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1023095145979#none


MB땐 목봉체조 수모 당한 국정원, 지금은 '삼청교육대'로

고성표 입력 2017.10.23. 09:51 수정 2017.10.23. 10:08 


'삼청교육대'로 뒤숭숭 대공수사권·심리전 등 곳곳 '지뢰밭'

━ [월간중앙] ‘동네북’ 국정원, 개혁은 어디로


DJ 때는 500여 명 재택근무 발령, MB 때는 해병대식 목봉체조로 정신개조…국정원법 개정 놓고 여야 간 이전투구 가능성 커져


적폐 청산 작업과 함께 고강도 개혁 작업에 몰린 국정원 내부 분위기는 상당히 침체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국정원 직원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정보위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적폐 청산 작업과 함께 고강도 개혁 작업에 몰린 국정원 내부 분위기는 상당히 침체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국정원 직원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정보위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은 요즘 두문불출이다. “국정원 직원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다. 한 취재원은 국정원 내의 최근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서훈 국정원장 취임 후 국정원 직원들에게 엄명이 떨어졌다고 한다. ‘당신이 국정원 직원이라는 신분을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당분간 절대 연락하지 말라’는 지시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던 국정원 직원을 최근엔 통 볼 수가 없다. 한번은 너무 궁금해 전화를 걸었더니 무척 곤란해하는 목소리로 ‘연말께나 상황 봐서…’라며 말끝을 흐리더라.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가던 터라 더 이상 만나자는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정권이 바뀌고 여의도 국회와 각 언론사 주변에서 활동하던 국정원 직원들도 자취를 감췄다. 지난 6월 1일 서훈 국정원장의 취임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서 원장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으면서 “첫 번째 조치로 국내 정보관의 기관 출입을 전면 폐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우리가 IO라 부르는…”이라고 말한 뒤 “다들 박수 한번 쳐줍시다”고 했다. 서 원장은 취임식에서도 “국정원 내 부처·기관·단체·언론 출입 담당관은 이날 부로 모두 전면 폐지됐다”며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규정과 질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응분의 조치를 받게 될 것”이라는 표현으로 ‘무관용 원칙’을 강조하기도 했다.


국내정보 담당관(IO; Intelligence Officer) 제도의 폐지는 서훈 체제 국정원의 개혁 제1호 조치로 실행에 옮겨졌다. 국정원은 이번 조치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국정원의 정치 개입 단절과 개혁 실현을 위한 필요성에 따라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정부 각 부처와 국회, 각종 공공기관, 언론사를 출입하던 국정원 정보 담당관들이 썰물 빠지듯 철수했다. 이와 함께 이들 IO뿐 아니라 국정원 전 직원을 대상으로 앞으로 공적 업무 외에는 외부 인사들과 불필요하게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은 엄중한 시기에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소문과 잡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집안 단속으로 보인다.


사실 역대 정부에서도 IO 폐지 조치는 수시로 나왔으나 결국에는 ‘도루묵’이 되곤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5월 국정원은 조직 개편을 통해 국내정보 담당인 2차장 산하의 대공정책실을 폐지하고 국가 안보와 관련이 없는 부처나 언론 등의 IO 상시 출입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05년 8월 노 전 대통령과 언론사 정치부장단 간담회에서 IO 출입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출입처를 없애라고 지시했는데 내가 확인을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동향정보 수집 분석하는 7, 8국 전격 폐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 내에서는 대대적인 인적 청산 작업이 반복돼 왔다. 개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는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 내에서는 대대적인 인적 청산 작업이 반복돼 왔다. 개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는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


MB 정부 시절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과정에 국정원 IO가 연루된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시 국정원 IO가 방송사를 수시로 드나들며 최고위 인사들과 만났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0년 당시에 국정원 IO가 사장실부터 시작해 회사를 맘대로 돌아다녔다. 나도 그렇고, 보도국 웬만한 기자들이 그 국정원 직원 이름을 알 정도”라고 했다.


IO 폐지를 위한 법제화 노력도 있었지만 법과 현실은 따로 놀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1월에는 ‘국정원 댓글사건’의 영향으로 국정원 직원의 국가기관과 정당, 언론사 상시 출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IO들의 활동은 계속됐다.


