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7636.html?_fr=mt2


“양승태, 인사 권력욕에 국회·청 로비하다 사달”

등록 :2018-06-04 17:49 수정 :2018-06-05 10:03


강희철의 법조외전(27) 상고법원 ‘입법 로비’의 종말 

양승태 전 원장 지시로 갑자기 추진, 국민·여론 설득 없이 ‘로비’에 주력

법사위 제동·청와대 문턱도 못넘어 “고위법관 임명권 욕심이 화근됐다”


이번 ‘사법 농단’ 파문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국회를 넘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하고, 법관들의 생각과 사생활, 재산까지 서슴없이 들여다 보게 만든 ‘동기’ 또는 ‘계기’가 궁금했다. 모든 사건에는 동기가 있다. 동기 없는 사건은 없다고 했다.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는 “상고법원 논의는 어느 날 갑자기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로 시작됐다”며 “인사권 확대로 자신의 ‘그립’(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 법원행정처를 앞세워 국회와 청와대에 로비를 하다 사달이 난 것이다. 문제가 된 문건들은 그 방증일 뿐”이라고 했다.


검찰 출신으로 정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박근혜 청와대는 양 전 원장이 상고법원을 빙자해 고위직 법관들의 인사권을 확대하려 한다고 의심했다”며 “더욱이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나 논의도 없이 국회 입법로비에 치중하는 태도를 보면서 부정적인 입장이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요컨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무리한 ‘권력욕’이 빚은 참화라는 것이다.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이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했던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자신의 입장을 옹호한 양 전 원장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자신의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의혹의 대부분을 부인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자신의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의혹의 대부분을 부인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무엇이 원인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살피려면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공식 추진하기 시작한 2014년 6월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오연천 서울대 총장)는 활동을 마치면서 “대법원이 법의 근본적인 의미를 선언하는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일반 상고사건은 상고심 법원을 설치해 대법관이 아닌 상고심 법관이 담당하게 해야 한다”는 건의문을 냈다. 이것이 상고법원 추진의 공식적인 시발점이다.


이후 대법원은 같은 해 9월24일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춘 뒤 12월5일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상고법원 설치를 통한 상고제도 개선을 2015년도 중점 추진과제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입법 파트너로 국회를 선택했다. 7~8월께부터 양 원장의 ‘돌격대’로 나선 법원행정처의 입법 로비가 본격화했다. 행정처 고위층이 직접 나서서 주요 정당 대표·원내대표와 회동하고, 소속 판사들은 입법 영향력이 있는 국회의원과 그 보좌진까지 분담해 개별 접촉과 설득에 매달렸다.


“그 무렵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판사님이 고교 동문이라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공부 잘했다고 소문난 선배라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뜻밖이었다. 밥을 사겠다고 해서 만났더니 상고법원과 관련한 의원님 생각 등을 묻더라.” (전직 의원 비서관)


행정처 고위 인사가 한밤중에 주요 상임위원장이던 한 국회의원의 호출을 받아, 자기 차로 만취한 그 의원을 집까지 손수 ‘배달’했다는 소문이 법조계에 파다했던 것도 이 무렵이다. 사법부가 이익단체의 하나로 ‘전락’한 셈이다.


대법원의 국회 입법로비가 강화될수록 박근혜 청와대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당시 청와대의 ‘속내’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를 기록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2014년도 ‘업무 일지’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다 찾아서.” (9월6일)


“대법원X, 고법X 돌연변이, 대법원 재판 받고 싶은 희망 ⇒ 위헌소지, 대법원 궁여지책, 간단한 문제 아님.” (9월22일)


“상고법원 대 9.7 발족-대통령 임명권 배제 민주적 정당성-의원입법(꼼수)” (11월25일)


대법원이 2015년 7월에 연 ‘제1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UCC 및 포스터 공모전’에서 포스터 부문 금상을 탄 ‘상고법원이 국민을 웃게 만듭니다.’ 지금은 상고법원이 국민의 웃음거리가 됐다. 사진 대법원 게시판 내려받음

대법원이 2015년 7월에 연 ‘제1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UCC 및 포스터 공모전’에서 포스터 부문 금상을 탄 ‘상고법원이 국민을 웃게 만듭니다.’ 지금은 상고법원이 국민의 웃음거리가 됐다. 사진 대법원 게시판 내려받음


종합해 보면, 청와대는 상고법원을 대법원도 고등법원도 아니면서 헌법 위반 소지가 있는 ‘돌연변이’로 인식하고, 고위법관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배제해 법원이 공룡화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대법원장이 3심을 담당할 고위 법관 임명권을 가질 경우 ‘민주적 정당성’ 논란이 파생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의원입법’을 통해 편법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봤다. ‘꼼수’라는 표현은 정확히 이 지점을 짚은 것으로 읽힌다.


여론도 좋지 않았다. 3심 제도의 의미와 대법원의 업무 부하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변호사들조차 과반이 상고법원을 반대했다. 같은 해 12월 대한변협이 회원 변호사 1572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1%에 해당하는 809명이 ‘상고법원보다 대법관 증원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럼에도 입법 로비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12월19일 판사 출신인 홍일표 의원을 대표로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민사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여야 불문 168명이 발의자로 서명했으니, 남은 것은 시간 문제인 듯했다.


당시 발의된 개정안의 주요 조항을 보면 상고법원의 모습이 대강 그려진다.


