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302N022


2 제2의 달로 변신하는 소행성

태양 돌지만 지구의 달 흉내낸다


2002년 9월 3일 미국 애리조나주의 한 아마추어 천문가가 특이한 천체를 하나 발견했다. 밝기 16등급, 크기 20-30m. 그리고 1분에 한번씩 자전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문제의 천체에 ‘J002E3’이라는 임시이름을 붙여 국제천문연맹 소행성센터(MPC)에 보고했다. MPC에서는 알려진 소행성과 최근 발사된 우주선의 궤도를 면밀하게 검토했지만, J002E3과 일치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외계인이 조종하는 우주선일까. 하지만 우주선치고는 궤도가 좀 특이했다. 괴물체는 48일 주기로 지구를 공전했는데,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만큼 접근했다가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두배까지 멀어지는 타원형 나선궤도를 그렸다. 또 스스로 추진력을 가졌다는 증거도 포착되지 않았다. 단지 태양과 달의 영향으로 인해 궤도가 변한다는 사실이 확인됐을 뿐이다.


한편에서는 최근 지구 중력권에 들어와 새로운 달이 된 소행성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J002E3의 움직임은 지구접근소행성의 운동속도와 일치했다. 과거 소행성들이 화성과 목성의 달이 된 것처럼 J002E3도 지구 중력에 이끌려 지구의 달이 됐을 수도 있다.


달로 둔갑한 우주쓰레기


아폴로 우주선의 로켓. J002E3은 아폴로 12호의 3단 로 켓 S-IVB로 밝혀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미국 애리조나대 관측팀이 J002E3에 대해 스펙트럼 관측을 시도한 결과, 산화티타늄(TiO)의 고유 스펙트럼과 일치하는 ‘지문’이 나타났다. 이 지문은 30년 전 아폴로 로켓에 사용됐던 페인트의 성분임이 밝혀졌다. J002E3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폴로 로켓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 고철 덩어리는 대체 어디 있다가 최근에야 우리 눈에 띈 것일까. 미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팀은 J002E3의 궤도를 과거로 되돌려 역추적했다. 그 결과 수수께끼의 물체는 1971년 경 발사돼 태양을 공전하다가 최근 지구 중력에 붙잡혔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첫 후보는 1971년 1월 발사된 아폴로 14호. 하지만 당시 임무에 사용됐던 다단 로켓의 경로를 관제소에서 끝까지 추적, 한개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제 범인은 아폴로 12호의 3단 로켓 S-IVB로 좁혀졌다. 아폴로 12호 승무원들은 1969년 11월 15일 연료가 바닥난 상태에서 S-IVB를 폐기했다. 계획대로라면 태양 궤도에 진입했어야 했지만, 뭔가 잘못됐다. 점화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태양 궤도 진입에 실패, 지구와 달 사이의 불안정한 궤도를 선회하게 됐으며, 언제 가시권을 벗어났는지 곧 잊혀졌다.


2002년 10월 전문가들이 궤도계산을 수행한 결과, S-IVB의 행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S-IVB는 1969년 발사 직후 43일 주기로 지구를 공전하다가 1971년 3월 그 궤도를 탈출했다. 이후 31년 간 지구 안쪽 ‘트랙’을 따라 태양을 공전했으며, 2002년 4월 지구 궤도에 재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발사체의 이런 ‘궤도전이’ 가능성은 이미 오래 전에 예견됐다. J002E3은 그 첫 사례로 기록됐다.


한편 J002E3 발견 직후, 수십년 내에 지구(또는 달)에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발표됐다. 하지만 새로운 관측자료와 과거 데이터가 추가됨에 따라 충돌 가능성은 1%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그럼 이 고철 덩어리의 운명은? J002E3은 2003년 6월 지구 궤도를 탈출한 뒤, 2040년 중반 이후 재진입하며 수천년 이후 달(또는 지구)에 충돌, 긴 일생을 마감하리라 예측된다. 결국 J002E3은 지구의 동반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된 셈이다.


달에 대한 세번째 정의


우리가 신처럼 전지전능하다면, 그래서 소행성 하나를 지구 궤도에 갖다놓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은 ‘어디에 놓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소행성은 위치에 따라 궤도상에 머무르거나, 표류하거나, 아니면 지구에 충돌하는, 셋 중의 한가지 운명을 맞는다.


