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80514044303251


[단독] 국정원, 작년 일반예비비 6000억 갖다썼다

이대혁 입력 2018.05.14. 04:43 수정 2018.05.14. 08:13 


전체 절반 차지… 전년比 20%↑

총예산은 1230억 늘어 1조 넘어

朴정권 말기 모종의 사업 가능성

현정부도 대북사업 등에 썼을 수도

‘깜깜이 예산’ 논란 다시 불붙을 듯


국가정보원 전경. 국정원 제공

국가정보원 전경. 국정원 제공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예산에 포함된 일반예비비 1조2,000억원 가운데 절반인 6,000억원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전년 대비 20% 이상 급증한 것이다. 본예산 5,000억원을 포함하면 국정원이 지난해 쓴 예산은 총 1조1,000억원이나 된다. 결국 국정원은 전년보다 총 1,230억원이나 많은 돈을 쓴 것이어서, 예산을 이처럼 대폭 늘린 이유와 사용처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파문 등을 겪고도 국정원 예산 집행내역은 여전히 비공개 사항이라 예산결산 과정에서 ‘깜깜이 예산’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와 재정당국 등에 따르면 2017년 국가예산 중 예비비 규모는 총 3조원이다. 이 중 재해대책비, 지역전략산업, 국가배상금 등 항목이 정해진 목적예비비가 1조8,000억원,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집행되는 일반예비비가 1조2,000억원이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국정원은 이러한 일반예비비의 절반인 5,960억원 가량을 운영비와 특수활동비 등 ‘국가안전보장활동 경비’ 예산 명목으로 사용했다. 지난해 국정원 국가안전보장활동 경비 규모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는 또 작년 국정원 본예산(4,931억원)보다도 많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정부 핵심관계자는 “예산회계에관한특례법 상 국가안전보장활동 경비는 일반예비비에서 편성되는데 모두 국정원 몫”이라며 “국정원은 이 돈을 운영비, 인건비, 특수활동비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비는 일반예비비 편성 때 (세부 사업내역 없이) 총액으로 결정돼 기획재정부가 분기별로 집행한다”고 설명했다. 분기별 집행 규모 역시 국정원 요청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은 지난해 본예산과 예비비를 합쳐 총 1조891억원(4,931억원+5,960억원)을 쓴 셈이다. 이는 전년 국정원 집행예산 9,664억원(본예산 4,701억원+국가안전보장활동 경비 4,963억원)과 비교해 1,230억원 가까이 많은 액수다. 지난해 예산이 박근혜 정부 집권 4년차였던 2016년 편성돼 그 해 국회를 통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정원 예산 증액은 박근혜 정부의 결정으로 볼 수 있다. 집권 마지막 해에 국정원을 통해 모종의 사업을 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활동 경비가 분기별로 집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해당 예산의 상당 부분을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정권 교체기 국정원의 가용 예산이 대폭 증가한 사실이 드러나며 궁금증을 키우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은 예산이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국회는 예산심사 과정에선 국가안전보장활동 경비의 집행내역은커녕 편성 규모도 알 수 없다. 기재부가 매년 국회에 결산자료를 제출할 때 첨부하는, 세부 지출내역 없이 총액만 기재된 ‘예비비 사용 총괄명세서’를 받아보고 나서야 전체 규모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국정원 본예산 역시 규모만 정해진 채 국회 심의를 거친다. 정부 관계자는 “국정원의 예산 규모가 드러날 경우 인력 규모 등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예산 관련 사항은 철저히 대외비로 부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청와대에 상납돼 쌈짓돈처럼 쓰인 사실이 드러나 국정원의 예산 집행 실태에 대한 의혹이 증폭된 상황에서, 지난해 예비비를 끌어다가 국정원 예산을 대폭 늘린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논란이 더 가열될 전망이다. 기재부는 이달 말까지 예비비 명세서를 포함한 결산서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해 일반예비비 집행률은 98%대를 기록,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99.9%)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정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예비비는 국가안전보장활동 경비 증액, 대선 및 정부조직 개편 등에 따라 1조2,000억원 가운데 1조1,800억원가량이 집행됐다. 앞서 2012~2016년 일반예비비 집행률은 평균 73.7% 수준이었다.


일반예비비 가운데 국정원 사용 예산을 제외한 나머지 6,000억원은 국가배상금과 대선비용, 정치개혁ㆍ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등 정부 조직 운영, 국정 홍보 등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발생한 ‘구로농지 강탈사건’에 대한 국가배상(법무부)에 3,000억원 가량이 소요됐다.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배상을 결정하자 배상금 일부를 일반예비비에서 집행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조 단위에 달하는 구로농지 강탈사건의 국가배상금이 지난해부터 집행되면서 일반예비비에서 끌어다 쓴 것”이라며 “올해부터는 목적예비비 등에서 집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에 사용된 비용은 55억원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예산은 2018년 일반예비비(총 1조2,000억원)에서 사용됐다. 평화의집을 관리ㆍ운영하는 국정원이 개보수 비용으로 10억원 안팎을, 정상회담과 만찬행사 등을 총괄한 통일부가 45억원 가량을 사용한 것으로 추산된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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