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111454001
[단독]“육영재단 어린이집 술시중 여교사 자살? 박근혜는 모르는 일”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입력 : 2017.11.11 14:54:00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에 들어 있던 ‘유치원반론.hwp’ 파일. 2012년 11월 29일자로 작성된 이 파일은 당시 박근혜 후보가 육영재단 이사장 재임시절이었던 1980년대 초, 육영재단 어린이집 교사들을 술시중 들게 했다는 의혹제기에 대한 반론을 담은 것이다.
태블릿PC ‘유치원반론.hwp’ 파일 내용 최초 공개
[검찰포렌식보고서 해부②]
“지난 80년대 초는 박근혜 후보가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음. 어린이회관과 유치원 등의 시설은 실무자들이 맡아서 운영을 했기 때문에 모르는 일들이다.”
JTBC가 입수해 보도한 태블릿PC(이하 ‘태블릿PC’)에 들어 있던 ‘유치원반론.hwp’ 파일의 내용이다. 문서 정보에 따르면 이 문서는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오후 7시26분36초에 작성되어 당일 오후 9시57분17초에 마지막으로 저장되었다. 마지막으로 저장한 사람은 ‘user’로만 되어 있다.
‘태블릿PC’에 해당 제목의 파일이 들어 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문건의 내용은 이번 <주간경향> 보도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기자가 이 파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사안이 당시 기자가 취재하고 있던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 유치원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반론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시사주간지의 마감일은 목·금요일이다. 기자 역시 이 날짜에 육영재단 유치원 의혹 기사를 마감 중이었고, 취재의 마무리 격으로 박선규 당시 박근혜 측 대변인에게 공식 질의를 한 상태였다. 당시 주간지 중에서는 시사저널과 본지가 해당 주제로 대동소이한 내용의 의혹기사를 썼다.(<주간경향> 1004호, “박근혜 육영재단 재임 시절 무슨 일 있었길래” 기사 참조) 이번에 입수한 ‘유치원반론.hwp’ 파일의 내용은 11월 29일 당일 오후 제보자 인터뷰 형식으로 출고된 한겨레 기사에 대한 2쪽짜리 반론문이다.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에 들어 있던 ‘유치원반론.hwp’ 파일. 2012년 11월 29일자로 작성된 이 파일은 당시 박근혜 후보가 육영재단 이사장 재임시절이었던 1980년대 초, 육영재단 어린이집 교사들을 술시중 들게 했다는 의혹제기에 대한 반론을 담은 것이다.
■ 여교사 술시중 접대 강요 보도 막전막후
당시 기사들에서는 제보 내용의 일부분만 언급되었다. 한겨레와 시사저널, 본지가 언급한 1980년대 초 ‘유치원 여교사 술시중’의 전후 사정은 당시 취재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당시 새로운 원장으로 온 사람은 중령 출신의 최모라는 여성으로 군대식 문화를 여교사들에게 강요했다. (제보자는 수개월이 지난 뒤 이 최씨 성을 가진 원장의 이름을 최경연으로 기억했다) 저녁 무렵으로 기억한다. 여름이 되어갈 때여서 해도 지고 오전·오후반 수업이 다 끝난 뒤, 안(능동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 있던 관람객도 모두 나가고 저녁만찬 식으로 하는 자리였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이사장의 육영재단이 신군부 고위인사들을 초대해 마련한 저녁만찬에 당시 최씨 성을 가진 어린이집 원장이 교사들이 남아 술시중을 들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술시중을 드는 방식은 신군부 인사들 사이 사이에 여교사를 배치해 술을 따르게 했다는 것이 제보자의 주장이다. 여기에 제보자와 다른 한 명의 여교사 등 2인은 ‘이게 무엇을 하는 짓이냐’고 화를 내고 가방을 싸서 나와 버렸다. “다음날 출근해보니 모두 얼굴이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당시 육영재단 어린이집 교사들은 보통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는 달랐다. 교사들 모두 초대졸 이상이었고, 또한 당시 KBS에서 제작되던 <TV유치원 하나둘셋>에 ‘하나언니’ 등으로 출연했었다.