한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IO는 국정원의 눈과 귀나 마찬가지”라며 “여러 차례 IO 폐지가 논의됐음에도 계속 활동을 해온 것은 기관을 출입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의지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의지는 있었다지만 대통령이 챙기지 않으니 흐지부지되지 않았나”라고 덧붙였다.


서훈 국정원장은 ’팔이 잘려나갈 수 있다“는 말로 강도 높은 개혁 의지를 밝혔다. 9월 4일 서 원장이 북한의 6차 핵실험과 관련한 보고를 위해 직원들과 함께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서훈 국정원장은 ’팔이 잘려나갈 수 있다“는 말로 강도 높은 개혁 의지를 밝혔다. 9월 4일 서 원장이 북한의 6차 핵실험과 관련한 보고를 위해 직원들과 함께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과거 정부 때와는 상황이 더 엄중한 만큼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시각이 일단은 우세하다. 지난 10년간 국정원 주도로 벌어진 선거 개입, 여론 조작, 민간인 사찰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다 대체적인 국민 여론도 국정원 ‘바로 세우기’가 시급하다는 데 공감을 표하고 있다.


국정원은 IO를 철수시키면서 동시에 내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국내동향 정보 담당부서인 7국(정보 분석)과 8국(정보 수집)을 폐지한 것이다. 그동안 이들 부서가 IO를 활용해 국정원법의 직무 범위를 벗어나는 일에 동원된 만큼 이를 정상화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정원법은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관련 보안 정보로 직무 범위를 정해 놓았지만 그동안 내규를 근거로 각종 탈법적인 국내동향 정보수집을 공공연하게 해오며 이를 당연한 활동으로 치부했다. 이렇게 포괄적으로 수집된 국내동향 정보는 언제든지 정치인·민간인 사찰로 변질될 소지가 있었다. 따라서 IO를 철수함과 동시에 그 본부 조직 격인 담당부서까지 아예 없앰으로써 앞으로는 불법의 소지가 아예 싹트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첩·대공 정보수집 등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도록 인력 재배치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개혁 조치는 인적 청산으로 나타났다. 이 조치 역시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던 익숙한 풍경이다. 우선 국정원은 실·국장급인 1급 직원을 전원 교체했다. 이번 교체 대상 인원은 각 시·도지부장을 포함해 30명이 넘는다고 한다. 국정원 적폐 청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다 국내 정보 담당부서가 폐지된 만큼 관련 인원 교체는 예상된 수순이었다. 다만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뤄질 것인지가 관심사였는데 이번에는 전원 교체를 원칙으로 했다는 것이다. 인적 교체와 함께 1급 자리 6개가 없어졌다. 앞서 언급한 7, 8국과 수도권 등 주요 지역을 제외한 일부 시·도지부장 자리를 없앤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의 얘기다.


“이번에 교체된 1급들은 거의 대부분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다. 일부는 MB 정부 때부터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인사도 포함된 것으로 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국정원이 ‘적폐 청산 차원’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13건에 관여된 인사들은 이번에 대부분 인사 조치 대상이 된 것으로 안다. 1급 자리 몇 개가 없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진통이 있었다는 얘기가 들리더라. 국정원은 처음에는 인원만 교체하고 가급적 자리는 그대로 두는 방향을 생각했지만 청와대와 서훈 원장의 강력한 개혁 의지가 작용해 아예 불필요한 자리를 없애는 방향으로 정리됐다고 한다.”


여권의 또 다른 인사 역시 “국정원 개혁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번 조직 개편과 인사는 국정원이 정치와 단절돼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과 대원칙에 따라 이뤄졌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분명하게 드러난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대충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구여권 측에서는 보복 인사라고 하지만 정당한 명분이 있는 인사 조치”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인사에서는 여성 부서장도 여러 명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과거 정부 때 요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인적 청산에 매달리는 건 명백한 보복 인사”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8월 하순 국정원 1급 고위직 전원 교체가 마무리된 후에도 국정원 내부 물갈이는 계속 진행됐다. 9월 들어서는 2, 3급 인사들과 4급 중간 간부들에 대한 인사가 이어졌다. 인사 기준은 마찬가지로 과거 정권에서 불법 행위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여부였다고 한다. 특히 원세훈 전 원장을 비롯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지시를 받아 MB 정부에 비판적인 각계 인사들을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이들에 대해 소위 ‘제압 활동’을 벌인 실무적 역할을 한 인물들이 대상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온·오프라인상에서 여러 가지 방식의 여론조작 등을 통해 국내 정치에 가담하고 민간인을 뒷조사해 압박을 가하는 데 실무적 역할을 담당한 책임을 이들 중간 간부에게 물은 것이다. 이 직원들을 정신교육과 함께 한직에 배치하는 등의 방식으로 인력 재배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위직급 직원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검찰 수사 의뢰나 면직과 같은 방식을 통한 중한 책임은 묻지 않았다고 한다.


