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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귀국 환영한 이승만 “미국이 우리를 두려워해서…”

등록 :2018-03-10 03:28 수정 :2018-03-10 11:32


[고석만의 첨병] ⑨ ‘제1공화국’ 첫회 ‘이승만과 김구’

‘첫 장면’ 1945년 8월15일 오전 8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관저 접견실

엔도 “치안책임을 수락하시겠소?” 몽양 “다섯가지 수락 조건이 있소”

“고하는 나를 뻬땅이라 하셨다죠?” “몽양, 의리상 임시정부 지켜야죠?”

45년 10월16일 귀국 이승만 성명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습니다”

11월23일 임정요인과 환국한 김구, 이승만 주선 하지 만났으나 ‘단 2분’

12월28일 ‘삼상회의’ 신탁통치 발표, 이틀 뒤 ‘찬탁론’ 고하 송진우 ‘암살’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털어놓는다.



“빠바밤 빠바밤 빰빰빠빠” “파시파 시파미 솔미시b파b” 트럼펫이 팀파니의 떨림 속에서 하늘을 찌르면, 제1공화국 시절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 선율을 타고 타이틀로 떠오른다. 이 땅에 최초의 정통 정치드라마 <제1공화국>이 시작된다. 1981년 4월2일 첫 회를 생중계하듯 글로 옮겨본다.


대하정치 드라마 <제1공화국>의 첫 장면. 1945년 8월15일 오전 8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관저의 접견실에 서 있는 몽양 여운형(김길호)이 등장한다.


<제1공화국> 첫 장면에서 정무총감 엔도(고설봉)는 1945년 8월15일 낮 12시 천황의 항복선언 방송을 알리며 여운형에게 치안책임을 맡아달라고 요청한다.


S# 첫 장면, 조선총독부


시계의 초침이 8시에 다가간다. (자막: 1945년 8월15일 목요일 오전) 8시에 초침 맞춰지고 ‘땡땡’ 치면 카메라 빠지고 일장기가 보이는 접견실에 여운형(김길호)이 서 있다. 흰색 정장. 곧이어 군화 소리와 함께 일본 총독부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고설봉)가 들어선다. 엔도와 여운형, 서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뒤.


엔도: 오늘 정오에 (차렷자세) 우리의 천왕께서 하는 중대발표가 있을 겁니다. (즉시 통역) 포츠담 회담의 결과를 수락합니다. (여운형 짐작했지만 크게 놀라고) 17일 오후 2시까지는 소련군이 경성에 진주합니다. 앞으로 조선은 남북으로 갈라져 한강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통치하게 될 것이오. 불상사를 막기 위해, 오늘부터 우리 일본인의 신변안전을 당신에게 맡기겠소, 치안책임을 수락하시겠소?


여운형: 수락하겠소이다. 즉시 전국의 정치범 사상범을 석방하고, 그밖에 (준비한 쪽지를 꺼내며) 다섯가지 조건이 있소. (여운형의 말은 계속되고, 화면 바뀌면)


S# 조선총독부 앞.


총독부의 일본 군인들은 사열종대로 부산하게 움직이는데, 그 사이를 여운형 걸어 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서민들은 힘없이 오가고 있고… 한여름의 매미는 맹렬하게 울어대고… 태양은 정오를 향해 간다.


S# 송진우의 사랑채.


송진우(박근형)와 김준연(최명수)이 여운형을 비판하고 있다.


송진우: 일본은 꼭 망한다. 일본이 진퇴유곡에 빠질 때, 독립을 준다고 할 때, 결코 나서서는 안 된다. 그때가 우리에게는 위험한 때이다. 민족의 반역자는 망해가는 정권을 받는 것이다. 불란서(프랑스)의 뻬땅 정권을 봐라! 중국의 왕조명을 보아라! 비율빈(필리핀)의 라우렐을 보아라! 해외에 나가 계신 이승만 박사, 김구 선생 돌아오시고 난 다음에 그분들을 모시고 해야 한다.


S# 여운형의 방.

민세 안재홍(변희봉)과 함께 손을 잡고 ‘건국 준비’를 결의한다.


