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13551.html

‘적폐청산’이라는데 왜 자꾸 ‘정치보복’ 논란이 일어날까
등록 :2017-10-07 10:06 수정 :2017-10-07 11:21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당사자의 무조건적 반발…뚜렷한 대응책 없어
민주당의 정치공세…집권여당은 개입 자제해야
검찰의 과잉 수사…대통령의 확실한 제동 필요
문 대통령 “적폐청산은 불공정 특권 구조 변경”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과 군의 정치개입 사건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국가기관이 특정 정파의 재집권을 위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불법공작을 한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 대상이 박근혜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 관계자들로 확대되면서 정치보복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검찰의 수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나 ‘보수 우파 궤멸작전’으로 몰고 있습니다. 보수 성향 언론도 정치보복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9월30일치 <조선일보> 사설의 내용입니다.

시기가 언제든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 배경이 법질서 수호일 수도 있고 정치보복일 수도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어느 쪽인지는 대부분 짐작할 것이다. 현 대통령 측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의 복수심에 불타고 있고 전전 대통령 측은 ‘그렇다면 다 까발려보자’는 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식 때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의 시작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많은 국민이 ‘혹시’ 하고 기대했다. 그 기대는 ‘역시’로 바뀌었다. 한반도 핵위기가 일촉즉발인데 여당 사람들은 가진 힘의 9할을 전전 대통령에게 복수하는 데 쏟고 있는 것 같다. 양쪽 다 평정심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여야 대표들과 만나 손을 잡고 있다. 왼쪽부터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권한 대행,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 대톨령,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송금주 국민의당 대변인이 만찬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7.9.27 청와대사진기자단 세계 남제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여야 대표들과 만나 손을 잡고 있다. 왼쪽부터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권한 대행,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 대톨령,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송금주 국민의당 대변인이 만찬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7.9.27 청와대사진기자단 세계 남제현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 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을까요?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4당 대표 만찬 회동에서 의미 있는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권한대행이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단어를 들어 “국민 단합을 저해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답변은 대략 이랬습니다.

“정치보복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 나는 정치보복을 경험해봤다. 체질적으로도 정치보복에 반대한다. 앞 정부에 대한 기획 사정도 해선 안 된다. 지금의 적폐청산이 혹시라도 정치보복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우려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겠다. 그런데 개별 비리들이 불거져 나오는데 수사를 막을 수는 없다. 내가 주장하는 적폐청산은 개인에 대한 책임 처벌이 아니다. 불공정 특권 구조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지난 정부 자료가 쏟아져 나왔는데 정치보복 하려면 이렇게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빠르게 기록원에 전달했다. 이 문제도 자연스럽고 빠르게 처리하자는 게 기본 생각이다. 믿으셔도 된다.”

과거사 처리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 선거를 4개월 앞두고 2017년 1월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문형렬 씨와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런 사람들,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물어야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 같은 경우는 형사책임을 져야겠죠. 거기에 공범 관계에 있는 김기춘, 우병우 이런 사람들도 당연히 형사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좀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고 부화뇌동했던 공직자들이나 전문가들, 이런 사람들도 법적 책임을 지든 역사적 심판을 받든 해야죠. 그리고 사실을 투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런 것은 개별적인 책임들이고, 전체적으로는 부패 시스템에 대한 대청산이 필요합니다. 그게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일 겁니다.”

주호영 권한대행과 주고받은 문답과 거의 비슷합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법적, 역사적 책임은 개별적으로 져야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부패 시스템에 대한 대청산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도 자꾸 정치보복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세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 야당의 무조건적인 반발입니다. 본래 야당은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에 대해 “야당 탄압”이라고 떠들게 되어 있습니다. 야당 탄압이라고 외쳐야 자신들의 범죄를 물타기 하고 선거에서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당 사람들이 야당일 때도 그랬습니다.

여기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특별한 사정도 있습니다. 두 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참패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큽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을 다 죽이려 한다’는 명분으로 보수결집이나 보수개혁의 동력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둘째, 더불어민주당의 개입입니다. 지금 민주당은 야당 체질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정권 비리 폭로에 앞장서거나 자극적인 언사로 다른 정당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집권세력의 부패와 비리를 찾아내 폭로하는 것이 당연한 임무입니다. 다른 정파의 범죄와 비리에 대해 정치공세를 펴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당이 되면 정치공세를 자제해야 합니다. 여당의 정치공세는 대통령 및 행정부와 연결된 것으로 오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노련한 여당이라면 야당의 비리나 범죄는 뒷북이나 치면서 따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범죄 혐의를 발견해도 직접 폭로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수사기관에 넘겨주는 것이 올바른 처신입니다.

셋째,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뜻과 달리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오버’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검찰이나 경찰은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권에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범죄를 찾아서 어떻게든 사건화하려 들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잘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검찰이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당시 사건을 침소봉대해서 무리하게 정권 차원의 범죄로 몰아가는 움직임이 있다면 확실히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진의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지 과거 정권 전체를 매도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선언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보복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라는 평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선’으로, 박근혜 이명박 정부는 ‘악’으로 보고 처단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실제로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인권 운동과 민주화 투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이상주의자라는 진단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한두 가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물며 문재인 대통령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정치인을 특정 이미지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온당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이상주의자로 규정하려는 시도의 이면에는 현실을 잘 모르는 아마추어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상주의자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주의자입니다. 근거가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진영 박광온 김경수 의원과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했던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을 김경수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다시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의 제목대로 어떻게 하면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을지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도 토론자로 참석해서 “문재인법이라는 것을 너무 부각하지 말고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심이 있는 다른 정당 의원들이 법률 제정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경수 의원이 마무리 발언에서 “‘무엇을’도 중요하지만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운명’이라는 책에 썼고 지금도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에 쓴 <문재인의 운명>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최근 서울대 조국 교수가 펴낸 ‘진보집권플랜’이 화제다.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를 향해 가야 하는지 국민들이 알기 쉽게 잘 정리해 줬다. 인기 있는 서울법대 교수가 진보를 말하고 복지를 말하니, ‘진보’와 ‘복지’를 계몽하는 데도 효과만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을 보면서 다른 차원의 걱정을 떨칠 수 없다.

다음에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부가 다시 들어섰을 때, 그 책이 제시한 개혁과제 가운데 과연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흔히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 정부가 애를 써도 5년 임기 동안에 해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보수진영은 개혁과 복지 한다고 공격하고, 진보·개혁진영은 제대로 못 한다고 공격하고, 그렇게 좌우 양쪽에서 협공을 받는 정부 역시 참여정부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진보집권플랜’을 비롯해서 모두들 앞으로 진보·개혁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만 논의할 뿐, 그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자신이 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지,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지 아는 사람입니다.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아는 정치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정권 수사에서 정치보복 논란을 극복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과거 정권의 범죄에 대한 처벌에 그치지 않고 그런 범죄가 가능하도록 한 구조 자체를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는 정치적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바로 정권교체를 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승리하고 대한민국이 한 단계 발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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