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8636

손정은 MBC 아나운서 “5년 동안 스스로를 부정했다”
[인터뷰] MBC 아나운서로 살 수 없었던 손정은과 허일후의 5년, 그들이 다시 일어난 이유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08월 29일 화요일

MBC의 한 아나운서가 방송 출연이 더 이상 어렵다는 걸 알게 된 뒤 머리를 붉게 물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2012년 파업에 참여했다가 ‘회군’한 선배의 괴롭힘도 있었다고 했다. 파업 참여자에 대한 인사 배제와 차별이 당연시됐던 곳이 아나운서국이었다. 그 아나운서는 결국 MBC를 퇴사했다.

아나운서가 스스로 ‘더 이상 아나운서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자괴감과 모욕. 그것은 사측이 MBC 아나운서들에게 가했던 무형의 폭력이자 지난 5년 간 ‘비정상 MBC’를 추동한 기제였다. 폭력을 내면화한 덕분에 가해자는 죄책감을 덜 수 있었고 피해자들은 무뎌졌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차별과 폭력은 그렇게 유지됐다.  

“가장 치욕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난 25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만난 손정은·허일후 MBC 아나운서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예기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 “‘더 이상 아나운서라는 말은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MBC 윗선으로부터) 들었을 때 사실 치욕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너무 괴로우니까 스스로 머릿속을 바꾸고 산 것 같다. ‘난 아나운서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계속 부정하고 살았다.”(손정은), “역치가 높아져 웬만한 상황에선 치욕스럽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인격적 모욕은 일상화돼 있다. 그런 것에 일일이 상처받고 스트레스 받으면 돌아버린다.”(허일후)

▲ 손정은(왼쪽)·허일후 MBC 아나운서가 지난 25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손정은(왼쪽)·허일후 MBC 아나운서가 지난 25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파업 참여 아나운서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 폭력의 이유는 하나였다. MBC에서 나가라는 것. 이 때문에 지난 5년 아나운서국은 ‘밀어내는 자’와 ‘버티는 자’의 전장이었다. 회사가 승리를 거두는 듯했다. 파업 이후 아나운서 12명이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두 아나운서를 포함한 ‘버티는 자’들은 차곡차곡 기록해둔 폭력과 차별의 세월을 폭로하며 ‘진실’을 무기로 최후의 저항에 나섰다. 시민들과 시청자들이 이들 싸움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였다.
두 아나운서 인터뷰는 여느 인터뷰보다 어려웠다. 이들은 인터뷰 내내 쉽게 잦아들지 않는 격정을 눈물과 한숨으로 달래야 했고 절망을 말하면서도 한줄기 희망을 찾고자 했다. 촛불시민이 선사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지난 22일 MBC 아나운서들의 출연‧업무 중단 기자회견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 김정환씨는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MBC 아나운서들의 잔혹사 영상이 조회수 100만을 돌파했다”며 “인터넷 세상 구석구석까지 전파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손정은(이하 손) : “페이스북 친구들이 셀 수 없이 많은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장문의 글을 보내시며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돕고 싶은데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문의도 있었다. MBC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들이 MBC를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다. 김장겸 MBC 사장 퇴진 온라인 서명을 받아야 하는지도 생각해봤다.” 

허일후(이하 허) : “기자회견 이후 수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다.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동창들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정말 많이 받았다. 사측은 ‘노조가 정치권과 결탁해 합법적으로 선임된 사장을 몰아내려고 한다’는 논리로 구성원들을 공격하고 있다. 기자회견 반응을 보면 일부 정치권과 노조만이 퇴진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수많은 시민들과 시청자들이 김장겸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만의 요구가 아니었다. 공영방송 시청자들과 국민의 요구다. 기자회견을 통해 싸움의 정당성과 명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손 : “MBC 아나운서 기자회견 이후 신동호 아나운서국장 전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 청취자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그러자 게시판을 아예 닫아버렸다. 현재 MBC가 얼마나 불통이고 권위주의적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허 : “지금 손정은씨 전투력은 하늘을 찌를 기세다.(웃음)” 
손 : “나는 신동호 국장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지난 22일 손 아나운서는 기자회견장에서 신 국장을 포함한 MBC 간부들을 비판했다. 마주친 적도 없었는데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 아나운서를 배제했다고 알려진 한 고위직 임원, 손 아나운서 방송이라면 “왜 그것을 손정은이 해야 하느냐”며 무조건 막았던 신 국장 등을 비판했다. 이날 손 아나운서는 스스로를 “TV에서 목소리조차 나올 수 없는 아나운서”라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3월 손 아나운서는 사회공헌실 발령을 받고 아나운서국을 떠났다. 2006년 입사한 그는 PD수첩을 진행한 최초의 아나운서였으며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던 간판 아나운서였다.