“박근혜 이사장이 알뜰하게 사람들을 착취하는 구조였다.” 제보자의 말이다.
‘술시중 충격’의 여파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활달한 성격이었는데, 최 원장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 사건 후 우울증 비슷한 것이 생겼다. 결국 1985년쯤에 유치원을 그만뒀고, 이듬해 잠실 친척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보도가 나간 내용은 일부였지만, 의혹 검증 취재의 대부분은 이 유치원 교사의 자살과 그날 술시중의 관련성이었다.
■ ‘지시메일’로 이춘상 보좌관이 반론 담당
당시 육영재단 어린이집·유치원에서 근무한 동료 여교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찾아낸 경우도 ‘술시중 사건’ 자체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을 리 없다’고 답하는 등 잡아뗐다. <주간경향>은 숨진 김씨의 대학 동창으로 김씨와 같이 어린이집에 근무했던 인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한 어린이집 원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가 술시중 때문에 자살했다고 하면 내가 먼저 나서서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다. 지금 잣대로는 그때의 일이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잣대로도 이조시대의 일을 보면 문제였을 것이다. 기자분이시니까 그런 것은 잘 구분해서 보도하실 것으로 믿는다.”
기사를 마무리하면서 연락한 당시 박선규 새누리당 대변인 역시 이 인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답을 했다.
검찰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에 따르면 이 태블릿에서 ‘유치원반론.hwp’ 파일이 처음 등장하는 시간은 당일 오후 10시28분58초(2012년 11월 29일)다. 아래아한글 파일정보 상의 최종수정에서 약 31분41초 뒤다. 반론파일은 밖에서 작성돼 메일을 통해 전달됐고, 이 태블릿PC에서 열어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후로 이 태블릿PC를 사용해 남긴 흔적들을 살펴보면 10월 10일 이후 약 한 달간 사용이 정지되어 있었다. 그러다 11월 27일 다시 사용이 시작된다. 구체적으로 27일 오후 1시15분23초에 ‘한컴오피스 한글뷰어 안드로이드 에디션’이 설치되고, 3분 뒤인 1시16분6초에 구글Play 서비스가 설치된다. 설치메일은 모두 zixi9876@gmail.com이었다.
지난주 <주간경향>은 이 메일을 통해 이춘상·정호성·안봉근·이재만 등 4인방과 추가적으로 한두 사람이 암호를 사용해 지시메일을 주고받았던 내용을 추적보도한 바 있다. 이 ‘유치원반론.hwp’ 파일을 주고 받은 것도 zixi9876 메일을 통해서였을까.
검찰 태블릿PC 보고서의 파일들을 날짜 순으로 재정렬해 보면 27일 오후 1시11분에 ‘정지가 해제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SKT로부터 발송된다. 한동안 이 태블릿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zixi9876 메일을 통한 암호메일은 그날 오후 3시쯤부터 재개되는데, 위 ‘유치원반론.hwp’ 작성시간과 다운로드 시간 근처에서 발견된 암호메일은 다음과 같다.
제목: 춘.유치원… 공립유치원 예산삭감 파장
본문: 공립유치원 예산삭감을 둘러싸고 교원연합회와 대전시 의회 간의 마찰이 심화돼 그 파장이 날로…
이 메일이 발송된 시간은 2012년 11월 29일 오후 10시01분50초다.
고 이춘상 보좌관이 이 반론 작성과 검토·배포 관련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 태블릿 보고서를 검토하면 또 하나의 유치원 관련 기록이 나온다.
위 ‘반론.hwp’에 언급되어 있는 한겨레신문의 언론 보도를 태블릿으로 읽은 기록이다. 검찰 포렌식 보고서에 따르면 ‘박근혜 이사장 때 육영재단 교사 ‘결혼하면 퇴사’ 각서 강요: 사회 일반: 사회:뉴스:한겨레’ 파일을 태블릿에서 열었다가 열람기록을 삭제한 시간은 오후 6시33분46초다.