━ 前 정부 적폐 가담한 직원 ‘삼청교육대’로


신입 요원의 교육과 승진자들에 대한 ‘보수교육’이 진행되는 국가정보대학원은 전 정권에 부역한 직원들에 대한 정신교육을 하는 소위 ‘삼청교육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가정보대학원 복도 계단을 오르고 있는 국정원 신입 요원들.

신입 요원의 교육과 승진자들에 대한 ‘보수교육’이 진행되는 국가정보대학원은 전 정권에 부역한 직원들에 대한 정신교육을 하는 소위 ‘삼청교육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가정보대학원 복도 계단을 오르고 있는 국정원 신입 요원들.


적폐 행위에 가담한 정황이 포착된 하위직급 직원 중 일부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명하복과 위계질서가 강한 국정원 조직의 특성상 윗선의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웠던 점을 감안해 인사 조치나 징계 수위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너무 가혹하게 책임을 물을 경우 혹여 있을 수 있는 내부 반발 분위기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 2, 3급 고위직에 대한 수사 의뢰나 면직, 전면 물갈이 같은 강도 높은 인적청산에도 국정원 내부 전반은 이렇다 할 동요나 반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지 않다. 1차 조직 개편과 인사를 대부분 마무리했지만 내부 분위기는 상당히 침체돼 있다.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조직으로 체질을 확 바꾸겠다는 서훈 국정원장의 강한 의지 표명에도 적폐 청산 작업이 워낙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어 조직 전체가 가라앉아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여당 당직자 A씨는 “예상은 했지만 국정원 적폐 청산 TF의 조사와 검찰 수사로 인해 연일 충격적인 내용이 드러나고 있어 전반적으로 숨죽이는 분위기라고 하더라”며 “한편에서는 직원들의 사기 저하나 심리적 위축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적지 않은 직원이 내부 ‘삼청교육대’에 입소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사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미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조기 대선에 따른 정권 교체 가능성이 크게 점쳐질 무렵부터 문제 간부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직원의 ‘삼청교육대’ 입소를 예견하는 분위기가 파다했다고 한다.


A씨가 얘기하는 국정원 내부 ‘삼청교육대’는 국가정보대학원 교육발령을 뜻한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국가정보대학원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산자락에 있다. 원래 신입 직원 입소 교육과 승진자를 대상으로 한 보수교육, 고위 간부들에게 하는 안보관리과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전 정권 부역자’를 추려내 이들에 대한 정신교육을 하는 역할이 더해졌다.