▲ 손정은 MBC 아나운서가 지난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2012년 파업 이후의 시간을 떠올리며 울먹이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TV에서 목소리조차 나올 수 없는 아나운서”라고 말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손정은 MBC 아나운서가 지난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2012년 파업 이후의 시간을 떠올리며 울먹이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TV에서 목소리조차 나올 수 없는 아나운서”라고 말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손 아나운서는 기자회견에서 스스로를 “TV에서 목소리조차 나올 수 없는 아나운서”라고 말했다. 
손 :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같은 것도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2015년 이후엔 라디오뉴스만 했다. 고위직에 인사를 안 했다는 이유로 15분짜리 고정 라디오 뉴스에서도 하차했다. 사회공헌실로 가기 직전엔 아나운서들이 라디오 뉴스를 하는 것조차 보기 싫었는지 보도국에서 라디오뉴스 캐스터를 따로 뽑았다. 지금은 그 친구들이 한다.”

-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뉴스에서 배제됐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손 : “한 고위직 임원이 임원회의에서 ‘손정은이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고 그로 인해 라디오 뉴스에서 하차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회견 이후 언론은 ‘인사’에 중점을 두고 보도하고 있는데 그분을 마주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방송에서 특정 아나운서를 배제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고 그로 인해 실제 하차가 이뤄지는 게 현재 MBC다.” 

- 지난 5년 동안 손 아나운서는 경력 단절을 겪었다. ‘PD수첩’, ‘뉴스데스크’ 등 MBC에서 정말 잘 나갔던 아나운서 가운데 하나였다. 

허 : “손정은 아나운서와 문지애 아나운서는 입사와 동시에 주요 프로그램을 맡으며 역량을 인정받던 친구들이었다.” 

손 : “그 부분을 건드리면…. 말이 쉽게 잘 안 나온다.(이 대목에서 손 아나운서는 눈물을 보였다) 기자회견 때도 울고 싶지 않았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더 힘든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만 11년차인데 5년 동안 방송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5년이 빨리 지나간 것 같지만 한 달이 1년 같았다.” 

- 많은 동료들이 MBC 떠났고 방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남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했다.  

손 : “우리 조직은 정말 아름다웠다. 입사 후 5~6년 동안 방송하면서 ‘대한민국에 이런 조직이 있을까’ 생각할 만큼 좋았다. 1년차일 때 PD수첩에 들어갔다. 신입 아나운서였는데도 선배들은 내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방송에 반영해주셨다. 입조차 떼기 어려울 정도로 내공이 없었던 내 의견도 반영하는 조직이었다. 선배들은 실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인격적으로 너무 훌륭했다. 이 회사가 내 회사라는 자부심이 컸다. 5년 동안 MBC 선·후배들이 타 부서로 쫓겨나고 해고됐지만 그들만 돌아온다면 MBC가 재건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릴 수 없었다. 여러 고초를 겪었지만 언제나 좋은 자리에서 하고 싶은 것만 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일들을 지난 5년 동안 경험했다. 훨씬 더 깊은 이해심과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눈을 가지게 될 거라고 믿었고 실제 그랬던 것 같다. 인생을 길게 봤을 때 5년은 나를 성장시킨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허 : “그 정도면 성인(聖人)이다.(웃음)” 

▲ 허일후 MBC 아나운서는 25일 후배 동료인 오승훈 아나운서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착하고 정의로운 후배는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아나운서국에서 쫓겨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허일후 MBC 아나운서는 25일 후배 동료인 오승훈 아나운서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착하고 정의로운 후배는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아나운서국에서 쫓겨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신동호 국장 악행이 폭로되면서 그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혹시 그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받거나 입장을 전해 들은 것이 있나?
손 : “전혀. 들은 바에 따르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니신다고 한다. 제가 기자회견에서 했던 이야기는 반박할 수 없는 팩트만 추린 거다.” 

허 : “신동호 아나운서에 서운함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 원한은 없다. 우리는 신동호 아나운서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 ‘MBC 아나운서 국장’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손 : “아나운서 국장으로서 후배들을 내치고 공포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방송에서 배제하더라도) 국 안에서 후배들을 따뜻하게 대해줬더라면 이렇게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에겐 잘해주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선 철저히 배제했다. 지난 몇 년 간 아나운서국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서로들 눈치만 봤다. 누가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일까.” 

허 : “한 조직이 처참히 무너졌다. 완전히 박살났다. 그렇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조직의 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국장이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 MBC 프로그램 제작진이 아나운서국에 진행자 섭외 요청을 하면 위에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모 예능국 선배에게 ‘우리 후배들 많이 써주세요’라고 농처럼 이야기를 던진 적이 있었는데 ’아나운서국에 연락하면 까이는 데 우린 너네 방 안 쓴다‘는 말을 들었다. 아나운서국이 스스로 외연을 좁혔다. 임원진은 ‘아나운서국에는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라는 반응이 나온다. 일을 많이 할 수 있고 제작진은 원하는데 윗선에서 가로막으면서 조직 성장이 지체됐다. 아나운서국을 주도적으로 망가뜨린 인사는 누구인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이 다 내보내놓고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국장으로서 책임을 지셔야 하는 이유다.”  

