 던진 화두"라며 "가야 시대에는 영·호남이 없었다. 10여 개의 가야국들이 서로 의지하고 화합하며 역사를 만들어 갔다"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에 정면으로 반박했던 연구자들조차 구체적인 언급 내용에 매우 놀라는 눈치다. 하일식 한국고대사학회장도 "대가야 유물들이 경남 김해를 벗어나 넓게 발견된다"며 "대통령의 언급이 매우 구체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영식 교수는 앞으로 가야사 연구와 복원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문화재청 직원들이 난리가 났다고 들었다. 방향성과 관련해 경계해야 할 것은 돈이 나온다고 하니 가야문화권에 있는 시군이 예산쟁탈전으로 들어가면 곤란하다"며 "연구, 교육전파, 복원을 총괄해나갈 중심체를 먼저 만들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겸 박물관장이  지난2일 오후 전북 전주시 한 찻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News1 DB
곽장근 군산대 교수 겸 박물관장이 지난2일 오후 전북 전주시 한 찻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News1 DB


◇ 가야 고분군 202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신청

가야와 관련해 여러 지자체들이 대통령의 발언에 활발하게 반응하는 가운데 김해시는 가야 관련 지자체 중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김해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김경수(김해을)·민홍철(김해갑) 의원의 영향이 작용했다. 이들 의원은 이영식 인제대 교수의 조언 등을 받아들여 지난 총선 때 가야사 복원을 김해 지역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 의원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가야가 불분명한 '잊힌 역사'로 남아 소외되고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대통령의 지시는 김해뿐만 아니라 가야권역 지자체 전부에 내린 축복과도 같다"고 했다.

허 시장은 가야사 복원 사업을 철저한 계획에 따라 중장기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야사 복원 사업을 단시간 내에 성과를 보기 위해 성급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며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철저히 계획을 수립해서 천천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해시는 이를 위해 Δ가야역사문화도시 지정 Δ가야사 2단계 조성사업 조속 마무리 Δ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Δ가야권 유물 유적 복원(왕궁터 확대 등) Δ가야테마 여행상품을 영호남까지 확대 등 5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김해 외에 다른 지자체들도 '가야사 복원 사업'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에 가야 명칭을 가진 산이 총 3개 있다. 경남 고령 가야산, 전남 순천 가야산과 충북 예산의 가야산 등이다. 이를 근거로 지난 5일 충남도의회에선 김용필 의원이 도정질의에서 충북 예산지역도 '가야사 복원사업'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명치대 오스카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진 정책시에 예산 가야 지역에 살고 있던 가야의 후손인'고마족속'이 진번군에 의해서 김해 가야 지역으로 후퇴한 기록이 있다. 가야 문화의 발생지인 예산 덕산지역도 이번'가야사 복원사업'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김해시를 비롯해 경남·경북도와 경남 함안군, 경북 고령군 등 5개 자치단체는 지난 2월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을 발족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341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515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79호) 등 3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올리기 위해서다. 추진단은 내년까지 이 고분군에 대한 등재신청 준비를 마친 후 문화재청을 거쳐 202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릴 계획이다.

허성곤 김해시장(가운데)이 7일 오전 10시30분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과 관련해 시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해시 제공)2017.6.7./뉴스1 © News1
허성곤 김해시장(가운데)이 7일 오전 10시30분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과 관련해 시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해시 제공)2017.6.7./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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