여당 관계자와 국정원 소식통 등 복수의 인사들에 따르면 국내동향 정보 담당부서가 폐지되고 8월과 9월에 걸쳐 1~3급 간부들에 대한 인사 조치가 단행된 직후부터 국가정보대학원 내 ‘삼청교육대’가 재가동됐다고 한다. 교육 대상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주도한 불법 행위를 지시했거나 실무 책임을 맡은 30~40여 명의 직원이다. 주요 보직에서 밀려난 이들은 오전에 국가정보대학원으로 출근해 대기 상태로 있다가 일부 재교육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들 중 10여 명 안팎의 실·국장 출신인 1급 간부의 경우 이곳에서 대기하다 결국 퇴직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인원은 재교육을 받은 후 복귀할 예정이지만, 이들의 미래 역시 불투명하다는 것이 국정원 안팎의 대체적 시각이다. ‘삼청교육대’ 입소자들 중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 대상자가 적지 않아 서울 서초동 검찰청과 분당 국가정보대학원을 왔다 갔다 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이들을 제외한 수백 명의 국정원 직원도 순차적으로 국가정보대학원에서 ‘보수교육’을 받고 있거나 재교육이 예정돼 있다. 7, 8국이 폐지되는 등 내부 조직 개편이 대규모로 이뤄진 탓에 많은 직원의 보직 이동과 새 부서 배치에 따라 교육 발령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동향 정보를 담당해온 직원들은 북한정보, 해외정보, 대테러·방첩, 산업보안 등 여러 부서로 자리를 옮기게 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도 이뤄지고 있어서 그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번처럼 부서 전체가 완전히 없어진 경우가 없어 폐지 부서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교육발령 대상자도 각자의 과거 전력에 따라 구분해놓은 것으로 안다”며 “일부 직원의 경우 ‘자신이 왜 대상자에 포함됐는지 불만을 토로했다는 소문도 들린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적폐 청산 인원으로 찍힌 교육 대상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우선 자기들끼리 이심전심 ‘정치범’으로 부른다는 이들로 구성된 부류다. 이들은 주로 국내동향 정보 부서와 인사·감찰 관련 부서에서 일한 간부라고 한다. 국정 농단에 직간접으로 가담한 정황과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는 인사들이다. 박근혜 정권 때 국내정보 수집을 총괄하던 C 전 국장 측근들이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 또 정권 유력자에게 줄을 대 내부 규정이나 상식에 맞지 않게 인사 전횡을 하고, 내부에서 특정인 찍어내기에 역할을 한 이들도 일부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또 다른 부류는 국정 농단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이권에 개입하는 등 개인 비위 정황이 포착돼 징계성 인사 조치 대상자가 된 이들이라고 한다.”


이 여권 관계자가 언급한 C 전 국장의 측근들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 등에게 국정원 내부의 여러 정보를 비공식 경로를 통해 수시로 보고한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 대한 인사 조치에 대해 내부에서는 “특정 라인에 기대 전횡해 온 인물들이 정권 교체와 함께 전격적으로 조치된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도 나왔다고 이 여권 인사는 전했다.


━ 해병대식 목봉체조로 모멸감 준 원세훈


MB 정부 시절 국정원의 댓글 공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9월 26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MB 정부 시절 국정원의 댓글 공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9월 26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이를 두고 보수 성향의 구여권 인사들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인사 학살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초기 진행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인적 청산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DJ 정부 출범 직후인 98년 4월 초 ‘재택근무’를 명령하는 방식으로 인사 조치가 단행됐다. 이 조치로 당시 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직원 500여 명이 강제 퇴직당했다. 이를 두고 ‘안전기획부 대학살’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당시 안기부를 나온 직원들은 “전라도 정권이 들어서자 경상도 출신 70%가 쫓겨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산 대상은 분명했다. 97년 대선 당시 소위 ‘6적(1차장, 1특보, 감찰실장, 102실장, 103실장, 2실 정치처장)’과 ‘북풍 가담자’ 등이었다. 또 평소 DJ가 절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며 DJ에 대한 용공조작과 음해를 해온 인물, 호남 출신 인사 발탁을 방해한 인물 등이 제거 대상이었다. 인적 청산 대상 인물 중에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청산할 명백한 ‘문제 인물’도 적지 않았지만, 일각에선 수십 년 동안 탁월한 능력을 바탕으로 대북 정보를 다뤄온 인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상당 기간 동안 대북 휴민트의 약화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정원 내 인적 청산의 역사는 보수·진보 정권 할 것 없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10년 만에 보수진영이 정권을 되찾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 내 흑역사는 계속됐다. 과거 정권 중 MB 정부 시절 원세훈 국정원장이 벌인 인적 청산 작업이 가장 심한 강도로 진행됐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세훈 원장은)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 무자비한 공포를 동원했다”며 “일례로 2, 3급 고급 간부들을 ‘삼청교육대’라는 교육에 입소시켜 목봉 체조를 시키는 굴욕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 전 원장은 패악질에 가까운 인사로 많은 직원이 고통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병이 나 숨진 케이스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교육 차원을 넘어 해병대식 목봉체조까지 시키며 육체적 고통을 줬다는 김 의원의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정원 직원 P씨의 증언.


지난 9월 25일 ‘국정원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대리인단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접수했다.

지난 9월 25일 ‘국정원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대리인단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접수했다.


