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110910001

[심층 팩트체크]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야당의 ‘불가론 3대 근거’→모두 사실 아님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입력 : 2017.06.11 09:10:00 수정 : 2017.06.11 16:01:32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7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청문위원들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 후보자 왼편에 펼쳐진 작은 책자는 대한민국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이다. / 권호욱 선임기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7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청문위원들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 후보자 왼편에 펼쳐진 작은 책자는 대한민국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이다. / 권호욱 선임기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지난 7~8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열렸다. 인사청문특위는 국회의장에게 제출할 경과보고서를 지난 9일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무산됐다. 야당은 김 후보자에게 크게 세 가지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인사청문특위가 청문종료 3일 이내인 11일까지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정세균 국회의장은 김이수 후보자 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 단계에서 과반수 합의가 되지 않으면 국회 동의도 불투명하다. 야당의 3대 불가론이 팩트에 부합하는지 사실(史實)과 대한민국헌법에 바탕해 확인한다. 

첫째. 국회 몫 재판관이 헌재소장이 되면 삼권분립을 훼손한다 : 사실 아님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은 지난 7일 청문회에서 “국회 몫을 대통령이 헌재소장으로 지명하는 최초의 사례다. 재판관을 대통령 3명, 대법원장 3명, 국회 3명 뽑는 삼권분립 헌법가치를 훼손한다. 대통령 4명, 국회 2명, 대법원장 3명이 되면서 강제로 균형추가 어그러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요약하면 대통령 몫 재판관 가운데 헌재소장을 뽑아야한다는 주장이다. 

사실인지 확인하기 이해 먼저 대한민국헌법을 본다. 헌법재판관은 9명이며 대통령이 임명한다. 다만 3명은 국회가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며, 3명은 대통령이 내정한다. 헌재소장은 재판관 9명 가운데 뽑는다. 구체적인 근거는 헌법 111조4항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이다. 

헌법이 이런데도 오신환 의원은 왜 헌재소장을 ‘재판관’이 아니라 ‘대통령 몫 재판관’ 가운데 시켜야한다고 착각했을까. 과거 5차례의 전례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저지른 때문이다. 1998년 헌법재판소 개소 이래 조규광, 김용준, 윤영철, 이강국, 박한철 전 헌재소장까지 모두 대통령 몫 재판관 겸 소장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입맛에 딱 맞는 재판관을 소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자기 손으로 직접 내정하고 임명한 재판관을 소장을 시켰다. 국회 몫이나 대법원장 몫 재판관에게 소장직을 부여한 대통령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 몫 재판관이 국회나 대법원장 몫 재판관 보다 우월한 인상을 주어왔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 몫 김이수 재판관이 헌재소장 후보가 되면서 국회 몫 재판관이 처음으로 소장을 맡게 됐다. 그런데 오신환 의원은 이를 뒤집어 대통령 몫이 4명, 국회 몫이 2명이 됐다는 독특한 주장을 했다. 청문회 이후 이런 주장이 사실처럼 굳어져 야당이 보고서 제출에 반대하는 논거로 쓰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김이수 후보자 자신의 잘못도 크다. 그는 이런 연원과 배경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제대로 반박하지 않았다. 김이수 후보자는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그런 문제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대답을 하니, 오신환 의원이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없지만 헌법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해석개헌’ 수준의 발언까지 했다.

1999년 9월15일 윤관 대법원장의 퇴임을 1주일 앞두고 역대 대법원장들 고별만찬을 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 16층 무궁화홀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덕주, 김용철, 민복기 전 대법원장, 윤 당시 대법원장, 유태흥, 이일규 전 대법원장. 이 전 대법원장은 ‘통영 대꼬챙이’로 불리던 유명한 소수의견 대법관이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9년 9월15일 윤관 대법원장의 퇴임을 1주일 앞두고 역대 대법원장들 고별만찬을 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 16층 무궁화홀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덕주, 김용철, 민복기 전 대법원장, 윤 당시 대법원장, 유태흥, 이일규 전 대법원장. 이 전 대법원장은 ‘통영 대꼬챙이’로 불리던 유명한 소수의견 대법관이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둘째. 1년 3개월 임기의 헌재소장 임명은 파행이다 : 사실 아님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7일 청문회에서 “소장에 임명이 되면 임기는 불과 15개월이다. 다른 재판관들이 나도 15개월 뒤에는 소장이 될 수 있다면서 코드를 맞출 수 있다. 1년 3개월짜리 기관장이 무얼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짧은 임기의 소장을 임명하면서 재판관들을 줄 세우는 것이며, 더구나 짧은 임기의 소장은 제대로 일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민국헌법이 정한 임기들을 보면 국회의원 4년, 대통령 5년, 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 6년이다. 입법, 행정, 사법기관 공직자의 임기를 어긋나게 만들어 서로를 견제하도록 했다. 여기에서 사법기관만 보면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임기가 각각 6년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헌재에서는 재판관의 임기 6년만 있고 헌재소장의 임기는 따로 없다. 