지구 주변에는 태양과 지구 인력이 상쇄돼 역학적으로 안정된 지점이 다섯군데 있다. 이곳을 ‘라그랑지 점’(Lagrange points)이라고 부르고 L1-L5로 나타낸다. L1, L2, L3의 경우 다른 행성들에 의한 중력적 영향(섭동)에 민감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면 평형이 깨질 수 있지만, L4와 L5는 섭동에도 끄떡 없다. 물론 지구의 L4와 L5에는 현재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의 라그랑지 점 지구 주변에 태양과 지구 인력이 균형을 이루는 다섯 지 점이 있다. 이 가운데 L4와 L5가 가장 안정해 이곳에 소 행성이 자리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목성 궤도에는 태양-목성 기선을 중심으로 ±60°를 이루는 곳인 L4와 L5 지역에 소행성 무리가 존재한다. 이들은 ‘트로이 소행성’이라 불린다. 트로이 소행성은 최근까지 목성 주변에서 1천5백50여개나 발견됐다. 트로이 소행성은 목성의 공전주기와 같은 11.86년마다 태양을 공전한다. 이처럼 행성과 소행성의 공전주기가 똑같을 때 1:1 주기공명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1:1 주기공명을 일으키는 소행성은 모행성과 궤도를 공유하기 때문에 ‘궤도 공유 소행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트로이 소행성과 같은 궤도 공유 소행성 가운데 행성에 가까운 종류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행성의 ‘달’이라 불릴 수 있을까. 여기서 ‘달’의 정의에 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달은 (1)행성급 천체와의 충돌로 탄생해 크기가 모행성과 비교될 만큼 크고 원에 가까운 궤도를 도는 천체, 또는 (2)행성과 소행성간, 또는 소행성간 충돌 결과 형성돼 행성 주위를 공전하는 작은 파편들을 뜻한다. 우리의 달은 물론 첫번째 범주에 속하며, 원시지구가 화성 크기의 천체와 충돌할 때 그 잔해로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는 ‘달’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트로이 소행성처럼 1:1 주기공명을 일으키며 궤도를 공유하는 소행성 가운데 행성과 가까운 거리를 두고 공전하는 종류는 특별히 ‘준위성’(quasi-satellite)이라 불린다.


준위성의 실제 궤도 준위성은 실제 지구처럼 태양 둘레를 돌고 있지만(그림 2), 지구를 고정시켰을 때는 지구 주변을 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3). 준위성은 행성과 궤도를 공유하는 소행성 가운 데 비교적 행성에 가까운 종류다.



물론 전통적인 달과는 구별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기존의 달은 행성을 돌지만, 준위성은 행성이 아니라 태양을 공전하기 때문이다. 또 준위성은 기존의 달보다 비교적 거리가 멀기 때문에 모행성이 위성으로 영원히 붙잡아두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외행성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천왕성이나 해왕성에서는 준위성의 상태가 45억년 간이나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또 목성의 경우 1천만년, 토성은 10만년보다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된다. 이들 준위성이 기존의 달처럼 행성의 중력에 구속된 것은 아니지만, 수천-수만년 동안 행성 주위를 도는 달 흉내를 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달에 대한 세번째 정의는 이렇게 내려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시적으로 행성 궤도에 포획되거나, 모행성과 궤도를 공유하는 소행성’이라고.


말편자형 궤도로 보인다


크루엔야의 겉보기 궤도


지구 근처에서도 달의 ‘세번째 정의’에 해당하는 소행성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지구 궤도를 공유하며 지구의 두번째 달이라 불리는 지구접근소행성 ‘크루엔야’(Cruithne)다. 크루엔야라는 이름은 기원전 800년-500년 사이 최초로 영국 땅을 밟은 켈트족을 일컫는다. 1986년 10월 호주 사이드스프링천문대에서 발견된 이 천체는 이름만큼이나 궤도가 특이하기 때문에 발견 12년만인 1997년에야 그 궤도에 관한 수학적 모델이 확립됐다. 크루엔야의 이런 궤도 모델은 캐나다의 폴 위거트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으며, 이들의 연구결과는 같은 해 영국의 ‘네이처’ 6월 12일자에 실렸다.


5km 크기의 소행성 크루엔야의 움직임을 아주 먼 우주공간에서 내려다본다면 단순하게 나타날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에 한번씩 공전할 때 크루엔야도 태양 주위를 1년에 한번씩 공전하는 것으로 말이다. 유심히 보면 크루엔야는 지구에 접근했다가 멀어지는 운동을 되풀이하는데, 실은 태양 둘레를 돌며 지구와 궤도를 공유할 뿐이다. 크루엔야는 1:1 주기로 지구 궤도를 공유하는 소행성인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북극 바로 위에 떠있는 관측자에게(지구를 궤도평면에 고정시켰을 때) 크루엔야는 복합적인 두가지 움직임을 보여준다. 먼저 크루엔야은 매년 강낭콩(콩팥) 모양의 궤도를 그리며 지구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크루엔야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속도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 강낭콩 모양의 궤도는 매년 조금씩 지구 궤도를 기준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강낭콩 모양의 궤도가 태양 주위의 지구 궤도를 한바퀴 도는데는 자그마치 3백85년이 걸린다. 결국 3백85개의 강낭콩 궤도가 나선형으로 이어지면서 겹쳐져 거대한 ‘고리’처럼 나타난다.