“국정원 교육훈련 발령을 두고 ‘삼청교육대’ 입소라는 표현이 나온 게 바로 원세훈 원장 시절이다. 원 원장의 취임 후보직에서 밀려난 2~4급 직원 수십 명이 국가정보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 프로그램에는 해병대에 입소해 목봉체조나 유격훈련을 받는 과정도 있었다. 인사 발령이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자주 있다 보니 누가 언제 교육발령을 받을지 몰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타깃은 주로 노무현 정부 시절 김만복 전 원장이 중용한 인물들이었다. 일부는 MB 정부 당시 초대 원장인 김성호 전 원장이 발탁한 인사도 있었다고 한다. 원 전 원장은 당시 10년 좌파 정권에서 양지에 있던 인물들을 솎아내지 않고는 국정원을 틀어잡을 수 없다고 인식하고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강력한 인적 청산을 주도했다. 특히 자체 살생부를 만들고 해병대식 ‘삼청교육대’ 입소를 기획한 주요 인물들은 TK(대구·경북) 출신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 국정원 직원 P씨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전 정권 부역 여부와 상관없이 원 전 원장을 비토하는 내부 세력 색출에 초점이 맞춰진 측면도 있다.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출신이 아닌 전형적인 외부 낙하산 인사였기 때문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더 악랄하게 인적 청산을 진행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단순한 교육발령 차원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멸감을 줄 정도의 일이 많이 벌어졌다. 내부에서는 ‘해병대 입소 교육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면서 반발 기류도 있었지만 그대로 밀어붙인 것으로 안다. 교육 대상 중에는 50세 이상 직원도 적지 않았는데 육체적 고통까지 줘야 하는지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해병대식 훈련 과정을 굳이 넣은 것은 정신적·육체적 모멸감을 줘 스스로 퇴직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시각도 있다. 강도 높은 인적 청산으로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오자 교육훈련이 다소 완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시사저널> <오마이뉴스> 등에서 정치부와 탐사 분야 취재 기자로 활동하며 지난해 <시크릿 파일 국정원>이라는 책을 낸 김당 씨는 이 책에서 원 전 원장 시절 진행된 인사와 조직 개편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부임하자마자 원세훈은 자신에 대한 반감을 인사와 조직 장악으로 응수했다. (…) 정기 인사철이 아닌데도 수시로 직원의 보직을 바꾸는 무원칙 인사, 줄 세우기 인사가 만연하면서 국정원의 정보관·조정관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관련 없는 부서로 배치되는 경우가 잦았다. (…) 원세훈은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원주사’답게 6급 인사까지 챙기고 정보 문외한이라는 자격지심에서인지 정보 관리 또한 역대 어떤 원장보다도 꼼꼼하게 챙겼다.”