S# 광주 벽돌공장에서 은둔하고 있는 박헌영(홍성민) 세상의 변화를 노려보고 있다.


S# 정오, 일왕의 항복 방송. 태극기가 만세 함성과 함께 거리에 쏟아져 나온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을 추고/ 한강물이 용솟움치리라던 그날.” 1945년 8월15일은 이렇게 왔습니다. 긴 식민지 시대는 막을 내리고 독립의 시대가 왔습니다. 새로운 정치드라마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그 드라마는 분열에서 시작됩니다.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한 한민당 민족주의 계열과 건국준비위원회 여운형 계열의 대립. 이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그려내는 정치드라마. (심훈의 ‘그날이 오면’과 함께, 성우 김종성의 첫 해설과 감동)


S# 송진우의 사랑채.


고하 송진우와 몽양 여운형의 대립

여운형: 고하는 나를 가리켜 뻬땅이라고 하셨다죠? 어떤 논거로 그러셨는지요.

송진우: 그것은 몽양을 두고 한 말은 아니지요. 곧 연합군이 들어오고… 해외의 선배들이 들어오시고, 미국의 이승만 박사, 중경의 임정이 들어오신 다음에.

여운형: 우리 두 사람 간에 견해 차이가 있는 듯한데…, 그건 풀어 나가면 될 일이고….

송진우: 몽양. 의리상 임시정부를 지켜야 하지 않겠소. 내가 보기에 몽양은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여운형: (버럭) 내 개인이 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지 않소.


S# 심야의 서울, 골목골목에 사람을 시켜 벽보를 붙이고 다니는 박헌영. “나타나시라 박헌영 동지” “우리의 시기는 드디어 왔다” “노동자여 일어나라”


해방정국 남한 좌익세력을 대표하고 있던 박헌영(홍성민)과 김삼룡(백인철·왼쪽), 이강국(현석·오른쪽).


S# 여운형과 안재홍과 박헌영의 합작. 1945년 9월6일 그들은 건국준비위원회 이름으로 ‘조선인민공화국 전국대표자회의’를 조성한다. 한편 동아일보사에 모인 한민당 계열의 김성수, 송진우, 김준연, 장덕수, 조병옥, 장택상 등은 연합군 환영 준비를 서두른다. 그러나 두 계열의 공통점은 이승만과 김구를 내세운다. 두 사람을 업어야만 하는 정파의 속셈. 이 땅의 운명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할 주인공. 이승만과 김구.


S# 1945년 9월7일. 연합군 입성. ‘쌍두의 독수리’ 행진곡에 맞춰 보무도 당당하게 진주한다. 시민들은 박수치며 환영하고 연합군은 아이들에게 초콜릿, 추잉껌을 뿌리며 이 나라에 상륙했다.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 제24사단과 7함대가 입성하고 정식으로 일본군의 항복문서를 받아낸다. 오후 3시42분. 이로써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할 때까지의 3년, 하지 시대가 개막했다. 아메리카니즘의 상륙이다. 정치적 데모크라시가 상륙한 것이다. 미군. 그 문명의 상륙. <제1공화국>의 주인공은 이 땅의 민주주의다.


1945년 10월16일 일본을 거쳐 개인 자격으로 입국한 이승만은 이튿날 경성중앙방송국에서 라디오로 대국민 귀국 성명을 발표한다.


S# 1945년 10월16일 이승만 귀국, 이튿날 성명(라디오): “조국을 떠난 지 33년 만에 처음으로 돌아와 고국 삼천리를 또다시 돌아보니, 기뻐서 웃음도 나고, 슬퍼서 눈물도 납니다.”


이승만의 그 능수능란한 제스처와 화술. 71살의 노인이 어떻게 정권을 잡아가는지 지켜볼 것이다. 이승만 역의 최불암은 이승만보다 더 이승만 같다.


이승만: “연합군 사람들 한번 기회를 주고 협력하면, 다 잘될 것을 내가 압니다. 일반 동포들에게 말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승만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 임영신(정혜선)의 손을 어루만지는 이승만, 돈암장(장진섭 댁)을 임시 거처로 마련한 송진우·장덕수 등 한민당 계열은 정치자금을 헌납한다. 정치자금을 앞세운 한민당 계열과 밀착되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승만은 한 계파의 우두머리로 만족할 인물이 아니다.


