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이 인정한 김근태 ‘진정성의 힘’
[기자칼럼] 민주화운동 상징, 추모열기 확산…“2012년을 점령하라” 재조명
류정민 기자 | dongack@mediatoday.co.kr  입력 : 2011-12-30  10:34:03   노출 : 2011.12.30  10:57:59

“정부와 여당의 기류가 '대화에 의한 해결'로 가닥을 잡은 것은 전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 두 사람 덕분이다. 아니, 열흘이 지난 지금도, '광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장내'에서는 김근태 의장이 각각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편집국장을 지냈던 성한용 선임기자는 2006년 10월21일자 지면에 <김근태가 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북한 핵실험으로 ‘대북 강경론’이 득세할 때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호소했던 인물,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한 내용이다.

정치인 김근태의 매력은 ‘진정성’이다. 말을 잘하고, 좋은 정책을 내놓고, 탄탄한 조직을 관리하는 정치인들은 많아도 ‘진정성’을 인정받는 정치인은 참 드물다. 정치인 가운데 김근태는 ‘진정성의 힘’으로 세상을 살았던 인물이다.

한겨레 2006년 10월 21일자 19면.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이끌다 모진 고문을 당했다. 평생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평범한 이들은 몸이 많이 아프면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면 되지만, 김근태에게 수술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전기고문을 기다리던 악몽 같은 그 시절의 생각이 떠올려진다는 그 느낌을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정치인 김근태는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고 2011년 12월 30일 새벽 별세하기 전까지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한반도재단 이사장으로 있었다.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2012년 4월 총선 이후 그는 ‘국회의장’ 0순위 후보로 이름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여야 정치인 두루 그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다. 아니 국민 모두는 그에게 빚을 졌는지 모른다. 김근태가 없었다면 그가 독재정권과 맞서 생명을 건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군사정권이 대물림되면서 정부 비판자들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세상이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세상에 민주화라는 ‘희망’의 씨앗을 전한 인물이 바로 김근태 이사장이다. 김근태 이사장은 언론인들이 인정하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이 언론인들에게 인정받기론 선거에 당선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다.

정치인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는 언론인들의 시선은 까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보성향 언론사 언론인이건 보수성향 언론사 언론인이건 김근태 이사장의 ‘진정성’은 인정했다. 2001년 말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대통령감이 누구인지 물어봤을 때 1등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고, 2등은 김근태 이사장이었다.

언론자유 신장에 기여할 후보는 누구인지를 묻자 김근태 이사장이 1등이었다. 언론인들의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김근태 이사장은 화려한 말솜씨나 그럴 듯한 언론플레이를 잘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일반인들에게 김근태 이사장은 매력적인 인물로 비치지 않았을지 모르나 그는 기자들이 인정한 인물이다.

2011년 12월 30일 새벽 별세한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그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온오프라인에서 추모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은 12월 30일 올해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김근태 이사장을 추모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 참석자들은 검은색 정장에 검은 넥타이 등을 착용하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의 누나이기도 한 유시춘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참석자를 대표해 조사를 통해 “국가 폭력과 고문이 없는 하늘에서 평안하시길 바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원혜영 민주통합당 대표는 “김근태 상임고문이 혹독한 고문으로 몸에 몹쓸 병마가 심어졌지만 이 땅에는 민주주의가 싹텄다”면서 김근태 상임고문의 뜻을 받들어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호선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김근태 이사장님은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셨고 한국정치에 새바람을 일으킨 정치개혁의 선구자셨다”면서 “다시 한 번 김 이사장님의 영전에 머리 숙이며 그분의 뜻처럼 한반도에 평화와 복지가 넘쳐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문부식 진보신당 대변인은 “오래 전 작고한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희망의 근거'를 마련하려 일생을 기울였던 그 노고를, 드물게 지녔던 인간의 품격을, 이 차가운 겨울의 쓸쓸함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이사장을 병마와 싸우며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지켜야 하는 그 순간까지 한국사회를 걱정했던 인물이다. 김근태 이사장이 10월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2012년을 점령하라>는 칼럼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김근태 이사장은 “흔한 말로 정치권의 위기, 야당의 위기, 민주당의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비난은 비난일 뿐 비난이 승리는 아니다”라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 무관심과 정치 혐오는 기득권과 반칙의 세상을 공고히 해주는 자양분이다. 국민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높일 때, 기득권 정치의 카르텔은 깨질 수 있다. 김근태 이사장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에 맞서서 이 땅에 민주주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우리는 그 열매를 공유하고 있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끼는 그 열매가 김근태와 같은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다.

'고문기술자'는 사람들을 설교하겠다고 다니고, 민주화의 큰 별은 세상을 떠난 너무도 시린 겨울이지만 김근태 이사장이 살아남은 이들에게 바라는 점은 좌절은 아닐 것이다. 김근태 이사장은 <2012년을 점령하라>는 칼럼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했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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