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80210230610317?s=tv_news


"박종철 고문 경관, 한 달 뒤 또 물고문" 31년 만의 증언

김종원 기자 입력 2018.02.10 23:06 


<앵커>


검찰 과거사위원회 조사 대상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포함됐습니다. 1987년 당시 경찰은 고문에 가담했던 경찰관 3명을 숨기며 사건을 조작했는데, 그때 숨겨졌던 고문 경관이 박종철 열사가 숨진지 1달 여가 지난 시점에 또 물고문에 가담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 고문 피해자를 김종원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1987년 2월 25일,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후 불과 한 달 열하루가 되던 날 밤 서강대 4학년생 김기식 씨가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불법 시위 혐의로 쫓기던 김 씨는 서울 장안동의 시경 대공분실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김기식/1987년 2월 경찰 고문 피해자 : (경찰이) "말 안 해? 물 받아" 물이 막 지저분하고 담배꽁초 같은 것도 있고, 욕조 안에.]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의 거짓 발표에 온 사회가 들끓었던 그때에도 고문은 여전히 자행됐고 더 교묘해졌다고 했습니다.


박종철 군이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걸 의식해서인지 욕조에 몸이 닿지 않게 자신을 고문했다고 합니다.


[김기식/1987년 2월 경찰 고문 피해자 : 팬티만 입고 뒤로는 수갑 채우고, 수건으로 다섯 군데쯤 묶었던 거 같아요. 여기 묶고 여기 묶고 눈도 묶고. 갑자기 내 몸이 번쩍 들리더라고요, 번쩍. 번쩍 들리더니 거꾸로 확 뒤집히는 거야. 그러더니 어느 순간에 콱 물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금방 코로 막 입으로 막 물이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김 씨를 고문했던 경찰관 중 한 명이 박종철 사건 직후 경찰이 은폐한 고문 경관 3명 중 한 명, 이정호 경장이었다고 합니다.


남영동에서 장안동 대공분실로 근무지만 옮겨 또 고문에 가담했단 겁니다.


[김기식/1987년 2월 경찰 고문 피해자 : "야, 너도 잡아!" 그 소리가 들리더라고. 내가 막 몸부림을 치니까 이정호(故 박종철 군 고문 경찰관)가 와서 잡았던 거 같아.]


3월에 검찰에 송치된 뒤 김 씨는 고문 당한 사실을 검사에게 알렸지만 싸늘한 반응에 몸서리를 쳤다고 합니다.


[김기식/1987년 2월 경찰 고문 피해자 : 약간 비아냥대듯이 이렇게 묶여 있는데 내 어깨를 꽉 쥐면서 '어유, 고문을 당하셨어? 그러면 안 되지' 하는데, 순간적으로 (어깨를) 딱 잡을 때 '아유, 내가 이 얘기를 괜히 했나, 여기서 (고문을) 더 당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런데 검찰은 박종철 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늦어도 2월부터는 알고 있었습니다.


수사검사였던 안상수 현 창원시장은 고문 경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2월 27일 알게 됐다고 했고 박상옥 현 대법관은 3월 초 알게 됐다고 인사청문회에서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김 씨가 검찰 조사를 받은 3월이면 이정호 경장이 박종철 사건의 고문 경관이란 걸 검찰도 알고 있었는데 고문을 당했다는 김기식 씨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지도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던 겁니다.


조작 은폐가 만천하에 폭로된 뒤인 6월 말 재판에서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고 합니다.


[김기식/1987년 2월 경찰 고문 피해자 : '내가 고문으로 여기(재판)까지 왔고 그래서 난 이 재판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판사에게) 했었거든요. 그랬더니 그 판사분이 (검사에게) '저 얘기 확인해 봤어요?' 그랬더니 검사가 '(확인해 봤는데) 사실이 아니랍디다' 그런 식으로 검사가 얘길 했었어요.]


결국 이정호 경장은 박종철 사건만으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살았는데 출소 뒤 근무했던 경찰공제회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앵커>


김종원 기자, 박종철 고문 경관이 고문을 계속했다는 얘기는 처음 나오는 것 같은데요, 김기식 씨는 31년 만에

왜 이런 증언을 한 건가요?


<기자>


김기식 씨는 서울의 한 구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분입니다. 지금까지는 박종철 열사 고문 경관들이 다 처벌받았는데 들춰내 뭐 하나 싶어 얘길 안 했다고 하는데요, 영화 1987이 개봉하면서 다시 사회적 관심도 생겼고 역사의 기록으로 분명히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에 결심했다고 합니다.


<앵커>


고문 당했다고 하는데도 검사가 수사하지 않았다는 건데 당시 검사들은 뭐라고 하나요?


<기자>


김기식 씨는 자신을 수사했던 검사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판결문에 남아 있는 공판검사 이름만 알고 있습니다.


공판검사는 지금은 변호사인데 재판에서 '확인해 봤는데 사실이 아니랍디다' 라고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알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앵커>


김 씨 증언은 조사해봐야겠지만 사실이라면 파장이 크겠어요.


<기자>


검찰이 박종철 사건 조작 사실을 언제 알았느냐, 축소 은폐를 방조 내지 협력하지 않았느냐는 의심은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고 그래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된 겁니다.


검찰이 1월, 1차 수사 때 이미 사건 조작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아직도 제기되는 실정입니다.


사실이라면 김기식 씨가 고문을 당했다는 2월 25일 이전에 사건 조작이 드러나 추가 고문을 막았을 수도 있는 것이죠.


검찰이 이번에 어느 정도 의지를 갖고 재조사를 하느냐가 관건인데 저희도 계속 취재하겠습니다.


<앵커>


오늘 김기식 씨가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는데요, 김종원 기자가 그 현장도 취재했습니다.


<기자>


다시 만난 김기식 씨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습니다.


박종철 열사 숨진 9호실 앞.


[김기식/1987년 2월 경찰 고문 피해자 : 야만의 현장 아닙니까, 여기가? 저 (욕조) 턱에. 턱에 (목이) 눌려서….]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숨진 뒤에도 고문은 여전했지만 박 열사의 죽음이 있었기에 고문에 맞서 저항할 수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김기식/1987년 2월 경찰 고문 피해자 : (고문을 못 견딜 것 같아서) 책임자라는 분을 불러달라 그랬어요.

'내가 여기서 살아나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내가 (고문)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그때부터 (경찰)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요. 그때부터 고문이 중단된 거죠.]


김 씨는 오늘 다른 고문피해자 3명과 함께 당시의 끔찍한 경험을 시민 앞에서 공개했습니다. 이 용기를 내는 데 31년이 걸렸습니다.


[김기식/1987년 2월 경찰 고문 피해자 : 우리 모두의 한과 짐을 박종철 열사가 안고 가신 거예요. 이 죽음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도 그 고문의 공포와 고통에서 벗어 나지 못했을 겁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박춘배·오영택)     


김종원 기자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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