이유는 헌재소장의 헌법상 지위도 재판관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상하 지위인 것과 다르다. 대법원 판결문에는 ‘대법원장 양승태’ ‘대법관 김소영’이라고 달리 적는다. 하지만 헌재 결정문에는 ‘재판관 박한철’ ‘재판관 이정미’로 동등하다. 헌재소장은 9명 재판관 가운데 1명이 맡는 역할이지, 지위가 아니라서다. 

이 때문에 이강국 전 헌재소장도 “헌재소장은 재판관 가운데 1명이므로 재판관들이 2년씩 돌아가면서 맡는 게 적절하다. 여기에 더해 개헌이 된다면 소장을 대통령이 임명하지 말고 재판관들끼리 뽑는 호선 방식이 좋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현재 대법원조차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등 권한을 없애 대법원을 동등한 합의체로 만들라는 요구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헌법 정신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헌재소장이 되려는 재판관들이 코드를 맞출 수 있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은 퇴임 직전 기자에게 “가능하면 6년을 새로 하는 것이 좋다. 줄 세우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복수의 현직 재판관들은 “그런 논리라면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이상 모든 법조인을 줄 세운다”고 기자와 만나 반박했다. 

헌재소장 임기논란은 2006년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내정에서 시작됐다. 대법원장 몫이던 전효숙 재판관의 새로운 6년 임기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재판관에서 사직토록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민정수석의 전화에 따른 사표라고 시비해 낙마시켰다. 이와 관련, 당시 청와대가 대법원에 임기 문제를 상의한 사실을 최근 취재에서 확인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사표를 받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대법원장 몫의 재판관을 새로 지명하려는 욕심이 있었다.

지난달 19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내정을 발표하기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발표는 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첫 사법기관 인사였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달 19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내정을 발표하기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발표는 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첫 사법기관 인사였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셋째. 소수의견으로 유명한 외국의 대법관들은 대법원장이 되지 않았다 : 사실 아님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산사건 반대의견 등 김이수 후보자의 소수의견도 부적격하다는 이유다. 공격의 타당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전제사실이 진실이 아니다. 이들은 허위의 사실에 바탕해 소수의견을 많이 내는 재판관은 헌재소장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7일 청문회에서 “김이수 후보자는 통합진보당 강령은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굉장히 위험한 인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수의견도 강령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결정문을 보면 “주로 정당의 공식적인 강령이나 당헌의 내용을 통해 드러나겠지만 (중략) 만약 정당의 진정한 목적이 숨겨진 상태라면 이 경우에는 강령 이외의 자료를 통해 진정한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다수의견은 숨겨진 목적을 찾아냈다며 해산시킨 것이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7일 청문회에서 “올리버 홈즈라는 소수의견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법관이 있다. 어느 누구도 홈즈 같은 사람은 대법원장감으로 생각지 않았다. 아마 기회를 줬어도 안 한다고 거절했을 것”이라고 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홈즈는 매사추세츠주 대법관을 거쳐 주대법원장이 됐다. 연방대법원 대법관이던 1930년에도 89세 고령에 연방대법원장 대행을 맡았다.

소수의견이 많은 대법관 가운데 대법원장이 드문 것은 그야말로 소수의견이라서 산술적으로 경우가 적은 것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인민혁명당 사건의 유일한 소수의견 집필자 이일규 대법관이 노태우 정부 대법원장이었다. ‘대쪽’으로 불린 이회창 대법관은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이다가 감사원장, 국무총리, 한나라당 총재를 했다. 이강국, 박한철 헌재소장도 소수의견이 많고,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사법권력이 대이동한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에 대법원장 1명, 대법관 12명을 임명하고,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3명을 모두 임명한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1988년 개헌 이후 대통령들은 대법원장 1명과 대법원 11~13명,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3명을 골라 임명해왔다.

야당이 이런 보도를 등에 지고 보수편향 사법지형이 중립지대로 이동하는 것을 막으려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통진당 사건의 소수의견 재판관 조차 불온한 사람으로 만들어 유력한 차기 대법관 후보인 김선수 변호사를 견제하려는 계산이란 것이다. 개혁성향의 김선수 변호사는 통진당 사건의 피청구인 대리인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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