평소 웃음기 가득한 얼굴인 허일후 아나운서도 내상에 신음한 지 오래다. 허 아나운서는 PD저널과 인터뷰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는데 (위에서) 까이기를 50번까지 세고 말았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선 “정말 사소한 것까지 포함하면 까인 횟수는 100번이 넘는다”며 “기록조차 할 수 없이 배제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제 막 ‘불만제로 MC’라는 날개를 달았던 그는 녹화 서너 번을 끝으로 2012년 파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TV제작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역할로 출연한 적은 없었다. 대신 파업 직후 발령받은 미래전략실에서 “하루하루 지옥처럼 끔찍하게” 버텼을 뿐이다. 그곳은 정수기조차 없었던 공간이었다. 그는 김나진 아나운서와 함께 뿔뿔이 흩어진 아나운서들을 연결해주는 ‘가교’였다.  

- 지난 5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허 : “후배 오승훈 아나운서가 부당 전보됐을 때다. 승훈이는 지난 2015년 권성민 MBC 예능 PD가 웹툰을 그렸다는 이유로 해고됐을 때(권 PD는 지난해 무효확정 판결을 통해 복직했다) ‘가혹하니 제발 재고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정중한 어조로 회사 게시판에 올렸다가 좌천됐다. 방송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늘 수 있지만 사람 그릇은 변하지 않는다. 너무 정의롭고 착한 친구였다. 발령을 받고도 승훈이는 내색하지 않았다. ‘형님 괜찮아요’라며 바보처럼 계속 웃고 다녔다. 남자 아나운서들이 모여서 술을 사준 적이 있는데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라. 안 그러면 화병으로 죽어’라고 그에게 화를 냈다. 그랬더니 갑자기 안기며 ‘형님, 저 가기 싫어요. 형들이랑 떨어지는 거 너무 싫어요’라고 펑펑 울었다.(허 아나운서도 이 이야기를 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 정말 힘들었다.“ 

▲ 손정은 아나운서를 포함해 MBC 아나운서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MBC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들이 진실을 무기로 저항에 나선 배경이다. 사진=이치열 기자
▲ 손정은 아나운서를 포함해 MBC 아나운서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MBC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들이 진실을 무기로 저항에 나선 배경이다. 사진=이치열 기자

- 파업 참여 인력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견디지 못하고 동료 아나운서 1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곁에서 어떻게 바라봤나?
허 : “지금 당장 물에 빠져 숨을 쉴 수 없다는 친구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면 건져 줄게’라고 말하는 건 어떤 위로도 될 수 없다. ‘조금만 더 버텨주면 우리가 끌어내줄게’라고 말할 수 없었다.” 

손 : “동료가 나갈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재건될 MBC를 꿈꿨는데 동료들이 다 사라지면 우리 아나운서국은 어떻게 재건하나? 방송 정상화가 된다고 해도 아나운서 절반이 나간 상황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뼈아프다.” 

허 : “서울 어렵게 수복했는데 정작 시민들이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다랄까. 내가 법원에서 승소해 미래전략실에서 9개월 만에 복귀한다고 발표한 날에 (문)지애가 사직했다. 축하파티를 하려고 모였다가 모두 무너졌다. 정은이가 사회공헌실 발령받은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청첩장을 주려고 김범도 선배를 찾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나와 선배는 무너졌다. 범도 선배는 내게 ‘아무리 힘들고 굴욕적이어도 위에 대들지 말고 참아라. 너랑 (서)인이랑 나진이까지 다른 부서로 쫓겨나면 선배들이 돌아와도 이 방(아나운서국)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참고 견뎌라’고 했다. 우리 몫은 참고 견디는 것이었다. 나라고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국부장들과 싸우지 않고 싶었겠나. 게시판에 왜 비판의 글 안 남기고 싶었겠나. 개인적으로 유배 생활은 고통스럽지만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몇 안 남은 이들까지 타 부서 발령 받으면 아나운서국 복원은 요원해진다. 선배의 부탁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손 : “허일후 아나운서가 방에 있는 아나운서들과 밖에 있는 아나운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훌륭하게 해줬다. 허 아나운서 덕택에 우리가 소통하고 서로 간 정보도 나눌 수 있었다.” 