다시 말해, 이 태블릿PC의 사용자가 사용한 접속기록을 보면 네이버 속보→네이버 뉴스→박근혜 관련 기사 5건을 읽은 뒤 이 뉴스를 발견한 다음→한겨레신문 정치면에 접속한 뒤, 다시 서울신문의 ‘박근혜 유세 때 입는 패딩점퍼 도대체 얼마?’라는 기사를 읽는다.
검찰이 포렌식을 통해 복구해낸 삭제기록. 오후 6시 33분 46초에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육영재단 박근혜 이사장 관련 기사를 읽은 히스토리를 삭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위) 역시 포렌식을 통해 밝혀진 zixi9876@gmail.com 아이디 비번 공유를 통해 ‘지시’를 주고 받은 기록. 이날 22시 1분 50초에 제목과 본문에는 공립유치원 예산삭감과 관련한 기사를 오려붙여 위장했으나 ‘춘, 유치원...’이라는 표식을 통해 이춘상 보좌관과 관련된 업무로 이 유치원 반론문과 관련한 암호메일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반론 검토과정, 신혜원은 알 수 없었다
여기에 앞서 아래아한글 파일의 정보를 조합하면 약 한 시간 뒤 반론파일이 작성(오후 7시26분)되어, 다시 약 2시간 뒤인 9시57분에 마지막 수정작업을 거친 다음, 약 10분 뒤 zixi9876 메일을 통해 암호화되어 발송된다. 이 날짜로 이 태블릿에 남아있는 파일은 ‘유치원반론.hwp’뿐 아니라 ‘TV토론관련.hwp’, ‘옷1~옷3_1.jpg’ 파일도 있다. 역시 zixi9876 메일을 보면 정호성은 토론 관련, ‘건’으로 불린 인사는 옷과 관련된 업무를 분장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옷’은 앞서 이 태블릿 사용자가 ‘발견’한 한국일보 기사 ‘박근혜 유세 때 입는 패딩점퍼 도대체 얼마?’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태블릿PC의 사용자는 최순실일까. 아직 단언을 할 수 없다. 태블릿PC의 1차 검증작업을 총괄했던 손용석 JTBC 팀장은 “대부분 내용이 나온 것이라고 판단해 파일을 따로 공개하진 않았다”며 “유치원 관련 문건 작성자는 최순실로 추정된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2004년부터 사용한 PC의 유연’이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다른 중요 문서와 달리, 이 ‘유치원반론.hwp’ 작성자는 ‘user’라는 사용자 표기를 하고 있는 별도의 PC 사용자로 추정된다.
확실한 것은 태블릿으로 네거티브 뉴스 발견→지시→반론파일 작성 및 공유라는 과정에 지난 10월 8일 태블릿PC가 자신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주장했던 박근혜 선대본부의 신혜원씨가 끼여들 여지는 없다는 사실이다. 태블릿PC에 남겨진 정황은 이 태블릿PC 사용자가 박근혜 캠프의 핵심 관계자들과 공유하는 비선 지시자였다는 점이다.
“착하고 잘 웃고, 마음이 약한 친구였다. 그 친구 이야기를 다시 하니 잠이 오질 않네요.”
11월 3일 심야, 기자는 태블릿PC 안에 들어 있던 이 ‘유치원반론’ 파일 내용을 애초의 제보자에게 알렸다. 애프터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제보자는 이야기를 마치고도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했다. 기자는 아픈 기억을 다시 들추게 한 것에 대한 사과 의사를 전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 미안해서 그렇다. 이상한 그곳을 함께 지낸 동지이자 벗이었는데….” 제보자가 건넨 이야기 중 아직 검증되지 않은 중요한 이야기는 많다. 앞으로도 하나씩 짚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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