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부자증세지만 ‘무늬만 버핏세’
이지선·김다슬 기자 jslee@kyunghyang.com  입력 : 2012-01-01 22:11:20ㅣ수정 : 2012-01-01 22:11:21

세수 증가 효과는 제한적… 정부 감세정책 ‘벼랑 끝’

과세표준 3억원 초과 구간에 38% 세율을 적용하는 ‘한국판 버핏세(부자증세)’ 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 일부가 탈당을 내세워 지도부에 법 처리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부자증세라는 상징성은 있으나, 세수증가 효과는 제한적이라 ‘무늬만 버핏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국회 본회의에 올라간 소득세법 개정안은 정부가 제출한 것이다. 월 소득공제를 1인가구까지 확대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과세표준 8800만원 초과 소득에 35%의 세율을 적용’하는 현행 제도가 그대로 간다.

한나라당 조문환, 민주통합당 이용섭 의원 등 여야 의원 52명은 지난달 30일 ‘2억원 초과’ 최고구간 신설과 38% 최고세율 적용을 골자로 한 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수정안으로 내놨다. 이 경우 2009년 기준으로 전체 소득자의 0.35%인 6만3000명이 해당돼 7700억원가량의 세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도부가 제동을 걸었다. 지난달 31일 본회의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의총을 열고 토론을 통해 2억원 기준 대신 3억원으로 바꾼 수정안을 냈다.

야당은 반발했다. 이용섭 의원(61)은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3억원으로 과표구간을 올리는 것은 무늬와 모양만 부자증세이지, 실제 취지에 맞지 않고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3억원 초과 소득자는 전체 소득자의 0.17%로 연간 추가 세수도 5000억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실제 세수보다는 그 상징성을 봐달라”(한 재선 의원)는 얘기가 나왔다.

야당 의원들의 반대토론 신청이 줄잇자 박희태 국회의장(74)은 ‘토론종결 동의건’을 받아들여 표결을 실시했다. 수정안은 재석의원 244명 중 찬성 157명, 반대 82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됐다.

앞서 한나라당 의총에서는 의원들 대부분이 과표기준 3억원 부자증세 안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과표구간 신설에 부정적이고 종합적으로 세제 개편을 논의하자던 박근혜 비대위원장(60)으로서는 자신의 뜻에 배치된 당론이 나온 것이다. 반면 부자증세를 주장했던 쇄신파로서는 상징적 제도이나마 자신들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 버핏세 도입 논의를 주도했던 정두언 의원(55)은 트위터에 “한나라당의 진정한 중도개혁보수혁신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부자 증세까지 부활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은 벼랑 끝에 서게 됐다. MB노믹스(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축인 감세정책 기조가 줄곧 위축돼 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1년 9월 추진한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는 여당의 반대로 철회됐다. 정부가 법인세 중간구간(2억원 초과~500억원 이하)을 신설해 최고세율(22%)보다 낮은 20%를 적용키로 한 방안도 지난달 28일 기획재정위에서 구간 상한선이 ‘200억원 이하’로 밀렸다. 여기에 최고구간 소득세 신설안이 추가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현 경제 상황과 정책의 일관성 등을 고려해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에 부정적이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예결위에 출석해 “현행 세제를 가지고도 세수 발굴이 잘 이뤄지고 있고 세입 확보도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반대 뜻을 밝혔다. 

재정부 관계자는 “조세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가 결정하면 정부는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도 “정책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점에서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