허 : “김나진 아나운서와 요즘 그런 말을 많이 나눈다. ‘온갖 수모를 겪었지만 방에 남아있길 잘했다’고. 우리 5년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아나운서 후배들이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위해 방송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 시민들로부터 위로와 큰 힘을 얻었다면 후배들로부터는 내가 걸어온 지난 5년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 허일후 MBC 아나운서는 뿔뿔이 흩어진 선·후배들이 다시 뭉치는 날을 위해 지난 5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감내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허일후 MBC 아나운서는 뿔뿔이 흩어진 선·후배들이 다시 뭉치는 날을 위해 지난 5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감내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가장 치욕스러울 때는 언제였나?
손 : “너무 많아서 잠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딱 하나를 꼽지 못하겠다. 사실 (위로부터) ‘아나운서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치욕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속으로 ‘정말 나는 아나운서가 아니니까’라고 생각했다. 너무 괴로우니까 스스로 머릿속을 바꾸는 것 같다. 나 아나운서 아니라고. 방송하고 싶어서 MBC에 입사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 방송을 안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설득했다. 5년 동안 스스로를 부정했다.”  

허 : “역치가 너무 높아졌다. 웬만해선 치욕스럽다고 느끼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5년 동안 매일매일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다. 무뎌진 것이다.” 

- 이 정도면 정신과 치료 등이 필요한 것 같다. 

허 : “미래전략실에 있었을 때 우울증 증상이 있었다. 2012년 각종 진행 섭외가 거부될 땐 치욕스러웠는데 이젠 아무 일이 아닌 게 됐다. 인격적인 모욕은 일상적이었으니까. 일일이 상처받고 스트레스 받으면 돌아버린다. 못 산다. 역치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손 : “땅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알게 됐다. 자존감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았다. 작년부터 가슴이 답답해 병원을 찾으면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범도 선배도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육체 건강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 회사는 왜 그리 가혹했을까? 

허 : “파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들은 ‘MBC 얼굴’이었다. MBC를 상징했다. 이 때문에 아나운서들이 사측에 반대할 경우 회사는 가장 까다로운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아나운서국을 약화시키고 아나운서들을 뿔뿔이 찢어놔야 했던 까닭이다. 그래서 어느 부서보다도 악랄하고 잔인하게 찢고자 했다. MBC 아나운서국 DNA를 개조해야만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실패했다. 우리는 끝내 버텨냈다. 늦었지만 이제 진짜 싸움에 나섰다.” 

- 두 사람 모두 영화 ‘공범자들’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허 : “시민들이 MBC 언론인들에 화를 내시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 열패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MBC 월급만 받아먹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음을 확인하실 수 있다. 내부에서 진짜 열심히 싸웠다. 우리 아나운서 조합원들은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알릴 것이다. 영화는 우리의 역사이자 현장이기 때문이다. MBC 경영진들은 ‘공범자’고 우리는 ‘목격자’였다. 누구보다 당시 MBC 상황에 대해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목격자들이다. 알려야 한다.”

손 : “영화 ‘택시운전사’가 1000만 관객을 넘었는데 그만큼 이 영화를 봐주셔야 한다. 두 영화가 1980년대 언론 상황과 현재 언론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승호 감독은 영화에서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나라가 망해요’라고 한다. 언론 문제는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다. 언론인만의 영화가 아니라 국민 여러분의 영화다.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다.” 

▲ 손정은 MBC 아나운서가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며 웃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손정은 MBC 아나운서가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말미에 웃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허 : “2012년 공정방송 파업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 1·2심에서 우리가 옳았다는 것이 완벽하게 증명됐다. 법원은 ‘공정방송은 언론 노동자의 근로조건’이라고 판결했다. 빨리 대법원에서 판결을 확정해주길 바란다. 최근 사측은 (제작중단·파업 비참여 인력들에게) 돈을 더 주겠다고 유인하는데 유치해서 견딜 수 없다. 우리 노조는 돈 더 받겠다고 파업한 적 없다. 어려운 상황에서 공정한 방송 다시 해보자고 5년 만에 나서는 것이다. 파업하고 싶은 노동자는 없을 것이다.”

손 : “감내해야 할 때는 감내하는 게 맞다. 그러나 지금은 소리칠 때인 것 같다. 지난 5년 동안 느꼈던 것들을 시청자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다.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시청자들이 MBC로 돌아오셔야 한다는 점이다. MBC를 더 이상 보지 않는다는 시민과 시청자들이 MBC로 관심을 돌리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응원·지지해주시면 만나면 좋은 친구로 돌아갈 것이다.” 

허 : “그래. 마봉춘 복원 프로젝트. 와이프가 그랬다. ‘오빠는 MBC를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니까 버틸 수 있지만 후배들은 낯선 MBC가 자기 집이 아닌 것 같아 떠나는 것 같다’고. 후배들에게 ‘여기가 너희 집’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런 MBC 만들고 싶다. 삭제하신 11번 다시 선택 채널에 포함하실 수 있게 열심히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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