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믿어주는 국민이 없다”(문창재)
2011-12-30 오후 2:40:32 게재

"한나라당이나 청와대가 관련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을 상식적으로 믿어주는 국민이 별로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끄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첫 회의가 열린 27일 황영철 대변인이 '디도스 공격사건'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불신을 의식한 말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비대위 산하에 검찰수사국민검증위원회를 두어 철저한 수사를 압박하기로 했다고 한다. "검찰 수사를 보고, 의혹이 있으면 '국민적 시각'에서 검증을 하고 검찰에 해명을 요구하겠다"는 설명도 따랐다. 

다음 날 각 신문에는 한나라당이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기로 했으며, 최구식 의원에게 자진탈당을 권유하기로 했다는 비대위 결의 내용이 톱기사로 보도되었다. 한나라당 쇄신을 위한 비상대책을 세우겠다는 특별기구 첫 회의에서 왜 자신들의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결의가 나왔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같은 접시에 담겨 나온 '최구식 의원 탈당권유 결의'라는 메뉴는 또 무엇인가.

최구식 의원 한 사람을 몸통으로 믿을 사람 아무도 없어

뜬금없는 불체포 특권 포기 결의는 당내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권리를 놓치기도 싫지만,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이 나왔느냐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황 대변인은 특권 포기를 설명하면서 "법 개정은 필요 없고,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헌법과 국회법이 보장한 권리를 포기하는 데 법 개정 없이 가능할까.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비대위가 왜 그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이런 의문들은 최구식 의원 탈당권유 결정과 맞물려 여러 가지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최 의원 한 사람에게 책임을 씌워 어물쩍 난국을 넘겨보자는 계략이 아닌가, 이런 구체적인 추측까지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야당의 비난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런 의구심을 증명하듯, 검찰의 최 의원 소환 방침이 전해졌다. 다음 날은 실제로 소환이 이루어졌다. 최 의원은 탈당 권유에 대해서 당 결정에 따르겠다고 순순히 협조 의사를 밝혔다. 

29일 새벽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그는 "비서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홈페이지 공격을 지시한 일이 있느냐" "범행을 보고받은 일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아니다, 없다, 모른다"는 말로 일관했다. 그렇다면 당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결백을 주장하면서 당을 떠나라는 요구에 순응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 대목에 검찰의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28일 소환조사 때 최 의원의 신분은 참고인이라고 했다. 다음 조사 때는 피의자로 바뀔까? 그렇게 해서 그 한 사람을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끝내고 싶은 것이 검찰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 그것만으로는 넘어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검찰과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알아야 한다. 최 의원 한 사람을 몸통으로 믿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3·15 부정선거 이래 최대의 선거부정 사건으로 인식

의혹의 핵심은 사건 전날 밤 국회의장 비서와 청와대 행정관 두 사람의 범행 관련 인물들과의 술자리, 그리고 1억원의 돈 거래다. 

경찰의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보강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은 그 돈이 범행대가와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돈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어떤 명목으로 건네졌는지 밝히는 게 순리다. 국회의장과 청와대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는 수사를 믿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청와대가 이 사건 수사 초기부터 깊숙이 관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청와대 행정관이 술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돈이 오갔다는 사실 등을 밝히지 말도록 담당 수석비서관이 경찰청장에게 압력을 넣은 사실까지 보도되었지만 수사는 계속 답보 중이다.

이 사건은 3·15 부정선거 이래 최대의 선거부정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치에 무관심하던 대학생들까지 들고 일어선 일이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한나라당이 그것을 안다면 검찰수사 결과를 기다릴 일이 아니라,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범행사실 자체보다 은폐 축소와 거짓말을 국민이 더 참지 못 한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 여러 사례에서 보았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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