1945년 10월23일 이승만(단상 맨가운데·최불암)은 한국민주당, 국민당, 건국동맹, 조선공산당 등 각 정당과 20여개 사회문화단체가 참여하는 ‘대한독립촉성협의회’ 창립총회에서 총재로 추대된다.


S# 3파가 모인 ‘대한독립촉성협의회’ 창립총회에서 이승만은 연설을 통해 ‘김구예찬론’을 펼친다. 그의 저의가 들여다보인다. “임정은 피 흘려 싸워 각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습니다. 곧 고국에 귀국할 것입니다. 김구 선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권력엔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조국이 독립되기만 할 양이면 정부청사의 수문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공산당과의 이별을 단호하게 선언한다.


1945년 11월23일 백범 김구는 임시정부 요인 20명을 이끌고 환국한다. <제1공화국>을 시작으로 탤런트 이영후는 백범 전문 연기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S# 1945년 11월23일, 임정 제1진 환국. 수송기를 전세 냈다.


미 수송기를 타고 환국하는 김구(이영후) 주석과 그 일행 20명. 그 귀국 비행기는 초라하다 못해 화물창고를 방불케 한다. 김구 옆에 이시영(이도련), 김규식(이묵원), 엄항섭(박광남), 신익희(전운), 지청천(한규희), 장준하(정승현) 등이 보인다. 유일한 여성인 김구의 며느리(송옥숙)도 있다.


김구: “우리는 개인의 자격으로 환국하는 것이다. 환국 뒤에도 성급히 보따리를 끄르지 마라. 우리는 27년 전통을 가진 임시정부임을 잊지 마라.”


비행기가 한반도 상공에 들어서자 감회에 젖어 누군가 애국가를 시작한다. 이어 모두 따라 부르니 거대한 합창이 된다. 애국가를 부르는 그들은 소리 내어 운다. 이를 보고 있던 미군도 숙연해진다. 비행기가 여의도 공항에 착륙하고 트랩이 닿으면 김구 일행이 나온다. 그들은 텅 빈 비행장을 맞으며 놀란다. 단 한 명의 영접 인사도 없는 것이다. 장준하는 “임시정부의 귀국인데…. 백범 선생의 환국인데….”


그때 미군 지프차 한 대가 달려와 김구만 태우고 어디론가 간다. 나머지 일행도 미군 버스에 태워진다. 지금, 임정의 환국은 귀국성명 한마디 없이 이뤄진다.


S# 하지의 성명이 발표된다. “임정의 귀국은 개인 자격이다.”


1945년 10월16일 귀국한 이승만과 11월23일 환국한 김구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위해 처음 연대의 손을 잡는다. 46년 2월8일 인사동에서 각각 이끌던 대한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중앙위원회를 통합해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발족한다. 총재로 추대된 이승만(최불암)과 부총재 김구(이영후)·김규식(이묵원)이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장면.


S# 우남 이승만(최불암)과 백범 김구(이영후)의 만남.


이승만: 미국이 환영식도 못하게 하고….

김구: 형님 때도 그랬다지요?

이승만: 미국이 김구 선생과 나를 두려워해서….


두 거물의 34년 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동안, 임정의 공보담당 엄항섭(박광남)은 기자회견을 한다. “27년간 꿈에도 잊지 못하는 조국강산을 다시 밟으니 나의 흥분되는 정서는 형용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는 평민의 자격으로 우리의 독립 완성을 위해 진력을 다할 것입니다.”


S# 귀국 바로 다음날, 이승만의 주선으로 김구는 하지를 만난다. 하지는 단 2분만 대면을 허락한다.