-상고법원은 상고심 법원으로 대법원 외에 신설(제3·5조)


-상고법원은 판사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부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심판권 행사(제7조)


-상고법원은 필수적 대법원 심판 사건 이외의 사건을 담당. 대법원 심판 사건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사건(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선거 당선 사건, 조례 무효, 군사법원 사건) (제14조)


-대법원 심판 사건은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 등 공적 이익과 관련 있는 사건,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이상 중한 형이 선고된 사건 (제14조) (이상 법원조직법 개정안)


-상고법원은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의견을 가지는 때에는 사건을 대법원으로 이송한다.(민소법 제435조)


-상고법원은 사건을 종심으로 심판하지만, 헌법 위반 판례 위반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대법원에 특별상고 또는 특별재항고 가능(민소법 제483조, 형소법 제401조)


상고법원 재판부에서 전원일치가 안 되면 대법원까지 올라간다는 조항에서 ‘그럼 3심제가 아니라 4심제를 하자는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대법원 심판 회부의 기준인 ‘경제적 파급 효과’, ‘공적 이익’의 판단 기준이 모호해서 대법원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50~100명쯤 되는 ‘상고법관’직이 신설되면 대법원장의 인사권은 획기적으로 커지지만, 그로 인한 효과가 분명하지 않았다.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5년 7월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통령 면담을 앞두고 작성한 ‘말씀자료.’ 이 문건을 공개한 특별조사단은 이 문건이 양 전 원장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지만, 양 전 원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이 문건을 읽었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5년 7월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통령 면담을 앞두고 작성한 ‘말씀자료.’ 이 문건을 공개한 특별조사단은 이 문건이 양 전 원장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지만, 양 전 원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이 문건을 읽었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몸이 달았다. 여당을 움직여줄 우월하고 힘 센 ‘존재’, 청와대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했다.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이 공개한 ‘재판 거래’ 의혹 문건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4. 구체적 접촉·설득 방안


▣ 대상자별 성향과 관심사, 정치적 입장, 특보단 회의에서의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개인별 맞춤형 접촉·설득 방안 수립


▣ 이병기 비서실장


● [HOW] 상고제도 개선의 필요성·시급성 등 강조


-주요 관심사항 관련 원론적 차원에서의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 피력


▨ 원세훈 사건 ▶적어도 전원합의체의 판단 등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임”


‘양승태의 복심’으로 불리던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작성된 2015년 3월26일자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이라는 문건의 일부다. 재판 중인 사건을 접촉과 설득의 방편으로 거론하면서 적극적인 로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역시 임 전 차장 지시로 4월12일 작성된 ‘성완종 리스트 영향 분석 및 대응 방향 검토’라는 문건에는 “대(對)BH 및 대입법부 협조 및 우호관계 유지 방안”으로 “적정한 영장 발부”와 “비공식적인 대화 채널 적극 가동”, “관심 사안의 적정한 처리 시기 검토” 등이 들어 있다. 여기서도 영장의 발부 여부와 판결 시기 등이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예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의혹의 결정판 격인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방안’이 역시 임 전 차장의 지시로 7월28일 작성된다. 사법부가 그동안 재판을 통해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얼마나 많은 협조와 공헌을 해왔는지를 누누이 강조한 이 문건은 양 전 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면담(8월6일)을 얼마 안 남긴 시점에서 작성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청와대의 ‘아킬레스건’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공작 사건을 만장일치로 파기(7월16일)한 직후이기도 했다.


문건은 항소심 ‘유죄’를 ‘무죄’ 취지로 바꿔놓은 “유리한 재판 결과”를 지렛대로 대통령 면전에서 상고법원 입법을 다시 한번 강조하라고 조언한다.


“● → 최근의 우호적 분위기 등 적극 활용


-박지원 의원 일부 유죄 판결, 원세훈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등 여권에 유리한 재판 결과 ⇒ BH에 대한 유화적 접근 소재로 이용 가능


-특히, 현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원세훈 사건은 파기환송심에서 실체 판단 문제가 남아 있어, BH 관심 대상에서 완전 소진되지 않은 상태”


대법원이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6월에는 상고법원 홍보를 강화한다며 ‘뉴미디어 홍보사업 입찰 공고’를 내는가 하면, 7월에는 ‘대한민국 법원의 날 UCC 및 포스터 공모전’이라는 것을 처음 만들어 홍보에 열을 올렸다. 8월 들어서는 서울대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허성욱 교수)이 5개월 걸려 완성한 ‘상고법원 설치의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라는 프로젝트 결과를 내놓았는데, 결론은 “상고법원 도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향후 10년 간 최대 70조원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연구 책임자인 허 교수가 “상고법원은 오심 가능성이 71%나 감소한다”고 밝히자 법조계에선 “그럼 지금 대법원은 그만큼 오심을 한다는 얘기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갖은 노력에도 상고법원 논의는 뜨지 않았다. 법사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국회의원 168명이 서명한 관련 법률 개정안은 결국 19대 국회의 임기가 2016년 5월 끝나면서 전부 자동 폐기됐다. 양 전 원장의 권력욕도 좌절의 순간을 맞았다.


당시 청와대 내부 사정을 아는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사건은 이를테면 ‘실패한 로비’다. 처음에는 국회만 구워 삶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입법로비를 세게 했는데,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대법관 임명권을 갖고 있는 청와대는 자신들이 배제되자 아주 불쾌하게 생각했고, 양 전 원장이 대통령의 권한을 침범하고 있다고 여겼다. 어느 참모는 ‘이 나라에 대통령이 둘이냐’는 극단적인 말까지 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입법이 될 리 없었다. 최고(3심) 법관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행사하도록 한 헌법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양 전 원장이 처음부터 안 될 것을 욕심으로 밀어붙이다 이 사달이 난 것이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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