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82997  

1만원짜리 송아지...3마리 사면 1마리 공짜?
'미국 쇠고기 예찬' 의원들이 한우를 죽였다
[주장] 경쟁력있는 쇠고기 만들면 된다더니...‘무뇌아 축산정책’이 화 불렀다
12.01.13 18:50 ㅣ최종 업데이트 12.01.13 18:50  안호덕 (minju815)

▲ 소값 폭락으로 한우 농가들이 깊은 시름에 잠겼다. 전국 한우협회 광주·전남 시도지회 소속 축산농민 100여명이 지난 5일 오후 전남 무안군 남악신도시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집회를 연 가운데 농민과 함께 집회장에 온 한우의 눈빛이 깊어 보인다. ⓒ 연합뉴스

"아빠. 안락사가 뭐예요?"
"응? 왜? 어디서 그런 이야기 어디서 들었어?"
 
텔레비전에서 육우 수송아지 한 마리에 만 원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그 소식 뒤에는 한 농장 주인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 농장 주인은 "차라리 이렇게 굶길 바에야 안락사 시키는 게 낫겠다"는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소가 굶어 죽어야 할지, 키우는 농민이 굶어야 할지 모를 절박한 축산 농가의 현실은 '송아지 값은 만 원'이라는 멘트로 부풀려져 보도되고 있다. 아빠에게 안락사와 솟값 폭락에 대한 설명을 듣던 초등학생 둘째 아이는 뜬금없이 쇠고기가 먹고 싶단다. "그래, 이번 토요일에 한 번 먹지 뭐"라고 호쾌하게 대답한 나의 머릿속에 광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들. 네가 찰스니? 철수지"라며 수입 쇠고기가 아닌 한우를 권하던 광고. 나도 이번 주말에는 우리 아이들을 '한우 먹는 철수'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비싼 사룟값을 감당하지 못해 육우 10마리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솟값 폭락에 대한 농민들의 절망이 알려진 것은 1월 3일경이었다. '육우 수송아지 한 마리 만 원' '세 마리를 사면 한 마리가 공짜'라는 믿기 어려운 사실들이 속속 전해졌다. 그러더니 자식 같이 키우던 송아지를 두고 안락사라도 시켜야 한다는 절망적인 인터뷰도 나왔다. 그런데, '비싼 사룟값과 폭락한 솟값 때문에 농민들 절망'이라던 뉴스가 언제부터인가 '1만 원 송아지, 쇠고기 값은 그대로 복잡한 유통단계 때문'이라는 소비자 불만의 뉴스로 바뀌어 버렸다.
 
도·소매업자들이 없어져야 할 존재인가요?
 
▲ 전국한우협회 소속 축산농가 회원들이 1월 5일 오후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값 폭락에 항의하며 정부의 한우 수매 등 한우값 폭락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비싼 사룟값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솟값은 왜 폭락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인과 관계에는 어떤 접근이나 탐색도 없다. 그저 '솟값은 폭락하는데 고기 값은 왜 그대로인가'라는 내용의 기사들이 연일 언론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언론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비판적 시각은 고사하고, 언론이 솟값 폭락의 본질이라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솟값은 폭락인데 쇠고기 값은 여전히 비싸다.' '이는 복잡한 유통 단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통 단계를 줄이고 직거래를 활성화해 소비자 가격을 낮춰야 한다.' 이것들이 최근 이어진 언론 보도 형태이고, 정부의 솟값 폭락 대책이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된 말들을 뒤집어 보면 논리의 허구성은 금방 탄로나고 만다. 유통 단계를 줄여 소비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비싼 사룟값으로 키운 국내산 육우는 제값을 받을 수 있을까? 유통 중간 단계인 상인들이 빠지면 농민과 소비자의 직거래로 '송아지 한마리에 만 원'이라는 가격이 서민의 밥상에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을까.
 
그것이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서민이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면 도매업자·소매업자·식당 주인들은 그동안 폭리를 먹고 사는, 말 그대로 '없어져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말인가? 솟값 폭락 문제를 유통단계의 문제점으로 비약한 언론과 정부 관료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쇠고기 값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의 말대로 쇠고기 값이 비싼 이유가 복잡한 유통 구조 때문이라면, 이런 유통 구조를 거치지 않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쇠고기 값은 재래시장이나 동네 정육점보다는 훨씬 저렴해야 한다.
 
그러나 '○○ 산자락' '△△에서 방목한' '인삼과 쑥을 먹여 키운'이라는 꼬리표를 단 대형마트, 백화점의 한우나 국내산 육우 가격은 손님을 끌기 위한 할인 행사 기간을 제외하고는 동네 정육점보다 비싼 편이다. 정부와 언론이 축산농민에서부터 수집반출상, 도축장, 도매상, 소매상 등 5~7단계 유통구조를 거치는 재래시장이나 동네 정육점을 폭리의 주범으로 지목하려면 우선 유통 구조가 단순한 대형마트, 백화점이 유통 과정에서 얼마나 큰 폭리를 취해 왔는가를 우선 밝혀야 한다.
 
