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9327.html?_fr=mt2


“가만히 있으라”던 1년 전과 대조…누리꾼들 빠른 대처에 ‘칭찬해’

등록 :2017-11-16 11:28 수정 :2017-11-16 16:16


하상욱 시인 “경주 지진 때 공부나 하라던 나라가 수능 연기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15일 저녁 경북 포항에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경부 포항 북구 흥해읍 한동대학교 건물 외벽이 무너져내렸다. 포항/김명진 기자 littlesprince@hani.co.kr

15일 저녁 경북 포항에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경부 포항 북구 흥해읍 한동대학교 건물 외벽이 무너져내렸다. 포항/김명진 기자 littlesprince@hani.co.kr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교육부는 15일 오후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시험장 균열, 방송시설 파손 등이 확인되면서 16일로 예정됐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23일로 연기했습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5일 저녁 8시20분 긴급 브리핑을 열어 수능 연기를 알리며 “수험생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내린 힘든 결정이며, 정부를 믿고 걱정하지 말고 1주일 동안 안정적인 수능 준비를 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안전


안전 이것이 정부가 밝힌 수능을 연기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7박8일의 동남아 순방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국길 전용기 안에서 포항 지진 소식을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도착 즉시 청와대에서 지진 관련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수능시험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되, 수험생들의 심리적 안정까지도 배려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지진 현장을 살펴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수능 진행이 여의치 않다”고 보고했습니다. 포항 지역 14개 고사장 안전 점검 결과도 ‘문제가 있다’ 였습니다.


하마터면 아찔한 상황을 맞을 뻔 했습니다. 15일 저녁 배포된 교육부 보도자료를 보면 포항 지역 수능 고사장 중에는 벽 균열은 물론 창문 출입문·교실 TV·형광등 등이 떨어지고 화장실이 부서진 곳도 있습니다. 이는 15일 오후 4시49분 규모 4.3의 여진이 발생하기 전에 우선 파악된 피해 상황입니다. 이후 여진이 계속됐으니 지금은 피해가 더 심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애초 예정된 수능시험 시작 시각인 16일 오전 9시에 포항에서는 또다시 규모 3.6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언어영역이 막 시작했을 시점입니다.


물론 다른 목소리도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포항 생각하면 수능 연기가 맞는데…59만 수험생 대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수험생 일부는 “수능일에 맞춰서 그간 컨디션을 조절해왔다”면서 패닉에 빠졌다. 대학과 고교 교사들은 “이제 뭘 어쩌란 것인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런 수험생도 있습니다. 고3 수험생 딸을 둔 이정렬 전 판사가 15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고3인 우리 딸 단톡방에 올라온 말

-경주 지진 때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수능 연기하는거 보니 ‘나라다운 나라’가 된 것 같다

-우리는 고3 때 대통령도 쫓아내고, 수능도 연기시킨 역사적인 고딩이다. 시험 전날 연기되어 허탈, 황당했을텐데 차분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님들. 멋져요”

하상욱 시인 트위터 갈무리

하상욱 시인 트위터 갈무리


교육방송에서 한국사 강의를 하는 최태성 역사교사도 말을 보탰습니다. 그는 15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불안함은 참아도 불편함은 못 참는 모습이 대형 참사를 불러 올 수도 있습니다. 여진이 남아 있기에 일주일 정도는 살펴봐야 합니다. 광복 이후 처음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겠네요. 모두들 무사하시길 기도합니다”라고 썼습니다. 하상욱 시인 역시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수능도 연기하는 나라가 됐다. 지진에 학교가 흔들려도 가만히 앉아서 공부나 하라고 했던 나라였는데”라며 지난해 경주 지진 당시를 되짚어 보기도 했습니다.


■ “가만히 있으라”던 박근혜 정부와 대조


지난해 9월12일 규모 5.8의 경주 지진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이 어떠했길래 이런 반응이 이어지는 걸까요. 15일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시각은 오후 2시29분 31초입니다. 2시29분34초에 이를 관측한 기상청은 19초 뒤에 조기경보를 발표했습니다. 조기경보 4초 뒤 긴급재난문자 송출이 시작됐고 전국 휴대전화로 긴급재난문자가 전송된 시간은 2시30분입니다. 서울·경기·대전 등 중부지역에선 긴급재난문자가 지진의 진동보다 빠를 정도였습니다. 지난해 경주 지진때는요? 최초 관측 뒤 8분이 지나서야 문자가 전송됐습니다.


15일 기상청이 전송한 포항 지진 관련 긴급재난문자 갈무리.

15일 기상청이 전송한 포항 지진 관련 긴급재난문자 갈무리.


문자만 늦은 게 아니었습니다. 경주 지진이 발생한 시간은 저녁 7시44분과 8시32분. 이는 1978년 기상청에서 공식적으로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황교안 전 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신해 지진 관련 정부 입장을 밝힌 시간은 밤 10시31분. 첫 번째 지진 발생 뒤 2시간47분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때는 이미 국민안전처 누리집이 먹통이 되는 등 국민들이 큰 불안과 불편을 겪고 난 뒤였습니다. 이번 포항 지진 발생 37분만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 부처 장관들에게 긴급 지시를 내린 것과 비교하면 그 간극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관련기사: 진동보다 빨라진 ‘지진 재난문자’… 어떻게 가능했나)


박근혜 정부의 ‘늑장 대응’ 때문인지 당시 지진 현장은 우왕좌왕이었습니다. 당장 저녁 시간에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일선 학교들이 혼란을 겪었습니다. 지난해 9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회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경북도교육청에서 제출 받은 자료를 보면, 경북지역 88개 학교 가운데 42곳(47.7%)이 경주 지진 발생 뒤 안내방송과 대피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은 당시 페이스북에 “아무리 입시가 중요하다지만, 1학년과 2학년만 귀가시키고 3학년은 야간자습을 강요했다. 자연재해가 발생했는데, 고작 교사 5~6명이 200명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니 너무 무책임하다”고 성토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기사: 지진, 여진…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밤새 공포에 떨었다)


■ 누리꾼들 “안전 먼저…정권 교체 실감”


누리꾼들은 안전을 최우선시한 문재인 정부의 전격적인 수능 연기를 대체로 반기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경주 지진 당시 박근혜 정부의 ‘뒷북 대응’과 비교하며 “정권 교체가 실감난다”는 반응입니다.


“수능 연기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능보다 수험생의 안전을 먼저 고려한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결정이다. 처음에 그 소식을 불신했던 건 정부가 제 역할을 ‘안’ 했던 지난 적폐 정권 9년의 후유증이 아닐까”(@dnjswjd****)


“정말 정권이 바뀌었구나. 저번 9년 간의 정부가 현재까지 계속 되었으면 수능은 오늘 봤겠지? 난 여태 수능이 무엇보다 우위라고 생각해왔으며, 대학이 무엇보다 중요해왔다고 느껴왔는데. 그런데 오늘 정부의 당연한 대책에 내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음”(@Late_Wint****)


“문재인 정부의 수능연기 결정과 그에 대한 호평은 시대가 ‘운 나쁜 소수를 버리는 정책’이 아니라, ‘소수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은 조금씩 변해 그때와는 다른 나라가 되었다”(@streamOfMe****)


“수능이 연기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정부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결정하는 것도 놀랐으며 지진 재난 문자가 일본 급으로 빠르게 왔다는 것도 놀랐다. 그냥 전에는 있을 수 없던 것이, 비정상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정상이 어색함”(@109ba****)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다음 이미지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