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438564


유가족에 몰래 6억 건넨 삼성... 누가 염호석을 죽였나

[TV리뷰] <그것이 알고 싶다> 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故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신상미(hippiedream) 18.05.27 12:20최종업데이트18.05.27 12:28 


한 남자가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그의 시신이 발견된 차 안엔 타다 남은 번개탄과 빈 소주병, 유서 4장이 함께 발견됐다. 남자의 이름은 염호석. 2014년 5월 17일 인근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그는 당시 불과 34세로, 경남 양산에서 살았다. 경남에 살던 이가 무슨 이유로 강원도 바닷가까지 와서 사망한 것일까.   


지난 26일 오후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故염호석 '시신 탈취' 미스터리"란 부제로 한 젊은이의 죽음과 그의 시신이 탈취당한 스토리를 방영했다. 


삼성과 호석씨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거래


그것이 알고 싶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처

▲ 그것이 알고 싶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처ⓒ SBS


염씨의 어머니는 그리워하던 아들을 주검으로 마주했다. 그는 남편의 폭행으로 이혼을 하고 오랫동안 아들과 헤어져 지냈다. 어린 아들을 만나러 가면 남편이 화를 내는 통에 만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장례식장에서 아들을 보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 시각 서울 모처에 위치한 아들의 장례식장에 250여 명의 경찰이 몰려왔다. 출동 사유를 밝힌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조문객을 향해 캡사이신 최루액까지 분사하며 강하게 저지했다. 그 사이 시신 안치실에서 호석씨의 시신이 사라졌다. 경찰이 호석씨의 시신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제작진은 시신 운구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3개 중대 240여 명에 이르는 경찰이 투입됐고, 강남경찰서도 노조를 저지하며,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시신은 아버지가 사는 부산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을 여러 군데 돌다가 구서동에 위치한 한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직장 동료들은 "일부러 조문객을 따돌리는 듯한 정황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직장동료가 찾아간 시신안치실에 호석씨의 시신은 없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와 동료들은 5월 21일 부산의 한 화장장에 고인의 이름으로 예약이 돼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러나 이미 하루 전 경남 밀양에서 화장이 진행 중이었다. 뒤늦게 어머니가 찾아갔지만 화장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내 아들을 왜 못 데려가게 하냐"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버지 염씨만 화장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모든 상황은 경찰이 통제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경찰 간에 몸싸움이 일어나는 사이에 고인의 아버지는 유골함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방송에선 그 모든 상황이 고스란히 실제 영상으로 전해졌다. 고인 염호석(당시 34)씨는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서 일했던 전자제품 수리기사였다. 


제작진은 장례식장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버지의 마음이 변했다. 한 조합원은 아버지가 조합원들 앞에서 "새끼는 죽었고, 고깃값은 받아야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것일까. 제작진은 시신 운구차 앞유리에 삼성전자 임원들의 연락처가 적힌 메모가 꽂혀 있었단 걸 단서로써 포착했다. 제작진은 메모에 적힌 4개의 연락처로 각각 전화를 해봤다. 그들 중 양 아무개 팀장은 고인이 일했던 양산센터의 상사였다. 양 팀장은 양산으로 찾아간 제작진에게 "아는 게 없고 말할 것도 없다"고 일관했다. 메모엔 정 아무개라는 본사 직원의 연락처까지 있었다. 이를 두고 고인의 동료는 "협력사 직원이 죽었는데 서울 본사 직원의 연락처가 있다는 것이 의외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고 염호석씨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다음날 오전 만난 아버지는 느닷없이 제작진 앞에서 칼을 꺼내며 향후 자신을 이 문제로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그는 '비밀스러운' 거래가 있었음도 시인했다. 그는 "2014년 5월 17일에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장이 연락을 해와서 호석이가 죽었다고 알렸다. 그러더니 자기들에게 장례를 맡겨달라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에 따르면 이후 양산센터장의 소개로 삼성전자 본사 최아무개 전무를 만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최 전무가 6억원을 주겠다고 해서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을 허락했다"고 밝혔다.  


방송을 통해 금속노조원들의 방해가 있을 거라고 경찰 측이 사전에 연락받았음이 드러났다. 경찰은 고인의 아버지가 보호요청을 해서 출동했다고 밝혔지만 신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유가족과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제작진은 이 사건에서 설계자, 조력자, 실행자가 있었고, 과연 이들이 누구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부친에게 6억원을 제안하고 건넨 최 전무는 현재 구속재판 중이다. 