1945년 11월24일 상하이에서 임정 요인들과 환국한 이튿날, 백범 김구(가운데)가 이승만(왼쪽)과 함께 미군정청을 방문해 하지(오른쪽) 준장과 첫 인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S# 이후, 김구는 국내 정치인들을 연쇄적으로 만난다. 안재홍(변희봉)으로부터는 총단결 결의를 다지고, 송진우(박근형)는 다섯가지 제안서를 제시한다. 김구는 아주 좋은 착안이라며 추후 의논하기로 한다. 올해 환갑을 맞은 몽양 여운형(김길호)에게는 건강을 기원하고, 허헌(김수일)과 이강국(현석)을 맞이한 김구는 그들에게 의례적인 인사만 한다. 그런데 경향 각 신문은 ‘김구와 공산주의 결탁’으로 대서특필된다. 한민당에는 파란이 일고, 김구와 임정은 크게 반발·흥분에 빠지며, 지하의 박헌영(홍성민) 일파는 ‘완고한 노인’이라며 결별을 고한다.


S# 밀월 시기, 임정이 귀국해서 얼마 동안 밀월이 계속된다. 송진우가 승용차를 보내주기도 하고, 뒤이어 당시로서는 거액인 900만원이라는 돈을 정치자금으로 임정에 가져다준다. 김구는 “이것은 분명히 일제의 비호하에 부당하게 돈을 벌고 있던 친일분자들로부터 면죄부 판매금으로서 모인 앞잡이의 돈이다. 맨주먹으로 귀국한 우리들이 아무리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만큼 자금에 궁해 있었다고 하더라도, 친일 무리에게 금전 조달을 받을 수는 없다.” 임정 내부에서는 받느니 안 받느니 의견이 대립된다. 그러나 김구의 단호한 결정으로 송진우에게 다시 돌려진다. 이것은 임정과 한민당 사이가 벌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승만은 그 뒤 900만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자기에게 가져오지 않고 김구에게 가져가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느냐며 송진우에게 호되게 화풀이를 한다.


1945년 12월28일 신탁통치 발표가 나자 고하 송진우(왼쪽 박근형)가 백범(오른쪽)을 찾아가 ‘찬탁’ 설득을 하는 장면.


S# 1945년 12월28일, 모스코바 ‘삼상회의’ 신탁통치 발표.

백범: 또 한번의 독립운동이다. 이것은 제2의 독립운동이다.

고하: 삼천만이 한데 뭉쳐 반탁운동을….

백범: 또 하나의 식민지 통치다. 이 기회에 투쟁을 선언하고…. 3천만이 하나 되어….

고하: 이 시점에서 미군정을 부인하시면….

백범: 신탁획책엔 제2의 독립운동으로…. 제2의 독립에 어찌 목숨을 아낀단 말인가.

고하: 국민 전체가 반탁에 나서 여론을 선도하고…. 하지를 자극하지 말고….

백범: 그대는 지금 하지의 청탁을 받고 날 설득하러 온 것인가.

고하: 임정 봉대엔 변함이 없습니다만… 미군정과 대결하면 공산당만 어부지리….

백범: 신탁 반대에 좌우가 어디 있소. 고하는 찬탁이오 반탁이오?

고하: 반탁입니다. 방법을 신중하게 하자는…. 수습을 대비해서….

백범: 뒷수습은 우리가 맡아! 내가 맡아!


고하 송진우는 그길로 우남 이승만을 찾아 백범 설득을 요청하지만, 이승만은 “백범은 원래 성질이…” 그리고 “그 사람과 틈이 가면 안 돼!” 미군정을 말하는 것이다.


송진우는 다음날도 백범을 찾아간다.


백범: 고하의 언변은 대단하오. 어젯밤에 놀랐고 충분히 들었기에…. 고하는 충심으로 조국 독립을 생각할 때요.


고하: 임정 봉대하는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1945년 12월30일 밤 한국민주당 당수 송진우(박근형)는 서울 원서동 자택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아 죽는다. 해방정국의 암살극 시작을 알리는 <제1공화국> 첫회의 마지막 장면이다.


12월30일 그날 밤, 송진우의 집에 괴한 네 명이 침입하고, 어둠 속 자고 있던 송진우의 가슴에 네 발의 권총을 명중시켜 암살한다. 향년 57.


고하의 돌연한 죽음.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고하 송진우의 죽음. 이것은 암살극의 시작. 이 암살극의 연출과 더불어 정치드라마의 격렬함은 더해지고 있었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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