먹거리의 간극을 만든 건 정부와 대형마트
 
▲ "'소'가 아니라 '빚'을 키운다" 12월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부근 KT건물앞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한우농가비대위 회원들이 "한우값 폭락 대책수립"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한우에 입힌 뒤 트럭에 싣고와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서민들은 수입산 쇠고기와 한우, 국내산 육우가 절묘하게 진열된 대형마트 정육코너에서 눈은 한우에 두지만 손은 수입산 쇠고기에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만든 건 정부였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정부는 축산농가가 다 망한다는 탄식에도 일본산 쇠고기 와규를 보라고 일갈했다. 아무리 값싼 쇠고기가 들어와도 와규처럼 경쟁력있는 쇠고기를 만들면 찾는 소비자가 있을 것이고, 수출길도 열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시식행사에서 한우보다 미국산 쇠고기가 더 맛있다고 예찬을 늘어 놓았던 한나라당 의원과 정부 관료들이 만들어낸 축산 정책이었다.
 
수입하지 말아야 될 미국산 쇠고기를 억지로 수입해 국민들의 불안감이 증폭시켰던 정부. 그 정부는 한우와 국내산 육우가 과도하게 사육되는 병폐를 낳아 사육두 수가 250만이 넘을 때까지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구제역 사태로 국내산 쇠고기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고, 수입 쇠고기 소비가 늘어나자 비싼 사룟값과 사육두수 과잉이라는 위기가 현실화됐다.
 
이에 더해 수입 쇠고기를 둘러싼 대형마트 간의 가격 경쟁은 한우와 국내산 육우를 '비싸서 사 먹기 힘든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서민들의 먹거리는 국내산 삼겹살보다 저렴한 수입 쇠고기가 돼 버렸다.
 
한우와 국내산 육우가 적정 사육두수를 넘어 섰을 때도, 구제역으로 소비가 격감했을 때도 정부의 축산 농가 보호 노력은 미미했다. 오히려 쇠고기 수입이 80% 늘어나고, 수입산 사료가 국제 곡물가 폭등과 환율의 영향을 받아 고공행진을 계속할 때도 정부는 한미FTA 타결의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사료의 수입 가격을 낮춰 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국내산 한우와 육우가 수입산 쇠고기와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축산 정책이 나왔어야 했다. 서민들이 소비할 수 있는 한우, 수입 고기를 선택하지 않아도 될 한우을 생산하는데 정부의 노력이 있어 왔다면 지금처럼 축산농가와 서민 먹거리의 간극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미FTA 발효는 축산 농가의 위기감을 더 크게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미국산 쇠고기에 붙은 관세는 40%로 알려져 있다. 한미FTA는 미국산 쇠고기에 부과된 관세를 15년에 걸쳐 완전히 없애겠다고 한다. 미국산 쇠고기의 시장 점유율이 해마다 높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지금도 반토막 났다는 솟값이 이런 무차별적인 경쟁 앞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지금도 수시로 대형마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입산 쇠고기 간의 가격 전쟁. 한미 FTA 발효 후 누가 한우를 선택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농가에 힘이 되겠다는 대형마트... 상술 참 놀랍습니다
 
▲ 폐업한 동네식당 한우와 삼겹살을 팔던 동네 정육점겸 식당이 작년말 폐업했다. 문에 붙였던 가격안정모범업소 표지판이 떨어진 채 나뒹굴고 있다. ⓒ 안호덕

동네 어귀 자주 이용하던 삼겹살집이 문을 닫았다. 정육점을 같이 하던 그 식당은 수입 쇠고기도 팔았다. 대형마트의 삼겹살 가격 전쟁 때는 '야채도 덤으로 준다'는 입간판을 세워 놓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치더니 지난해 말 기어이 문을 닫고 말았다. 때 묻은 냉장고와 식탁 등이 고철상에 팔려나가고, 셔터가 내려진 문 한 쪽에 '가격안정 모범 업소'라는 간판만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아직 가게가 망하지 않았다면 정육점 사장의 발걸음은 다가올 설 대목 때문에 흥겨웠을까.
 
설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에 얼어붙은 시장에서는 설렘이나 분주함을 찾아볼 수 없다. 서민들의 주머니가 비었으니 시장이 활기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형마트 백화점의 넘쳐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우 농가에 ○○○가 힘이 되겠습니다'라는 광고로 설 손님을 불러 모으는 대형마트. 수입 쇠고기, 삼겹살 가격 전쟁으로 축산 농가와 자영업자를 궁지로 몰았던 거대 자본은 광고 하나로 한우 농가의 지원군이 됐다.
 
설 대목의 특수도 노려볼 수 없는 재래시장. 정부는 솟값 파동에 쇠고기 폭리업자로 낙인찍힌 상인들의 서러움을 알까?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더 맛있다고 연발하던 찰스라는 이름의 국회의원들. 과연 그들은 눈치 보지 않고 '한우 먹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철수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 걸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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