유서에 적힌 당부... "삼성과 싸워서 꼭 승리하라"


그것이 알고 싶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처

▲ 그것이 알고 싶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처ⓒ SBS


4장의 유서를 남기고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염호석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호석씨와 동료들을 포함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은 기본급 120만 원에 수리 건당 수수료 평균 9000원을 받았다. 차량유지비, 유류비, 통신비 등은 자비 부담이었다. 이러한 건당 체계를 거부하고 월급제를 요구하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자 일감이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협력업체는 자살 사망한 호석씨에 대해 '노조원 1명 탈퇴'로 그린화 실적에 올려 상부에 보고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초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6000여 건에 달하는 노조 와해 문건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지난 2013년 무혐의 처분된 삼성그룹 노조 와해 의혹을 3년 만에 재수사하게 됐다. 


숨지기 전 호석씨는 월급으로 40여 만원을 받았다. 그가 죽고 난 뒤 통장엔 3000원이 잔액으로 남았다. 고인의 누나는 "아버지한테 6억을 줬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면서 "(삼성이) 애한테 1000만원, 100만원만 줬어도 죽지 않았을 거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 2013년 10월 충남 천안의 한 수리기사가 자살을 택했다. 그는 유서에서 "삼성전자서비스를 다니며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팠다"고 썼다. 7개월 뒤 호석씨가 뒤를 따랐다. 그는 "동료들의 고통을 더는 못 보겠다"면서 "장례는 노조장으로 치러 달라"고 전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호석씨의 동료이자 노조 관계자는 "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다"며 "누가 삼성하고 맞서서 이기겠냐고 했다. 그동안 삼성에서 노조 만들었던 사람들이 다 좌천됐고, 사라지고 했다"고 밝혔다.  

  

피디는 호석씨의 아버지에게 아들의 유골을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노조장을 지내달라는 아들의 원을 지켜주지 못해서 1년 뒤 정동진에 가서 뿌려줬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때 받은 6억은 어떻게 했냐"는 물음엔 "그 돈이 여태까지 있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다 쓰고 월세 산다. 말이 6억이지 돈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호석씨는 유서에서 동료들에게 "삼성과 싸워서 꼭 승리하라"고 당부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삼성은 직원들이 호석씨의 죽음을 계기로 서로 뭉치고 연대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병철 회장의 유훈 "노조는 안 된다"


진행자 김상중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노조는 안 된다'고 했다"면서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에도 불구하고 창업자의 유훈을 지키기 위해서 노조 설립을 성실히 막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삼성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은 나라의 지원, CEO와 간부들의 경영능력 덕분만은 아니다. 밥도 못 먹고 제품 수리하러 간 누군가의 아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누군가의 딸 덕분은 아니었을까"라고 되물었다.      


호석씨는 자신의 죽음이 노동조합장을 통해 애도되고 기억되길 바라며 노조장으로 장례를 치러달라고 유서에 당부했지만 죽은 이후에도 끝내 그 작고 소박한 원조차 이루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현대사에서 여러 차례 민주혁명을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작 적정 임금과 생존권을 보장하는 노동권,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할 권리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노조조직률은 불과 10% 남짓으로, 적절한 처우의 요구나 파업을 바라보는 눈이 아직도 미성숙하고 관심이 적다. 국민 대부분이 급여 생활자임에도 스스로 노동자라는 인식이 낮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 대부분이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하고도, 정작 그 열매는 독식해왔다. 이들은 수천 억대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도 임금인상과 정규직화에 인색하다. 


특히 삼성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장악해왔다. 삼성에서 나이 어린 여성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고도, 외부에 알려지며 공론화된 것은 불과 수년 전부터다. 한 지인은 9년 전 필자에게 "백혈병 발병과 사망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가 모르고 있냐", "언론은 왜 한 군데도 보도하지 않냐"고 되묻기도 했다. 사회의 진보와 변화를 소수의 이상주의자나 깨인 사람들의 희생으로만 이룰 수는 없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연대하지 않으면 호석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은 또 나타날 수밖에 없다. 


호석씨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생존권을 위협받았고 3000원의 통장 잔액을 남기고 죽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대기업의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 호석씨 같은 이의 죽음에 모두가 '공범'이 될 수밖에 없음을 그의 죽음은 말하고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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