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141441001
MBC 몰락 10년사⑭ MBC를 망친 외부자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김재영 MBC PD (PD수첩 등 연출, 현재 송출업무 담당) 입력 : 2017.10.14 14:41:00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015년 10월 6일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그는 답변에서 당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고 사법부가 좌경화되었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이날 최민희 의원의 질의에 고 이사장은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고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 강윤중 기자
·| MBC의 몰락 10년사 ⑭ | MBC를 망친 외부자,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고영주씨는 현재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장이다. 방문진은 MBC를 관리·감독하고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대주주이지만, 법적으로 MBC 경영에는 개입할 수 없다. 그런데 고영주 이사장이 특정 브로커를 알선해 5000억원 상당의 MBC 여의도 사옥 매각을 수의계약으로 추진하려 했다는 대형 의혹사건이 터졌다. 고영주 이사장은 마치 왕회장처럼 경영진과 간부들에게 정체가 불투명한 브로커에게 3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줄 수 있는 매각을 추진시키라고 명령하고 지시했다. 브로커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해당 본부장에게는 인사상 불이익을 언급하면서 사실상 협박을 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다행히 고영주 이사장 뜻대로 추진되지는 못했지만, 지시를 받은 당시 담당국장은 명백한 압력과 월권이었다고 고백했다. 사실이라면 형사상 책임을 면하기 힘든 위법행위임에 분명하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던 화려한 전력을 가진 고영주 이사장. 그가 국민의 재산인 MBC를 자기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벌인 행동은 헤아릴 수가 없다. MBC를 망친 ‘내부자들’이 있었다면 그들을 비호하는 ‘외부자들’은 바로 구(舊)여권 추천 방문진 이사들이었는데, 외부자들과 내부자들은 사실상 한몸이었고 중심에 고영주 이사장이 있었다.
■ 극우주의자의 안식처된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의 과거는 1000만 관객 영화 <변호인>에 등장한다. 그는 영화의 배경사건인 ‘부림사건’의 담당검사였다. ‘부림사건’은 1980년대 부산지역 대학생 독서모임을 ‘간첩조직’으로 둔갑시킨 대표적인 조작사건이었다. 추측컨대, 영화 <변호인>에서는 배우 조민기씨가 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무려 30년이 넘게 걸렸다. 부림사건이 간첩사건에서 조작사건으로 바뀌는 30년 세월은 한국 사회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어울리는 민주주의를 겨우 제도화시키는 시간이었지만, 고영주 공안검사는 그 변화에 부적응했다. 그 부적응이 개인적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이 희대의 부적응자는 21세기에 공영방송을 관리·감독하는 최고 수장 자리에 올랐다. 역설적으로 부적응자였기에 박근혜 세력은 기꺼이 그에게 MBC를 맡겼으리라.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한 공안검사 고영주가 보기에 전국언론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결코 방송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였다. 그가 보기에 수백 명의 언론노조 소속 PD, 기자, 아나운서들에게 행해진 각종 부당노동행위는 ‘부당’하지 않고 정당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선고 직전인 지난 2월 MBC 사장을 뽑는 자리에서 사장 후보들에게 부지런히 ‘언론노조 소속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지 않을 방도’를 캐물었다. 헌법과 법률을 철저하게 유린한 이 자리에서 김장겸 사장이 뽑혔다. 고영주 이사장 눈에 노동조합에 가입한 언론인들은 불온서적을 읽는 80년대 대학생이었고, 당시 고영주 검사는 그들을 ‘간첩’으로 몰았다. 역사는 비극적으로 반복되었다.
2015년에는 이른바 백종문 녹취록 사건이 터졌다. 백종문 당시 미래전략본부장은 극우매체와의 저녁자리에서 “이유 없이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를 해고했다”고 스스로 실토했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고영주 이사장이 법인카드로 계산한 이 자리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을 리 없지만 그는 굳이 이 자리가 ‘사적인 자리’였다는 변명을 받아들였고 사건을 철저하게 뭉갰다. 백종문 본부장은 김장겸 사장 체제에서 부사장이 되었다.
고영주 이사장 시절 방송문화진흥회는 그야말로 스펙터클의 연속이었다. 방문진은 MBC의 관리·감독기관으로 매년 경영평가를 하게 되어 있다. 수억 원의 돈을 쓰는데, 이사들 합의에 따라 공정한 인사를 정하고 평가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사실 경영평가가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평가자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김세은 교수는 MBC 경영평가 가운데 보도·시사분야를 담당했다. 보고서는 “MBC의 방송통신위원회 법정 제재는 지상파 3사 중 건수와 감정이 가장 많았고 객관성과 공정성 관련 사유에 따른 제재가 8건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많은 지표들이 MBC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공정성에 있어 미흡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는 매우 객관적인 서술을 담았다. 고영주 이사장은 ‘자기 왕국’에 대한 이 평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나 자기가 사장으로 앉힌 김장겸 사장이 바로 그 평가 당사자가 아니던가. 그 보고서는 김장겸 사장을 주저앉히는 데 사용될 수도 있었다. 고영주 이사장은 아예 경영평가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채택 자체를 무산시켜버린 것이다. 재벌가 왕회장들도 회계사들이 하는 기업평가를 이런 식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감옥에 가게 되기 때문인데, 고영주 이사장은 거침이 없었다.
■ 방송통신위, 언제까지 MBC 방치할까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일 수는 없다. 그런 법(法)은 없다. 방문진 이사들을 임명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법적으로 검사감독권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방통위는 일부러 무력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방통위는 서랍 속에 잠자고 있던 ‘검사감독권’을 꺼내 들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부임 직후였다. 방통위는 방문진의 회의록, 예산 집행내역, 지침과 자체 감사내역 등을 제출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이 자료들이 확보된다면 방문진이 그동안 무법천지 MBC 경영진을 어떻게 감싸왔고, 그 과정에서 어떤 위법행위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객관적으로 이들 행위가 입증되면 방통위는 방문진 이사들을 해임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상식적인 법 해석이었다.
고영주 이사장은 기상천외한 방식을 고안했다. 고영주 이사장 등 구여권 방문진 이사들은 요청 자료들 중에서 ‘자기들이 알아서 줄 것만 주고, 안줄 것은 주지 않겠다’는 이사회 결의를 통과시켰다. 방통위의 ‘검사감독권’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초법적인 행위였다.
대한민국 방송통신위원회가, 장관급 중에서도 상석인 방통위원장이 이리 쉬운 법 해석을 못할 리 없을 텐데 일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고영주 이사장의 ‘묘수’가 알려진 다음날 공개된 방송통신위원회 회의록은 참담했다. 방문진이 ‘줄 자료는 주고 안 줄 자료는 주지 않겠다’는데, 방통위는 보내온 자료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봉숭아 학당’이 연출되었다. 자유한국당 추천 방송통신위원의 말에 이효성 위원장 등 다수 위원들이 동의를 했다고 한다.
2000여명 MBC 언론노동자들은 40일 넘게 ‘무노동 무임금’을 감내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고영주 이사장이 방조하고 지시한 각종 비인간적 부당노동행위와 편파방송, 방송 사유화에 맞선 행동이었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걸고 벌이는 최후의 투쟁이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의 눈에도 김장겸 MBC 사장 말처럼 이 파업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민의 재산인 MBC에서 언제까지 ‘외부자들’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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