━ 서훈 “팔이 잘려 나갈 수 있다”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각각 임명장을 받고 있는 원세훈·김만복 국정원장. 정권이 바뀌자 원 원장은 김 원장 때 중용된 인사들을 대상으로 해병대식 목봉체조 교육까지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각각 임명장을 받고 있는 원세훈·김만복 국정원장. 정권이 바뀌자 원 원장은 김 원장 때 중용된 인사들을 대상으로 해병대식 목봉체조 교육까지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인적 청산이 강도 높게 진행됐지만 정작 국정원 개혁 과제는 보고서로만 존재할 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DJ 정부 때는 안기부를 지금의 국정원으로 개명하면서 개혁 의지를 다녔다. 안기부를 상징하던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도 바꿨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사찰 금지, 대북 및 해외정보 수집 역량 강화를 개혁 과제로 꼽았다. 하지만 YS 정부에 이어 DJ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이 국내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도청을 하며 정치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개혁안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대선 공약으로 국정원의 국내정보 업무와 정치 사찰 및 개입을 전면 중지시키고, 해외·대북 정보만 수집·분석하는 ‘해외정보처’로의 개편 등 국정원 개혁을 약속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 독대 보고를 없애는 등 과거의 폐습을 일부 단절하는 개혁을 단행했다지만 마찬가지로 국민의 눈높이에 걸맞은 개혁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의 국정원은 다시 과거의 정권 안보 기관으로 회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과연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 개혁은 이뤄질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우선 서 원장을 포함해 1, 2, 3차장을 모두 국정원 출신으로 임명했다. 국정원을 잘 알고 있는 인물들로 지도부를 구성해야 내부 개혁을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다는 인사로 보인다.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모두 국정원 출신이라 자칫 소리만 요란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팔이 안으로 굽는 식의 어정쩡한 개혁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지난 6월 19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발족식에서 서 원장은 “(국정원은) 상처 없이 다시 설수 없는 상황으로 팔이 잘려나갈 수 있다”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국내 정치와 완전히 결별할 수 있는 개혁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육참골단’(肉斬骨端: 내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의 고강도 개혁을 주문한 것이라고 평하며 서 원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서 원장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1호 개혁조치로 국내정보 수집 업무 부서를 폐지하며 의지를 보였지만 이후 국정원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한국형 CIA(미국 중앙정보국)’를 지향하는 해외정보원으로 개편한다는 큰 원칙만 나와 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순수 정보기관으로서의 구상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 6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정원 개혁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 이 법안에는 국회가 정보원장을 탄핵소추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해 정보원의 불법 행위를 견제할 수 있도록 했다. 직원들의 정치 관여, 직권남용, 도청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특히 정치 관여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조항도 넣었다. 기밀을 이유로 정보원의 예산을 다른 기관의 예산으로 계상하는 관행을 없애고 예산 심사에 필요한 세부자료를 국회 정보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도 제출하도록 했다. 법안 내용 중 가장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한다’는 부분이다. 대공수사권 폐지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대공수사권 폐지 문제는 복잡하다. 대공수사권을 다른 수사기관으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은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온 부분이다. 수사는 사법적 영역으로 조직과 활동 상황의 비공개성이 강한 국정원이 해야 할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비공개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수사권 남용 등의 불법 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정원의 유우성 씨 간첩조작 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은 반발하고 있다. 일부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공수사권을 없애면 간첩 잡는 국정원의 핵심 기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철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남북이 대치하는 국가에서 대공수사권을 폐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현행) 국정원법에 대공수사를 하도록 돼 있으며 이를 폐지하는 것은 북한의 주장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법 개정 사안인 데다 대공수사권을 분리해 어느 기관에 줄 것이냐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당장 현실화되기 쉽지는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 분위기다.


━ ‘방어심리전’ 임무 그대로 유지될까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6월 30일 당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백범기념관에서 ‘국정원 개혁촉구 대회’를 열었다. 야당은 당시 국정원이 대선에 활용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는 등 선거에 개입했다고 성토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6월 30일 당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백범기념관에서 ‘국정원 개혁촉구 대회’를 열었다. 야당은 당시 국정원이 대선에 활용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는 등 선거에 개입했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복잡한 문제는 국정원 내 ‘심리전 기능 및 조직’ 개혁과 관련된 부분이다. 국정원 개혁위 일부 인사와 진보진영에서는 심리전 기능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리전은 작전·집행 기능으로 정보기관이 직접 나서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말 국회에 보고된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에는 ‘방어심리전’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국정원은 북한지령과 북한체제 선전·선동,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 부정, 반헌법적 북한주장 동조 등 세 가지에 대해서는 방어심리전을 지속할 것이며, ‘이적 사이트’에 대한 정보수집 차원의 심리전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서는 이러한 방어심리전은 국정원의 당연한 활동 영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여권과 진보진영에서는 정보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방어 심리전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이런 역할은 다른 정부 홍보기관 등이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하면 충분하다며 맞서고 있다.


최근 국정원 적폐 청산 TF의 조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의 불법 행위가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국정원 심리전 수행 문제가 향후 그려질 국정원의 구체적 개혁 밑그림에 어떤 식으로든 거론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밖에 국정원 개혁위 내에서는 국정원법상 정보수집 범위와 관련된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이를 두고도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현행 국정원법에는 정보수집 업무 범위를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對共), 대정부전복(對政府顚覆), 방첩(防諜),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ㆍ작성 및 배포”로 규정하고 있다. ‘대공’의 개념이 모호하고 너무 포괄적이어서 이를 구체화하거나 다른 용어로 바꾸는 식의 논의가 국정원 개혁위 내에서 이뤄지고 있다. 인권침해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것인데 이 역시 보수 진영에서 반발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처럼 향후 국정원 개혁의 구체적 안과 내용을 놓고 여야, 진보·보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여권의 한 국정원 소식통은 “국정원 개혁이 인적 청산과 과거 사건 파헤치기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자칫 정치권이 말싸움만 하다 허공에 붕 뜨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 고성표 월간중앙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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