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0809164739383

'회의'인가 '동문회'인가, 장군 모이면 십중팔구 '육사'
김용준 입력 2017.08.09. 16:47 



"결국 이렇게 됐네..."

국방부와 전·후방 각지의 육군 중·고위급 간부들이 국방부 출입기자인 저에게 요즘 많이 하는 말입니다.

이번 군 대장급 인사 결과를 두고 한 말인데요. 국군이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모두 육군이 없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군 대장급 장성 보직 임명’
‘문재인 대통령, 군 대장급 장성 보직 임명’

여기에는 '육군' 위주의 군 문화를 개혁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군 사령관' 인사입니다.

육군에는 강원권을 담당하는 1군사령관과 경기권을 담당하는 3군사령관, 후방지역을 담당하는 2작전사령관 등 세 자리의 대장급 사령관 자리가 있는데요. 그동안 사령관 자리는 보통 '육사 출신'이 독식하거나 적어도 두 자리는 차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1군사령관은 3사관학교 출신, 2작전사령관은 학군(ROTC) 출신이었고, 3군사령관만 육사 출신인 김운용 장군이 임명됐습니다. 당장 4성 장군 품귀였던 3사관학교 총동문회와 ROTC중앙회는 축제 분위기지요.

육군 위주뿐 아니라 육사 독식의 군 구조도 타파하겠다는 현 정부의 안배로 보입니다.

그런데 유일한 육사 출신인 김운용 대장에 대한 인사도 짚어볼 필요가 있는데요.

김 대장은 대령 때부터 중장까지 한번에 진급한 적이 없습니다. 김 대장과 같은 육사 40기 중에서 1등 자리는 늘 '구홍모' 수도방위사령관 차지였는데요.

구홍모 사령관은 육군 7사단장과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을 역임했고 동기생 중에 가장 먼저 별 셋을 달며 수방사령관까지 승승장구했습니다.

구 사령관은 군내에서는 현역 장군 중 가장 '에이스'라는 평과 함께 전 정부의 작전 기조에 가장 정통했다는 평을 공히 받던 인물이었지만, 김관진-한민구로 이어지는 시대를 마감하면서 구 사령관의 진급도 함께 마감하게 됐습니다.

“나…떨고 있냐?”

역대급 시청률 65%. 집에 TV 없는 사람 빼고 다 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였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명대사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육군 중심·육사 중심 개혁이라는 이 같은 움직임 때문에, 오는 9월 발표 예정인 육군 중장급 인사와, 이어지는 장군단 인사도 육사 출신 등용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38명 중 34명이 ‘육사’”…‘회의’인가 ‘동문회’인가

육군본부는 중요한 내용이 있을 때마다 육군참모총장 혹은 참모차장이 주관하는 장군급 전체회의를 합니다. 육군본부에 소속된 주요 실장급 이상인 장군들이 모이는 자린데요.

이 자리에 모이는 장군은 모두 38명. 그런데 이 중에서 34명이 '육사' 출신입니다. 3사나 학군 등 소위 '일반 출신' 혹은 '비육사 출신'으로 불리는 장군은 단 네 명이라는거죠.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이 회의를 가만히 보면, 이게 회의인지 의견수렴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아요. 회의라면 여러 가지 의견들이 모아지고 때로는 격론이 벌어지기도 해야 좋은 안이 나올텐데,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한쪽으로 쏠리고 생각이 다 똑같아지거든요. 비육사 출신이 생각이 다른 한마디를 거들면 '튀는 행동'으로 생각하거나, '출신이 달라서 그렇다'는 인식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합동참모본부의 경우에는 육군과 해군, 공군 등이 올 수 있는 비율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육군본부는 그렇지가 않죠.

그래서 육본에서 주요 직위를 차지한 육사 출신들이 계속해서 육사 출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되는 등 일련의 대물림(?)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고 군 관계자는 설명합니다.

〈졸업식노래 중 3절〉
〈졸업식노래 중 3절〉

학교에서 부르는 '졸업식 노래'입니다. 이 중 3절 가사가 의미심장한데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중략)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육사 출신의 고위 장교는 "육군본부도 일반 출신(비육사)들이 몇 퍼센트는 들어올 수 있도록 정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리에 오려고 해도 올 수도 없고 정보도 없어요. 왜냐하면 원래 있던 육사 선배가 육사 후배를 부르고 그게 계속 반복되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합니다.

“경력직만 오세요~” VS “기회를 줘야 경력을 쌓지”



"근무 경력이 없네?"

비육사 출신의 한 장교는 저에게 이런 제보를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육군본부나 국방부에 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십 년 가까이 전방에서만 근무했는데, 좀 더 군의 정책적인 측면을 다뤄보고 싶어서 육군본부에 몇 번을 도전해 보고 알아봐도 자리가 안나요. 안 나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알아보면 '육본 근무 경험 있냐'고 묻는데, 기회를 줘야 경험을 쌓죠. 남의 얘기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육군본부는 군 간부로 오래 근무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좀더 큰 범주의 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할 수 있고, 이런 경험들이 모여야 더 큰 기관인 국방부나 합참 등에 근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기 때문에 이곳은 한 번 온 사람은 계속해서 오고, 심지어는 십 몇 년씩 육군본부에만 근무하면서 진급하는 장교들도 있습니다.

군 고위직으로 갈수록 육사판인 이유, 바로 이런 부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군내에서는 육군본부 근무를 해본 비육사 출신 고위 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번 육군참모총장 인사도 비육사 출신을 발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육사 출신=적폐?

익명을 요구한 육본에서 수년째 근무한 육사 출신 고위 간부는 이런 이야길 전합니다.

"적폐냐 비적폐냐라는 관점보다는 '순혈주의'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육사 후배고, 그 사람과 또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이런 현실이 계속되다 보면 생각이 너무 한쪽으로 쏠리게 됩니다. 그러면 생각이 다 똑같아지는 거죠. 나와 다른 건 틀린 게 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그것이 적폐고 적폐세력이라고 불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사람'을 쓰고 싶어하는 군 고위층의 인식이 유능한 인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적폐(積弊)의 사전적 정의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 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군 대장급 인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해군 출신 장관에 공군 출신 합참의장. 육사 출신 육군총장이지만, 예하 사령관은 각기 다른 출신.

이번 인사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의견 개진과 소통과정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메기효과'

메기 한 마리를 미꾸라지가 있는 어항에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하느라 생기를 얻게 되는데요. 미꾸라지를 장거리 운송할 때는 미꾸라기가 수족관이나 어항에서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활용한다고 합니다.

이를 착안해 기업에서는 메기로 미꾸라지를 생존시키듯 조직의 뿌리 깊은 골을 타파할 수 있는 제도나 인사를 투입해 조직의 정체를 극복하고 생산성을 높히곤 하는데요.

건군 70년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 군이 발전하기 위해 이처럼 메기효과와 같은 조치가 뒤따라야겠습니다.

김용준기자 (okok@kbs.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