사실 간단한 궤도 공유 모델을 살펴보면 지구를 궤도 평면에 고정시켰을 때 최종적인 궤도의 모습은 완전하게 이어진 고리라기보다는 고리의 한쪽이 뚫린 말편자 모양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소행성은 단순히 말편자형 궤도를 그리던지, 나선형으로 맴돌면서 말편자형 궤도를 그린다. 그래서 궤도 공유 소행성의 궤도는 흔히 ‘말편자형’이라 불린다.


그런데 소행성 크루엔야는 지구접근소행성이기 때문에 지구와 상당히 가까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혹시 지구와 부딪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안심해도 좋다. 소행성 궤도는 지구 궤도와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실제 소행성 크루엔야는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40배 지점보다 더 가까이 지구에 접근하지 않는다. 매년 가을 지구와 가장 가까운 지점을 지나는데, 이때도 남극 바로 밑을 통과한다.


크루엔야는 최소 5천년 간 말편자형 궤도를 따라 운동할 것으로 예측된다. 태양계를 떠돌던 천체가 ‘달’이 돼 수천-수만년 동안 같은 궤도에 머물 수 있다는 역학 모델이 검증된 셈이다.


6백년 후 등장할 새로운 달


2002 AA29의 준위성 단계 궤도 공유 소행성 2002 AA29는‘달처럼’지구를 선회하 는 지구의 준위성 단계에 머물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2 AA29는 2002년 1월 미 공군과 MIT 링컨연구소 소속의 리니어(LINEAR)팀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그후 미국, 캐나다, 핀란드 등 다국적 천문학자들이 공동으로 그 궤도특성을 조사했다. 2002 AA29는 궤도 공유 소행성이지만, 때때로 준위성이 될 수 있는 특이한 소행성으로 밝혀졌다.


축구장만한 크기의 소행성 2002 AA29는 실제로 매년 지구처럼 태양을 한바퀴씩 공전하며, 크루엔야보다는 원에 가까운 궤도를 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02 AA29는 지구와 궤도를 공유하므로 지구의 관점에서는(지구가 궤도평면에 고정돼 있다고 가정할 경우) 지구 궤도를 나선형으로 감싸는 말편자형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2002 AA29는 말편자형 궤도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까지 움직이는데 95년 걸리며, 95년마다 지구에 근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올해 1월 9일 새벽에 지구에 접근했으며, 접근 거리는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12배라고 예측됐다. 이제 2002 AA29는 지구에서 점차 멀어졌다가 95년 후인 2098년에 다시 지구에 접근할 것이다.


특이하게도 2002 AA29는 말편자형 궤도를 움직이는 동안 일부 기간을 준위성 상태에 머무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약 6백년 후인 2575년 지구의 준위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2 AA29가 준위성 상태에 머무는 50여년 동안에는 이 작은 소행성이 지구를 1년에 한번씩 공전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렇듯 두개의 공전모드를 갖는 천체는 2002 AA29가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여하튼 이 놈은 명백하게 지구의 두번째 달은 아니지만, ‘달’ 흉내를 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전문가들의 계산에 따르면 2002 AA29는 서기 550년에서 600년 사이에 이미 준위성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소행성이 너무 작아서 당시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2002 AA29는 태양을 공전하지만, 크루엔야보다 더 ‘달처럼’ 지구를 선회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자칫 지구의 달로 오인받기 쉽다.


한편 크루엔야나 2002 AA29와 같은 소행성은 미래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소행성까지는 비행거리가 짧기 때문에 향후 유인우주탐사기지로 손색이 없으며, 더불어 가까운 미래에 광물자원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또한 2002 AA29와 같은 준위성 궤도에 인공위성을 갖다 놓는다면 아직 미개척 분야로 남아있는 소행성의 화학조성과 기원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2 AA29의 궤도 지구를 고정시켰을 때 2002 AA29의 궤도는 거의 원모 양의 말편자형태를 이룬다. 2002 AA29는 지구 궤도를 매 년 한번씩 나선형으로 감싸고, 말편자형 궤도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까지 움직이는데는 95년이 걸린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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